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뎅거리지도 않았고 깊은 산 산사(山寺)에 걸린 풍경(風磬)이 바람의 호소를 되뇐 듯한 깊은 호소력이 있었다. 미실이 연회장으로 갔을 때 널따란 방안의 중앙엔 다섯 명의 무희(舞姬)가 춤을 추었고 위쪽의 상좌엔 주인으로 뵈는 사내가 치포관을 쓴 채 술잔을 기울였다. 그가 옹추공이다.

“아하하하하, 내 집에 귀인이 머물게 될지는 전연 뜻밖이었습니다. 가야부인이 아니었으면 큰 실수를 범할 뻔했습니다. 미실 낭주께서 새주(璽主)에 오르셨다면 월성의 법이 필요없을 터인데 아직은 태후마마의 명이 서릿발처럼 살아있는 줄 몰랐습니까?”

가까이 다가온 미실은 옹추공 옆의 빈 의자를 당겨앉았다. 그가 중언부언 호들갑을 떤 것은 무엇보다 미실이 죄를 짓고 도망 중이라는 수배자의 신분이었고 자신이 태후의 측근이라는 점이었다. 자연 그의 말이 매끄러울 리 없고 보니 미실의 대꾸 역시 고울 리 없었다.

“중원의 <사략(史略)>을 읽어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적지않지요. 장수가 되려는 자는 한결같이 <무경칠서(武經七書)>를 읽히고 설변(舌辯)을 풀어헤치는 변설가가 되려는 자는 <소장(蘇張)>의 책략을 읽히지요. 그래야만 천하를 경륜할 힘을 얻게 됩니다. 신라의 백성 중 중원에서 배울 것은 부처님 말씀이라고 한 자가 있습니다만, 자신의 짧은 생애를 선도(仙道)로 더듬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쇤네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선도라···. 그것은 참으로 추상같은 학문이 아니오?”

“하긴 그렇지요. 도학의 깊이가 얼마나 깊고 위험한지를 모르기에 가볍게 생각해 구름 타는 학문이라고 할지 모르나 우리 신라도 유불선(儒佛仙)이 세 발 솥처럼 지탱하고 있으니 그나마 넘어지지 않는 게 아니겠습니까. 바람을 보십시오. 불어오는 바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지만 잡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다고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고 우기는 것은 어리석지요.”

“아하하하, 그렇소. 오늘의 연회를 연 것은 그대가 가야의 명주 왕주(王酒)를 가져왔단 말을 들었기 때문이오. 염구가 그대에게 왕주를 건넨 이유가 무엇이오?”

“그것이 쇤네를 구한다 했습니다. 어쩌면 그 술이 ‘옹추공’ 나으릴 구할 수도 있구요.”

“나를?”

옹추공은 믿기지 않은 낯으로 따뤄놓은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 내려놓았다. 그는 두 손을 소리 나게 맞장구치며 좌중을 향해 명을 내렸다.

“무희들은 그만 물러가라. 내 미실 낭주의 춤사위를 볼 것이다.”

미실을 돌아보는 옹추공의 관심은 어느새 말로만 전해온 미실의 춤사위에 머물러 있었다. 좌중엔 옹추공과 호위무사만 있었기에 미실은 가볍게 웃는 것으로 답을 주었다. 이런 사실을 어찌 알았는지 예의 목부인이 악공들을 데리고 연회장에 들어서더니 길이가 한 자는 넉넉한 청색과 홍색끈을 건네주며 물러갔다.

청색과 홍색. 이 두 가지 색은 칠성노인(七星老人)과 삼신할미의 색이다. 청이 사내면 홍은 여자다. 이것은 혼인을 나타내는 색으로 부부의 인연으로 합환(合歡)을 이루는 색이다. 목부인이 두 가지 색깔의 천을 넣은 건 연회장에서 어찌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것이다. 청색과 홍색이 얽혔으니 당연히 방사무(房事舞)다.

얼마 전 남도의 연회에서 무리를 이끌던 방사무(房事舞)는 오방무(五方舞)다. 다섯 방향을 의미하는 방사의 동작으로서 무리를 이끈 춤이지만 한 사람을 이끈 춤은 다르다. 자리에서 일어난 미실이 청홍의 천을 어깨에 둘러맨 채 몸을 뒤로 젖혀 양팔을 휘저었다. 이것은 집단이 아닌 개인 대 개인의 방중행위를 뜻하는  ‘십동무(十動舞)’였다.

십동. 이것은 열 가지 움직임을 의미한다. 춤사위가 허리를 젖혀 두 팔을 휘젓는 자세는 여인이 두 팔로 사내를 껴안고 사내의 몸이 진입해오는 것을 맞아들이는 자세다. 여인의 행동이 사내의 몸을 빈틈없이 맞아들이고 싶은 걸 의미했다. 이런 행동에서 미실이 원무를 추듯 몸을 돌려 다리를 내뻗었다. 사내로 하여금 방아를 찧으며 눌러달라는 의미다.

그 자세에서 오종종 걸음을 사뿐거리며 몇 발짝 건너뛰며 배를 내미는 건 여인이 깊은 즐거움에 빠지고 싶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엉덩이를 좌우로 넌짓 넌짓 돌리는 것은 무덤덤한 마음이 기쁨으로 돌아선 것을 의미했다.

미실이 그 자리에 선 채 몸을 좌우로 흔들었다. 이것은 방중 행위에서 여인의 두 다리가 사내의 양쪽다리를 휘감는 경우다. 어서 빨리 깊숙이 진입해 달라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춤사위는 당연히 배배꼬는 형태로 바뀐다. 이와 동시에 몸을 옆으로 흔드는 것은 화심(花心) 양쪽을 건드려 달래는 보챔이며, 허릴 뒤로 젖힌 채 몸을 뻗는 건 열락의 절정상태에서 수족이 저림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방사를 나누는 남녀는 이미 절정의 고비를 넘었다는 의사표시다.

이게 ‘심동무(十動舞)’다. 남녀의 방사에서 일어나는 특징을 열 가지 움직임으로 나타낸 것이지만 춤사위가  한 꺼풀 벗어났을 때 옹추공의 낯빛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고독(蠱毒)’에 취한 것이다.

▲십동무(十動舞) ; 방사를 의미하는 춤

▲화심(花心) ; 자궁입구

▲청홍의 색은 남녀의 방사를 나타낸다.

▲청동솥은 제례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