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해. 바둑알이 지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두고 있어.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소년들이 에톰의 바둑판을 보니 백을 잡은 에톰의 행마가 이상하게 꼬이고 있었다.

“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좀 유리했는데 갑자기 이상행마가 나오네. 해킹을 당했구나.”
하나가 실망어린 어조로 내 뱉았다.
소년들은 신기한 듯 에톰의 바둑을 바라보았다.
백돌은 바둑을 두는 게 아니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그림이야. 동그란 원 같기도 하고 무슨 상형문자 아님 코끼리 문양?”
코스모도 도대체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연장자 배려도 있고 형에게 팀장을 맡기기로 하자구. 단 한 달씩 돌아가면서 하는 거지.”

“좋아 오빠에게 맡기는 게 우리의 안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애.”

“고마워! 그러면 지금부터 이 몸 코스모가 팀장으로 리더역할을 하겠어. 대신 너희들이 많이 도와줘. 참 로보킹도.”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 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던 로보킹이 싱긋 웃는다. 내일은 아모르섬에서 반경 100KM지점에 드림카를 세워놓고 도보로 목적지까지 가기로 결정하였다. 아직 구체적인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적이 어떤 감시체계를 펼쳐놓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에톰은 잠이 오질 않아 뒤척이다가 천막 밖으로 나왔다. 지금 쯤 아버지도 하늘을 본다면 북두칠성을 바라보고 자기를 생각할 것 같았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우리가 곧 아빠와 과학자들을 구해드릴게요. 에톰은 하늘을 바라보며 간절히 빌었다.

“뭐해 에톰 잠 안자고.”
하나가 천막 안에서 나왔다.

“그러는 넌 왜 안자.”
에톰이 싱긋이 웃으며 말하였다.

“나도 부모님이 보고 싶고 내일부터 벌어질 여러 가지 상황을 생각하느라.”
하나도 공명심에 나서기는 했지만 가끔은 후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얘! 저기 봐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있는 동물이 있어. 들쥐는 아닌 것 같고.”
에톰이 말하면서 동물 옆으로 걸어갔다.
“두더쥐야! 근데 손에 상처를 입었어. 치료를 해줘야 될 것 같애.”
“친구 어쩌다가 다쳤니.”
에톰이 측은한 심정으로 말했다.

“집에서 너무 멀리 나오는 통에 길을 잃어버렸어. 집으로 가려고 땅을 파다가 그만 돌을 파고 말았어.”

“저런 안됐구나.”

“하나야 붕대하고 약 좀 가져와라.”

에톰과 하나는 약을 바르고 다친 오른 쪽 손가락에 붕대를 감았다.

“고마워 이 은혜는 잊지 않을게.”

“얘 나는 너하고 말은 안 통하지만 너가 배가 고플 것 같구나. 이거 먹어 비스켓이야.”

“고마워 이쁜 아가씨. 배고픈데 먹으니 더욱 맛이 좋아.”

“에톰아 얘 뭐라고 그러니?”

“응 맛있는 비스켓 고맙다 그러고 너보고 예쁘대.”

“하하하 마지막 말이 멋지네.”
하나는 달처럼 환한 웃음을 날리며 싱그럽게 말했다.

“잘 있어.”
두더쥐는 손을 흔들면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잘 가! 다음에 또 만나.”
하나와 에톰이 두더쥐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만물은 어둠속으로 잠겨들었다.

“넌 좋겠어. 사물과 대화를 하니.”
하나가 부러운 표정을 지으며 에톰에게 말했다.

“7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많이 외로웠어. 대화할 사람이나 사물이 필요했거든. 주변에 널려있는 사물에게 말을 걸어도 그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어. 그래도 혼자 중얼거렸더니 어느 날 거짓말처럼 사물들이 말을 해왔어. 심지어 어머니가 아끼던 주전자도 나에게 말을 걸어왔어.”

“좋겠다. 너의 신비한 능력 반 만주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걸.”

