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승부(단편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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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승부(단편 3-4)
2022-05-07 조회 79    프린트스크랩

순수 아마추어가 대부분이고 극소수 연구생 이무기 출신이 있는데, 사실은 이들이 무서운 상대였다. 여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바둑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이었고, 바둑을 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이 없었기에 그들의 재주가 어쩌면 녹이 슬었는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서 연구생 출신들은 이른 나이에 적성을 발견하고 재빨리 한길만 걸어온 행운의 세대였다. 과거에 선배들이 닦아놓은 지름길을 가면서 그 과실들을 챙겨 먹는 것이었다. 이기는 것만 항시 강요받고 양보의 미덕은 그들에겐 사치였다. 처절한 승부의 세계에서 이겨야 살아남는 것이었다. 정수는 다소 느슨하였던 승부욕에 기름을 부었다. 가자, 이겨야 내년에 나고야 땅을 밟을 수 있다. 동정 받는 사람이 되지 말고 동정하는 사람이 되자.

 정수는 굳게 입을 앙다물고 자신의 좌석이 배치된 곳으로 향했다예선 세 판을 무난히 이기고, 본선 64강에 들어갔다. 오후 5시에 시작된 32강전에서 승리하고, 한 판을 더 두어 16강에 안착하였다. 다음 날 아침 9시에 16강부터 대국을 하였다. 마침 일요일이라 대회장에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아버지와 여동생이 본부석 상단의 좌석에서 말 없는 응원을 하고 있었다. 결승까지 오는데 예선 3승을 더하면 무려 8연승을 하였다. 이제는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문제가 되었다. 본선 대진표를 보니 결승에 올라온 사람은 그와 같이 연구생 생활을 하였던 한 살 어린 상훈이었다. 상훈이도 그와 다름없는 열망을 가지고 왔을 것이었다. 결승대국은 대회장 VIP룸에서 오후 6시에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고, 결승 국 해설은 프로 9단 박철수씨가 맡았다.

 VIP룸이었다. 국영방송국에서 실황을 중계하느라 스탭진이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 7단 김철 입회인이 결승에 올라온 두 사람을 앉히고 간단한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제한 시간 각자 한 시간 삼십 분에 삼십 초 초읽기 삼 회입니다.”

돌을 가려 주세요.”

 연장자인 정수가 백돌을 한 움큼을 쥐자 상훈이가 흑 돌 하나를 반상에 올려놨다. 한 쌍 식 짝을 맞추어 보니 백돌이 한 개 남았다. 상훈이가 흑을 잡겠다는 시늉을 하였다. 서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나눈 뒤, 3분간 마음을 가라앉힌 상훈이가 우상 귀 화점에 흑 돌 하나를 살며시 갖다 놓았다. 정수는 길게 한 번 심호흡을 한 다음에 좌하 귀 소목에 대칭으로 백돌 하나를 놓았다. 상대의 대각선 포진을 방해하고 계가 바둑으로 길게 가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즉석에 소목의 귀 굳힘을 방해하기 위해 한 칸 높게 걸쳐왔다. 정수는 즉시 두 칸 높은 협공을 선택하였는데, 이 정석은 변화무쌍한 일본의 유명한 요도란 사람이 사용한 요도정석으로 그 변화만 해도 책 한 권은 되었다. 상훈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눈 목()자로 압박해왔다. 이후 쌍방 간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수순들이 오가고 약 50여 수가 진행되었다. 흑이 귀로 빠지는 변화를 택하여 흑은 실리 백은 세력을 쌓았다. 귀에 볼모로 잡혀있는 백돌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가 오늘 승부의 키포인트였다. 정수는 스스로 승부에 초연해지고자 노력하였으며, 한 수 한 수 천천히 두어갔다. 마치 물 흐르듯이 막힘이 없고, 두터운 바둑으로 자신의 약점을 남기지 않았다. 도리어 상훈이 잠시 흔들리는 운석이 나왔다. 흑은 집은 많으나 엷어서 종반으로 갈수록 백에게 조금씩 밀렸다. 계가를 해보니 백이 세 집 반을 이기고 있었다. 상훈은 고개를 앞으로 푹 수그리며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말없이 돌을 통에 담은 후,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승부를 하는 한 승자와 패자의 경계는 너무나 분명했다. 드디어 일본 나고야에 갈 수 있는 우승티켓을 거머쥔 것이다. 정수는 환한 미소를 얼굴 가득히 담고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정수는 나고야 공항에 도착하여, 바둑대회장에서 약간 떨어진 깨끗하고 아담한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 일찍 저녁을 먹고 샤워를 한 뒤 침실에 들어와서 컴퓨터를 켜고 최 수정에게 메일을 보냈다.

