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이 자취를 감추는 새벽녘이다.
바둑학교가 어둠속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교장은 소년 셋의 신상명세표를 보고 있었고, 2030년의 마지막 날이 저물고 있었다.

소년 셋과 담임 털보선생이 외부와 차단된 교장의 방에 모였다.

 “제군들도 알고 있듯이 화성우주 기지건설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과학자 네 명이 두 달 전에 행방불명이 되었다. 국가 정보원에서 은밀히 수색을 해오고 있지만 그들이 잡혀간 곳은 오리무중이다. 에톰의 아버지도 같이 잡혀갔으니...”

교장은 안쓰러운 눈길을 에톰에게 보내었다.
에톰의 얼굴에 순간 비장한 결심이 서고 설움 한 덩어리가 휙 하고 지나갔다.

“구조대 지원자 23명중 여러분이 선발된 것을 축하드린다. 혹시 지금이라도 가고 싶지 않은 학생은.”

“......”

“지금 말하라.”

신중하게 말을 뱉은 교장은 털보선생에게 다음 말을 하도록 눈짓으로 재촉하고 있었다.
 
“너희들이 이 학교를 대표해서 뽑힌 것은 바둑실력과 뛰어난 두뇌다. 너희들의 각자 전공도 임무 수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너희들이 참고할 자료는 바로 이 기보밖에 없다.”

털보선생이 소년들 앞으로 기보 한 장을 내밀었다.
소년들은 우주비행사 K가 남긴 기보를 보았다.
K가 흑으로 둔 바둑 기보에는 천원에 첫수가 놓이고, 우상 귀에서 백두 점을 거북등으로 빵 때림 하고 있었다.

 소년들은 만약을 대비해서 혈액과 줄기세포를 채취하여 냉동실에 보관하고 게놈USB메모리를 남겼다. 사고를 당하면 치료에 도움을 주고 자신들의 DNA를 남기기 위한 조치였다.
털보선생이 로보킹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왔다.

“로보킹! 소년들에게 인사해.”

“안녕 나 로보킹이야 이번 구조대에 함께 가게 되어 기뻐.”

로보킹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소년들은 함성을 질렀다.

“와 로보킹이다.”

소년들은 서로 손을 잡고 로보킹을 만졌다. 인간의 피부처럼 매끄러웠고 따뜻했다.

“로보킹은 여러분들이 위험에 빠졌을 때 도와주고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알다시피 로보킹은 우리학교 과학자들이 개발한 가장 우수한 로봇이다.”
 
에톰은 로보킹과 함께라면 어떤 임무수행도 가능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양한 화학분석 실험에서 로보킹은 움직이는 야외 실험장이 될 것이다.

 “개인장비12가지 목록을 보고 잘 챙겨라. 특히 비상식량은 필수다.”

털보 선생은 제자들의 앞날에 행운이 깃들기를 빌며 따스한 음성으로 조용히 말했다.
 이 학교의 외부적인 간판은 바둑학교였으나 사실은 과학영재 학교였다. 전국의 과학영재 아이들 120명을 모아서 과학과 인성교육 일반학교에서 배우는 학과목을 가르쳤다. 미래에 국가의 과학을 짊어질 인재들이었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학비는 전액 국가에서 부담하였다. 바둑은 학과목 중 단지 한 과목에 불과하였다.
하나는 씨앗들을 소중히 챙겼다. 우주식량을 환으로 가져가지만 가끔은 밥을 먹고 싶을 때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역시 최고야. 우리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줄걸.”

코스모가 리드미컬한 음성으로 노래하듯 말했다.
 에톰이 코스모와 하나를 동시에 보며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날렸다.
소년들 셋은 자신들의 임무를 잠시 잊고 깔깔대고 웃었다.

 소년들을 태운 드림카가 시동이 걸리자 옆구리에서 날개가 나오며 순식간에 하늘을 날았다. 교장과 털보선생이 소년들을 손짓하고 북두칠성이 자동차의 천장을 통하여 소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형 좀 더 빨리 가면 안돼.”

에톰이 코스모를 재촉한다.

 “지금 속도도 시속 500KM인데.”

 “어디쯤 내려야할까.”

하나가 궁금한 어조로 말하였다.

“10분후 우선 적당한 들판에 내리자 구. 이제 우리는 집도 없고 잠 잘 데도 없으니 천막을 쳐야하거든.”

에톰은 약간 음울한 어조로 말했다.
 
“걱정들 붙들어 매시라 구. 이 형님이 아우들을 멋진 곳으로 모실테니.”

 코스모는 야트막한 평지가 보이자 그곳에 착륙을 하였다.

 “에게 이곳이 멋진 곳이야.”

 하나는 앞으로 자신들에게 닥쳐올 일들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약간 실망어린 어투로 말하였다.
에톰은 들판에 널려있는 들쥐에게 먼저 인사를 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들쥐들아 안녕.”
 
“어머 반가워! 너희들은 어느 별에서 왔니?”

들쥐 아가씨가 약간 호들갑스럽게 말하였다. 아직 몸단장을 덜 하였는지 몸 여기저기 이슬이 묻어있었다. 

 “응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

 “그러면 같은 지구네.”

 “반가워 너희들을 환영해.”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데. 미안해서 어쩌나.”

 “괜찮아 우리는 식량을 미리 준비해왔어.”

