저는, 모교(母校)인 명지대 바둑학과 폐지 문제가 대두된 현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기에 대한바둑협회 밴드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뜻있는 바둑인들께서는 참고삼아 읽어봐 주시고, 명지대 바둑학과가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성원 부탁드립니다.

 * 숨김없이 남김없이 그대로 솔직하게 쓴 글들이오니 널리 양해하여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대한바둑협회 밴드 게시판] ● 2022년 12월 7일 오후 2:50

  거의 절망단계에 돌입한 명지대바둑학과 운명?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작금 벌어지고 있는 명지대 바둑학과의 존폐문제는 바둑으로 친다면 끝내기 초기 단계로 접어든 듯 거의 절망적인 상태라고 어느 누가 내게 말해 온다. 그만큼 현재 상황이 매우 안 좋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완전히 포기해 버릴 단계까지는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현 상황을 바둑으로 다시 비유해 보건대, 초읽기에 몰리기 시작한 현 끝내기 상황에서 매우 위험한 순간을 맞이했을 뿐이지 아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으니 얼마든지 현재의 불리한 판세를 뒤집어 볼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설사 명지대 학원 당국에서 정식으로 바둑학과 폐지를 발표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계가를 하는 데까지는 황금 같은 2,3년의 기한이 남아있다. 그러니 얼마든지 부활 재기의 찬스를 노려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뜻 있는 타 대학에 바둑학과를 새로 신설하여 그곳에다 명지대 바둑학과 자체를 아예 통째로 옮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건대, 명지대 바둑학과 폐지는 어쩌면 예고된 참사(斬死)이자 추측이 가능했던 인재(人災)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명지대 바둑학과에서 시간강사로 있었을 때, 그러니까 벌써 십여 년 전…….

 내 바둑 은사이자 대학(한양대) 동창인 정수현 교수에게 나는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 적이 있었다.

“지금 우리 바둑학과가 잘 나가고 있다고 방심을 하면 안 됩니다. 인구 감소 추세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려는 대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판인데, 만약 정수현 교수님이 은퇴를 하시면 바로 그때부터 우리 바둑학과의 안위가 위태로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때 정수현 교수는 무척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사실 그때만 하더라도 명지대학교 내에서 우리 바둑학과만큼 썩 잘 나가는 학과가 어디 흔한가?

입학경쟁률이야 그렇다치더라도 바둑학과에 합격하고 나면 거의 모두 서둘러서 등록하는 바람에 혹시나 미등록 학생이 생겨서 득을 보게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던 1순위 학생조차도 떨어지는 판이었다. 재학 중인 학생들이 타 학과로 전과를 하거나 아예 다른 대학으로 편입 가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오히려 타 학과에서 바둑학과로 편입학 해오는 경우를 나는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단지 명지대 바둑학과 재학생이나 출신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중국이나 일본, 미국, 캐나다 등의 유수한 대학에서 인정을 받아 재학 도중 교환 학생으로 쉽게 나가거나 외국 대학으로 유학가서 큰 꿈을 이뤘던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명지대 바둑학과를 졸업한 뒤 캐나다의 유명 대학원에 들어가 그곳 교수들에게 바둑을 가르쳐주며 장학금에다 기숙사 제공까지 받았다는 사례는 실제 부지기수였다.

어디 이 뿐인가? 바둑 좋아하는 VIP 손님(특히 중국인, 일본인)을 특별히 접대하기 위하여 몇몇 대그룹에서는 명지대 바둑학과 졸업생을 특별 사원으로 채용하는 경우도 꽤 많이 보았다.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 명지대바둑학과일진대, 이런 학과가 자칫 폐과될 운명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내 말에 바둑학의 창시자이자 바둑학과를 처음 개설했던 정수현 교수가 어찌 쉽게 동의를 하고 납득을 하겠는가?

나는 그때 정수현 교수에게 이런 말을 다시 했었다.

“명지대에 바둑학과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기에 다른 학과들에 비해 그 연륜 역사가 몹시 짧다. 게다가 다른 학과들에 비해 유사시 행동에 나서 줄 젊고 능동적인 남자 교수들의 수가 너무 적다. 명지대에서 어쩔 수 없이 폐학과 또는 통합학과 논의가 시작된다면, 다른 학과들보다 세가 약해 보이는 바둑학과가 우선 타킷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너무 크다. 이제까지 바둑학과가 대내외적으로 명지대 명예를 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공로 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

“이를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당한 인재를 바둑학과 출신 중에서 골라 학과 차원에서 키워야만 한다.”

“.....”

“명지대 바둑학과에 박사과정이 있고 또 바둑학박사들을 정식으로 배출해 놓은 이상 이런 제도를 아껴둘 필요가 전혀 없다. 기성 오청원(그 당시 살아계셨음)님을 모시거나 직접 찾아가 뵙고 명지대에서 수여하는 명예 바둑학박사 칭호를 드려라. 매 4년마다 바둑올림픽처럼 열리는 응창기배 창시자 잉창치(應昌期,1914년~1997년)님에게 뒤늦게나마 명지대 명예 바둑학 박사학위를 수여하라. 그리고, 매년 수십억 원씩 경비를 써가며 세계 기전(棋戰)을 개최하고 있는 국내외 대기업 총수들에게 명지대 바둑학과 명의의 감사패를 제공하라.”

“......”

“왜 최철한이나 조혜연 등등 현역 바둑 고수들을 명지대 바둑학과가 아닌 타 대학 타 학과에 빼앗기고 있는가? 그것은 명지대의 바둑학과 입학시험 자체와 학업 방법 등이 근본적으로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수시나 정시 가릴 것 없이 바둑학과에 진학하려는 학생 정원수에서 절반은 순전히 바둑 성적 순위로만 뽑고, 나머지 절반은 일반 학업 성적 순위로만 뽑아라. 바둑에 대한 상식 따위 등은 바둑학과에 들어와서 천천히 배워도 될 일이다.”