“이 깍쟁이.”

하나가 에톰을 혼내주려 하자 에톰이 천막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둘은 이내 잠이 들자 샛별들이 살고 있는 상큼한 꿈나라로 드림카를 타고 여행을 하였다.

 “기상”
코스모가 들판에 서서 천막을 향하여 고함을 질렀다.

“선착순!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과 로봇이 오늘 식사당번이다.”

그래도 아무도 나오질 않았다.
자존심이 상한 우리의 팀장이 한 번 더 고함을 질렀다.

“불이야!

이때 세 명이 동시에 손에 옷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어디야 불났다며 형!”

“하도 안 일어나는 바람에.”
코스모가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은 웃음을 날렸다.

소년들은 들판에 서서 옷을 다 입고 줄을 섰다.

“에톰이 꼴지야. 오늘 식사 당번 맛있는 진수성찬을 기대할 게.”
코스모가 자뭇 진지하게 말하자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웃음소리가 대지에 퍼지면서 온갖 식물과 동물들의 잠을 깨웠다.
하늘과 육지가 붙은 틈사이로 금방 잠을 깬 해님이 고개를 내밀었다.
멀리서 야생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바람이 들풀을 비로 쓸듯 쓸어갔다. 들판은 도시처럼 막힌 곳이 없어 아침 햇살이 일찍 찾아들었다. 소년들의 첫 여행지는 그들을 약간 들뜨게 했다. 그들은 여행준비를 서둘렀고 어느 정도 준비가 완료되자 출발을 서둘렀다.  

  “아침이슬과 비스켓  우주식으로 배를 채웠으니 이만하면 먼 여행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애.”
하나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자 그럼 더 이상 탈 손님이 없으니 출발한다. 꽉 잡아! 놓치면 늑대의 밥이야!”

드림카는 며칠 동안 정들었던 안식처를 남겨두고 날개를 퍼득이며 하늘로 치솟았다.

“와우 경치 좋은 데. 이 번 여행은 정말 흥미진진해.”
에톰이 손을 흔들면서 사물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에톰 저기 봐 어제 우리하고 만났던 두더쥐가 나와서 손을 흔드나봐.”

“그래 두더쥐야 친구들하고 잘 살아. 다음에 또 보자구.”
에톰이 두더쥐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두더쥐는 좋겠어. 손 흔들어 주는 사람도 있고. 나는 언제쯤 저런 대접을 받을지.”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 로보킹. 우리는 항시 너의 친구야 너나 우리나 이제 같은 운명의 배를 탄 거야. 살아 있는 존재는 언젠가 헤어지지. 하지만 우리가 같이 있는 동안은 언제나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가까운 사이야.”
코스모가 자뭇 비장한 어조로 읊어대자 소년들은 감격해하며 눈에 눈물이 고인다.

“우리의 앞날을 위해 모두 파이팅을 외치자구. 파이팅!”

하나가 선창을 하자 모두 파이팅을 외친다. 코스모가 운전대를 잠시 놓는 통에 드림카가 꿈틀하며 몸부림을 친다.
들판은 넓었으나 억새풀만 무성하였다. 정오의 때약볕은 소년들을 쉬이 지치게 하였다. 나무들은 주변에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으나 다행히 느티나무가 한 그루 우뚝 서있었다.

“느티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갈까.”
코스모가 대원들에게 말하였다.

“나이테를 재어 볼까.”
에톰이 나이테를 재려고 팔을 감았는데 그의 손끝에 음각으로 파인 형상이 느낌으로 다가왔다.

“여기를 봐! 거북등처럼 새긴 문양이야!”
에톰이 대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문양은 비행사K가 기보에 남겨 놓았던 문양과 똑 같애. 그렇다면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은 정확해”
코스모가 다행스런 표정을 지었다.

비행사 K는 자신이 납치되어 가는 길을 누군가에게 알리기 위해서 느티나무에 표시를 해놓았던 것이었다. 