-공주님 내가 우승을 할 수 있도록 멀리서 응원 좀 많이 해 주세요. 우승하면 즉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원탁의 기사 박 정수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가부좌를 하고 명상을 했다. 아침을 가볍게 먹고 대회장으로 걸어갔다. 3월의 추위는 덜 풀려서 목덜미를 서늘하게 잡아당겼다. 대회장 앞에는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십여 년을 한결같이 뒷바라지해준 아버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회장의 분위기는 의외로 밝고 화기애애하였다. 각국의 대표선수 32명이 나라를 대표하여 친선과 화목을 다지는 날이었다. , , , 동양 3국의 선수들이 제일 강하고, 유럽. 러시아. 북중미 등의 선수들은 동양권에 비해서 선()바둑 정도로 조금 약했다. 중국의 열여섯 살 천재 소년 후야 호 아마 7단과, 일본의 괴물 구로다 아마 9, 한국의 박정수 아마 7단이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특히 일본의 구로다 9단은 일흔 살로 현역의사이며, 세계선수권만 세 번이나 우승한 괴짜였다. 구로다의 국내 우승기록도 10회가 넘었다. 아마라기보다 프로 9단의 실력을 가졌다는 소문이 있었다. 후야 호는 나이가 어려서 희망이 있고, 구로다는 자신의 전적에 승리의 월계관을 더 쌓으므로 하등 부담들이 없었는데, 정수만은 예외였다. 프로가 되느냐, 아마로 남느냐, 아마와 프로는 그 호칭부터 달랐고,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모든 것은 하늘에 맡기자 정수는 마음의 부담에서 헤어 나오려고 스스로 결심하였다. 대국은 서른두 명이 스위스리그로 진행될 것이었다. 이긴 사람은 이긴 사람끼리 진 사람은 진 사람끼리 대국을 하며, 한 판이라도 지면 우승은 불가능했다. 추첨을 한 결과, 정수의 첫 상대는 머리가 노랗고 눈이 푸른 스물다섯 살가량의 프랑스인이었다. 직업이 컴퓨터 프로그레머였다. 무난하게 1회전을 통과하였다. 이후 3회전까지 체력을 아껴가며 쉽게 승리했다. 3, 이제 2승만 더하면 우승인데 이제부터가 어려웠다. 3승자가 네 명이었다. 대진표의 진행에 따라서 네 번째 상대는 러시아인 슈베타 아마6단이었다. 한국의 도장에 유학 와서 5년간 공부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모국에서 일반 애기가 들을 가르치는데 제자가 300명가량 된다고 했다. 슈베타 역시 아직은 정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250수정도 진행되어 10집정도 모자라자 슈베타는 돌을 거두고 우승하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B조에서는 중국의 호야 호 7단과 일본의 구로다 9단이 4승을 향하여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어차피 한 사람은 우승에서 멀어질 것이었다. 관록과 반면 운영이 노련한 구로다 9단이 짜릿한 한집반의 승리를 하였다. 정수는 드디어 그렇게 염원하던 우승이 가까워져 옴을 느끼고 가슴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수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생수를 한 잔 가득 마셨다. 그리고 스님의 말씀을 머리에 떠올렸다.

-이기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라.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강할수록 승리는 멀어지는 법-