 “그래. 그러면 다행이구나. 아침은 누구나 바쁜 시간이라 이만 갈게.”
 
“그래 다음에 봐.”

소년들이 손을 흔들었다.

 천막에 공기를 불어넣자 아담한 사무실이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소년들은 즉석에서 버려진 나무토막을 모아서 간이의자와 식탁을 만들었다.

“우리의 식사와 잠을 해결할 파라다이스네. 현판을 달아야지.”

코스모가 그럴듯한 천막집을 보고 운을 뗀다.

 “그래 형이 달아줘. 멋진 시인의 감성으로.”

코스모는 널빤지에 나무를 태워 만든 숯으로 글씨를 적었다.

‘우리들의 천국’

“그럼 먼저 식사부터 하자구.”

하나는 환으로 된 조그만 알약을 하나씩 쟁반에 놓았다.

“에게 이게 식사야. 이거 먹고 힘쓰겠어?”

에톰은 첫 식사를 보고 투덜거린다.

“나는 매일 안 먹어도 산다.”

로보킹이 의기양양하게 으쓱거린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먹지 않곤 살 수 없다네. 로보킹 너도 전기를 먹어야 움직일 수 있잖아.”

코스모가 말하자.
하나와 에톰이 로보킹을 보고 히죽거린다.

“낄낄낄.”

“자 이제 식사가 끝났으니 슬슬 일 좀 해 보자구.”

코스모가 먼저 컴퓨터에 손으로 따뜻한 온기를 전달하자 컴에서 컬러화면이 뜬다.

“행방불명된 과학자들의 얼굴과 캐리어를 살펴보자구.”

우주비행사K(45) 생명과학자A(43)에톰아버지 신소재과학자M(39) 우주과학자Q(48)

 “비행사K의 바둑실력은 같은 연구소에서 제일 세다며.”

코스모가 비행사의 얼굴을 유심히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미프로급 T인터넷9단인 K가 남긴 기보에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어.”

에톰이 내민 종이에는 K가 행방불명되던 날 시간에 쫒기면서 두었던 바둑내용이 들어있었다.

“천원은 과거 흉내 바둑이 한 때 성행했던 시절에 가끔 둔 기보를 나도 본적은 있어. 그런데 고수들이 초반 귀에서 여섯 수를 소비하며 두 점을 빵 때림 한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워.”

하나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괴한에게 쫒기면서 자신이 납치된 장소를 알리고 싶었던 거야. 자 이 기보의 천원은 아시아의 중심... 어쩌면 중앙아시아가 아닐까?”

에톰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며 얘기를 했다.

“그런 것 같기도 해. 그러면 우상 귀 거북등 빵 때림은 중앙아시아의 거북섬?”

코스모가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말하였다.

“거북섬!”

소년들은 즉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았으나 중앙아시아에 그러한 지명을 가진 섬은 없었다.

“우주의 중심이라. 하늘의 중심 바둑판의 중심을 우리는 천원이라 하였고, 천원은 하늘의 중심이라 했어.”

하나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하였다.

“우주의 별들은 큰 별 주변에서 돌아. 그렇다면 이 기보도 중심에서 팽이처럼 회전을 시켜보면 어떨까?”

소년들은 중앙아시아에서 기보를 회전시켰다. 기보가 거북처럼 천천히 아시아 주변을 돌았다. 이 때 코스모가 갑자기 우레 같은 고함을 질렀다.

“여기를 봐. 거북처럼 닮은 꼴.” 
섬의 이름이 아니고 섬의 형상이 거북처럼 닮은 곳 그곳은 몽골 고원의 아모르 섬이었다.

“야 아모르섬이다. 살아있는 거북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소년들은 탄성을 질렀다.
이제껏 소년들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로보킹이 한 마디 했다.

“아직은 탄성을 지르기엔 일러. 아모르 섬을 찾아내야 하고 그곳까지 가려면 먼 곳이야. 가는 동안 어떠한 일을 당할지 어떻게 알아. 우리가 무사히 과학자들을 구한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래! 로보킹의 말이 맞아. 이럴수록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고 면밀한 계획을 세워야해.” 

 에톰이 로보킹에게 약간 서운한 감정을 나타내며 말하였다.

“야 우리 위치 파악도 했으니 오랜만에 바둑이나 한 판 둘까.”
하나가 에톰을 보고 말하였다. 학교에서 둘은 바둑 라이벌로 서로 지고 싶지 않은 상대였다.

“그래 좋아 바둑이라면 자신 있어. 기왕 말이 나왔으니 3명이 리그전을 하여 우승을 하는 자가 팀장이 되기로 하자구.”

에톰이 코스모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하였다.

“바둑 좋지. 안 그래도 손이 근질거려서 좀이 쑤시려든 참이었어.”

코스모도 혼쾌히 동의하였다.
각자의 인터넷에 두 개의 화면이 뜨면서 세 명 리그전이 동시에 벌어졌다.

“훈수 해도 되나 모르겠네.”

로보킹이 말하자, 하나가 즉시 응수했다.

“3급의 훈수 정도야 얼마든지 사양 않겠어. 단 두 사람에게 훈수해줘.”

로보킹은 괜히 아는 체 했다가 무안만 당하자 얼굴이 빨개졌다. 인간지능 로봇도 인간과 다름없이 생각하고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창의적인 능력은 인간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바둑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해킹을 한 듯 에톰의 마우스가 바둑알을 제대로 움직여 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