 “여기가 아모르섬에서 반경 100KM떨어진 곳이야. 지금부터는 걸어 가야해.”
코스모가 소년들에게 신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드림카는 잠시 접어놓아야 겠어.”
코스모가 말했다.

“드림카! 수고했어. 원자 상태로 돌아가 줘.”
에톰이 드림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분자 상태에서 원자로 바뀌며 드림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톰의 손바닥에는 손톱만한 칩으로 바뀐 드림카가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에톰이 칩을 주머니에 넣고 쟈크를 잠갔다.

“흙의 시료를 채취하여 조성분석을 한 번 해보자구.”
하나가 흙 샘플을 채취하여 로보킹에게 실험을 의뢰한다.

“드디어 나도 할 일이 생기나봐.”

“심심했지 이제부터 할 일이 많아질걸.”
에톰이 웃으며 말했다.

로보킹의 몸속에 들어간 샘플의 화학분석 조성이 화면에 뜬다.
 지구를 구성하는 다른 원소는 평균인데 핵 실험 시 발생하는 방사능이 과량으로 검출되었다.

“이상하네. 여기는 핵실험장소로 적합하지 않은 곳인데? 그리고 핵실험은 세계평화 단에서 지정한 장소에서만 실험이 가능한데...?”
하나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군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력 그러니까 과학자들을 납치한 사람들이 아닐까?”
에톰이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피력하였다.

“그럴지도 모르지. 최첨단 과학을 독점하여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집단?”
코스모도 에톰의 생각에 동의하였다.

“그래도 신중하게 다양한 실험을 더 해봐야 될 것 같애. 우연히 떨어진 달 조각이나  다른 우주의 암석에서 방출된 파편일지도 모르잖아.”
로보킹이 말했다.

“그래 역시 로보킹다워. 너의 사려 깊고 정확한 판단력은 놀라워.”
하나가 로보킹을 은근히 자랑한다.

“너무 띄우지마. 떨어질까 두려워.”
로보킹이 몸을 부르르 떠는 흉내를 내었다.

“하하하”

소년 셋이 큰소리로 웃었다.

하늘에서 원을 그리며 소년들의 동정을 살피던 독수리들이 놀라서 멀리 달아났다.

“오랜만에 인터넷 검색도 좀 해 볼까.”
하나가 인터넷을 손으로 만지자 컬러화면이 열린다. 그런데 바탕화면이 하나가 설정했던 화면이 아니고 엉뚱한 그림으로 변해있었다.
바둑알로 그려진 이상한 그림이었다. 그 그림은 일전에 에톰의 바둑판에 나타났던 그림과 같은 모양이었다.

“이상하군. 누가 이런 장난을 했을까? 바둑이 두고 싶으면 곱게 메시지를 보낼 일이지. 이건 아닌데...?”
하나는 이상한 해킹도 다 있다며 인터넷을 다시 꺼버렸다.

“걸어가면 다리 아프지 않니? 내 몸을 잡고 따라와.”

“역시 로보킹이야.”
에톰이 외치며 신발에 장착되어 있는 고성능 특수바퀴레버를 눌렀다.

소년들 셋이 에톰의 몸뚱이를 잡자 로보킹이 시속 60KM의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와우 신난다. 우리는 숏 트랙 국가대표야!”

에톰이 노래를 부르자 소년들도 덩달아 좋아했다.
10여분의 시간이 흘렀다.

“로보킹 여기서 잠시 점심을 먹고 가자.”
팀장 코스모가 말하자 로보킹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모르 섬 끝까지 갈려고 했는데.”

“하하 로보킹 우리는 먹어야 살 수 있는 생물이야.”
하나가 웃으며 로보킹을 달래었다.

우주식으로 간단한 점심을 대체한 소년들이 출발을 서두르고 있었다.
 들판은 끝없이 넓고 평화로웠다. 그 옛날 징기스칸이 말을 타고 달렸던 길을 소년들이 과학자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로보킹을 타고 달려 갈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