 정수는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고 구로다가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자리로 갔다. 구로다는 첫인상이 마치 신선처럼 얼굴과 머리가 하얗게 변해있었다. 돌을 가린 결과 정수가 백 번이었다. 구로다는 양 소목을 두었고 정수는 양화점을 두었다. 흑이 좌상귀의 소목을 굳히자 우상귀의 소목에 한 칸 높게 걸쳐가자, 구로다는 요즘 유행하는 한 칸 높은 협공을 해왔다. 이후 수십 합을 겨루었지만 승부의 추는 오리무중 유, 불리를 알 수 없는 진행이 300여 수 진행되었다. 구로다의 바둑은 행마가 정교하고 그 흐름이 자연스러우며, 대세 점을 놓치는 경우는 없었다. 이번 바둑은 피차 초읽기를 각오해야 되는 긴 바둑이었다. 흑이 한 수 놓으면 흑이 유리하고 백이 한 수 놓으면 백이 유리했다. 서로 완벽한 바둑을 두어 승부처도 없다. 피 말리는 반 집 승부였다. 오직 운명의 신만이 오늘 승리의 주역을 알 수 있다. 서로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추호의 요동도 없이 쌍방최선을 다하였고, 이제 공배를 메우는 일만 남았다. 의외로 담담하게 진행된 한 판이었다. 흑이 66. 백이 60집이었다. 덤을 제하면 흑의 반 집 승! 이었다. 일본은 덤이 다섯 집 반이었다. 신이 원망스러웠다. 하필이면 신만이 안다는 반집의 승부에서, 만약 한국(6.5)과 중국(7.5)의 룰이었다면 정수의 승리가 분명했으련만, 정수의 얼굴은 곤혹스러움으로 새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준우승을 했지만 그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인천에 돌아온 정수는 일주일 내내 신열로 앓아누웠다. 비몽사몽 끝없는 사막을 걸어가는 갈증으로 낮과 밤을 헤맸다. 그리고 결심한 바가 있어서 다시 현암사로 향했다. 승부의 세계는 그에게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절 주변의 자연은 언제나 편안하게 정수를 따뜻이 맞아 주었다.

스님.”

 복받쳐 오르는 서러움을 억제치 못하고 문밖에서 울먹였다.

정수냐? 네 소식은 신문에서 보았단다. 밖에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오려무나.”

 더 없이 인자하고 따뜻한 음성이었다. 정수는 여닫이문을 살며시 밀고 방안으로 들어가서 합장을 했다.

앉아라. 어차피 승부란 병가지상사가 아니더냐. 세상살이 전부가 어디 승부 아닌 것이 있더냐.”

 스님은 울먹이는 정수의 얼굴을 안쓰러운 눈길로 더듬으며 조용한 음성으로 나직이 말했다. 겸연쩍은 얼굴을 푹 수그리며 정수가 스님 앞에 끊어 앉았다.

그리 멀리 앉지 말고 가까이 앉아라.”

 정수는 슬그머니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면서 스님의 얼굴을 보았는데 스님의 눈에도 순간적으로 눈물이 반짝 어렸다. 스님은 정수의 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등을 토닥거렸다. 정수는 따뜻한 스님의 토닥거림을 받자 마음이 풀어지고 용기가 생기는 것을 느꼈다.

너무 심각해하지 마라. 다시 시작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온다.”

 스님은 다시 강한 신념을 얼굴에 나타내며 그윽한 믿음의 눈길을 정수에게 보내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정수가 몹시 할 말이 있는 듯 마음의 결심을 얼굴에 내비치며 말했다.

스님, 저어……이제 승부를 그만두고, 스님처럼 구도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순간 노한 스님의 얼굴에서 불같은 눈길이 정수에게 쏟아졌다. 가까스로 성정을 누그러뜨린 스님은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뭐라고! 안 된다. 그것은 안 돼!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산중생활은 나 혼자로 족해.”

세상이 두렵고……. 이제 승부가 싫어졌단 말이에요. 그냥 스님의 제자로 받아 주세요.”

 스님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철없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심정으로 정수를 바라보았다. 정수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선뜻 승낙해 주지 못하는 스님을 안타까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괴로운 마음을 억누르며 안으로 슬픔을 삭이던 스님이 정수를 와락 껴안았다.

……. …….”

 애써 다음 말을 목구멍 안으로 삼킨 스님은 정수의 얼굴에 뜨거운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렸다. 스님의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정수의 심란했던 마음을 녹이고 있었다.

가거라. 세상 속으로, 세상 안에서 배워라. 진정한 너의 스승은 세상이니라.”

 폐부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스님의 한마디였다. 정수는 다시 입을 삐쭉거리며 할 말이 더 있는 듯 선뜻 일어나지를 못했다. 스님의 눈 속을 빤히 바라보던 정수는 마음속으로 울고 있었다. 정수는 합장을 하고 하직인사를 올린 뒤 조용히 물러나왔다. 정수의 귓전에는 여전히 따뜻한 스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마지막 승부는 이 세상과 하여라. 이 세상이 너를 키워 줄 것이다.”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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