“......”

“고대 바둑인들은 바둑을 오롯이 지켜내기 위해 무척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바둑이 귀중한 노동력을 허비시키는 것이라 하여 바둑 자체를 아예 없애거나 금지시키려는 시도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고대 바둑인들은 바둑을 단순히 승부만을 가리고 즐기는 게임용으로만 활용했던 것이 아니라, 바둑 자체를 여타 학문과 예술, 병법(兵法) 등에 접목을 시켜놓았고, 심지어 점술과 천문지리는 물론 의술(醫術)과 종교(宗敎)에까지 그 영역을 두루 넓혀 놓았다. 

도교(道敎)와 어떤 합의를 보았는지 모르지만, 도교 사원을 일반인들의 바둑 배움터 장소로 만들었고, 도교 사원에서 바둑대회를 열도록 만들기도 했었다. 특히 도교 사원을 운영하는 도사(道師)들에게, ‘도(道)’를 수행하는 데 바둑도 하나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설득하여 실제로 도사들이 도를 닦는다는 명분으로 날밤을 새워가며 바둑을 두기도 했었다.

오늘날 우리 바둑을 보다 융성케 만들고 더욱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기독교, 불교 혹은 이슬람 같은 종교와도 손을 잡아야만 한다. 매주 교회 건물이나 천주교 성당, 절간 등에서 종교의식을 다 마친 후 목사님이나 신부님들이 신도들과 더불어 바둑을 즐기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화려하지 않은가?”

 “.......”

“현현기경 속에 나오는 사활문제 하나하나가 오락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어 거의 모든 콘텐츠에 활용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바둑을 두는 모습만 생각할 게 아니라, 바둑 자체를 의인화시켜 영화나 연극, 만화(카툰) 등에 접목할 방법 등을 모색해야 한다. 학과에서 허락만 해준다면 내 원래 출신 전공이 영화연극이었으니(한양대 연극영화과) 오로지 바둑학과 현역 재학생들만 데리고서 바둑과 관련된 코미디성 단편 영화를 몇편 만들어 대중 앞에 선 보이겠다.”

“......”

그때 정수현 교수도 바둑을 타학문에 융합시켜 뭔가 색다른 발전을 도모해 보겠다는 의지를 나에게 밝히긴 했으나, 내가 겁도 없이 유병진 총장님께 사적인 편지(바둑학과에 바둑선교 과목을 신설해야 한다는 내용)를 보내고 난 후유증 탓인지, 난 그 후 시간강사 자리도 온전치 못했다.

정수현 교수가 나이 제한(65세)에 걸려버려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에서 정년 은퇴를 하고 난 후, 난 그래도 바둑학과가 지닌 위상과 여력이 남아 있었기에 최소한 10년 정도는 위기 없이 잘 버티고 견뎌 나갈 줄로 알았다.

그러나 설마하니 이렇게 빨리 명지대 바둑학과에 폐과라는 위기가 닥쳐오게 될 줄이야….

 현 상황으로 봐서는 매우 어려운 수싸움 같아 보이지만, 우리 바둑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명지대 바둑학과 폐지 반대 공론화에 힘을 보태야 할 줄로 안다.

왜냐하면, 명지대 바둑학과 존재는 곧 우리 대한민국 바둑인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려있는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 한 수의 잘못으로 바둑판 형세가 순식간에 기울어질 수 있듯이, 명지대의 바둑학과 폐지가 우리 바둑인의 상처로 남지 않게 되기를 본인은 그저 간절히 바랄 뿐이다.

<명지대 바둑학과를 폐과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

학문적으로 체계 있게 바둑을 공부해 본 저는, 바둑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가진 미지(未地)의 학문 영역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바둑을 단순히 게임의 한 종류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둑에는 수천 년간 쌓아 내려온 고대 중국인들의 지혜(천문지리, 역사, 수학, 과학 등)가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바둑적 사고방식’ 자체가 고대와 현대 중국인들의 사고방식과 거의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바둑을 모르고서는 중국의 문명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할 수 없으며 바둑을 전혀 둘 줄 모르는 일부 학자들이 중국문화를 논하는 걸 보노라면 저로선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올 지경입니다.

제가 바둑 속에서 요즘의 컴퓨터 이진법과 미적분 요소, 수열 등의 수학적 요소들을 진작 찾아내어 발표했었다고 말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만약 데카르트가 바둑을 둘 줄 알았었더라면 그의 저작물은 더욱더 빛을 발했고 유럽에 바둑 문화가 일찍부터 꽃 피웠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바둑 속에 담긴 귀중한 학문적 요소들을 무시한 채 그저 오로지 바둑 보급이나 대회 경기 등에만 신경쓰고 있는 우리나라 바둑 단체와 기관들을 보노라면 바둑학박사인 저로서는 그저 답답하고 우울하기만 할 뿐입니다.

하물며 이제는, 학문적 지렛대인 바둑학과까지 폐과한다고 하니 참으로 속상하고 절망감을 느낄 따름입니다. 바둑학과 폐과는 자기 생업과 상관없는 분들께는 남의 일 같을지 모르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동잎 한 잎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오는 것을 알 듯 종내에는 바둑계, 더 나아가 우리나라와 세계의 큰 손실, 돌이킬 수 없는 실착이 될 것입니다. 부디, 마땅히 재고되어야만할 일입니다.

- 2022.12.07 바둑학박사 이상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