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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달 19로 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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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2013-02-19 오전 11:08 조회 3632추천 15   프린트스크랩

 

아저씨,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조각달

 

 

 

무료급식소에서 젊은 놈이라 눈치 주는 걸 애써 외면하고 무료급식으로 점심을 때운 뒤에 바둑 두는 노인네들 옆에 서서 구경을 했다. 냄새가 난다면서 자꾸 밀어냈지만 하수들 바둑도 때로는 흥미진진한 법이다. 결정타를 서로 못 날리고 아슬아슬하게 판을 유지 하는 것을 보면 바둑에는 정말 묘한 조화가 존재하는 가보다. 일찍이 오청원 선생께서는 바둑에 대해 갈파하시기를 조화라고 했었다. 바둑판 밑에 세종대왕 두 분이 숨을 죽이면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늙은이들에겐 막걸리에 소 짜 족발로 거나하게 취할 수 있는 큰 돈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땅바닥에 누군가가 비벼 끈 담배를 주워 살살 턴다.

 

염병 장초를 버리려면 밟지를 말고 밟으면 비비지를 말아야지. 도대체 조선 놈들은 매너라고는 약에 쓸려도 없다니까.”

 

근거 없는 국민비하발언을 함부로 날리면서 주머니를 뒤져서 라이터를 꺼내어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기껏해야 다섯 모금의 연기다. 하지만 식후연초 불연초자 대대손손 고자서출이라는 말이 있다. 식후에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고자로 대를 이을 것이로다.

 

딱 끊으면 수상전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두 노인의 눈빛이 곱지 못하다. 하지만 한 노인의 눈길이 판위로 향한다.

 

수가 한참 모자라잖아.”

 

나는 허공을 보면서 다시 중얼거린다.

 

유가무가는 불상놈이라지?”

 

물론 유가무가는 불상전이라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다. 딱 소리와 함께 힘찬 바둑돌이 판위에 놓이고 한 노인이 사색이 된다.

 

이 개자식이 끝내 사고 치네?”

 

내 훈수로 바둑이 망해버린 노인네가 내 멱살을 움켜쥔다. 성질도 더럽다. 돈 만원으로 젊은 놈 하나를 죽이려 한다. 덥석 잡아온 손아귀 힘이 장난이 아니다. 보기엔 곧 죽을 것 같은 노인네가 힘은 강호동이다.

 

“18 이거 놔.”

 

이미 삭을 대로 삭아있던 내 옷을 부여잡은 손아귀에 낡아서 삭은 옷자락이 그대로 뜯긴다.

 

바둑은 X도 못 두면서 힘은 장사네?”

 

슬쩍 밀치고 슬며시 달아난다.

 

야 이 개자식아.”

 

돈 이만원 때문에 저렇게 악을 쓰는 인간은 최악이다. 늙을수록 품위를 지켜야 하는 법이거늘 앞날이 창창한 이 젊은 놈한테 무슨 악담이람. 우리 아버지는 개가 아니다. 고로 나는 개자식이 아니다. 나는 돌아서서 무식하기 짝이 없는 영감에게 혀를 불쑥 내민다. 길길이 날뛰는 영감을 뒤로 하고 공원을 빠져 나온다. 늦은 밤이고 갈 곳이 없다. 여학교 앞. 아직도 나는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떨린다. 오십이 넘은 주제에도, 아니 거리로 나선지 삼년이 지났는데도 난 그래도 대한민국의 보통 남자인 가보다. 전신주에 기댄다. 오늘따라 가로등 불빛이 안온하다. 나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벽에다 똥칠하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남아서 이렇게 구차하게 살아남아서 뭘 어쩔 것 인가? 뭐 그래도 아무튼 살아남을 것이다.

 

예쁘장하게 생긴 한 여자 탤런트의 자살로 떠들썩했었다. 굳이 그 여배우가 아니더라도 자살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로 실연으로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을 하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다.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빚더미에 올라 앉아있고 마누라는 젊은 샛서방이랑 바람이 나서 툭 하면 외박을 하고 고등학교 다니는 딸은 가출해서 돌아다니다 임신을 덜컥하고 돌아와 임신 중절을 시키고 중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은 친구를 패서 치료비로 천만 원을 물어주고 직장에서는 권고사직을 당하고 보증 서준 녀석은 중국으로 도망가서 잡을 길이 막연하고 몇 푼 얻어 쓴 고리대금은 이자에 이자를 쳐서 조폭들에게 시달림을 당하고, 그럴 때 어쩔까? 확 한목숨 던져 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겠지.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다. 아포리아, 도저히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의 상황에서도 또 악착같이 살아지는 것이 그것이 인생이다. 뭐 거창하게 인생론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죽지 않고 버티면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자 지금 당장 당신이 사둔 수면제를 버리고 툭툭 털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막연하지만 어때, 우선 마누라를 설득해서 샛서방 정리하고 딸내미는 잘 타이르고 아들 녀석은 눈 지그시 감고 한번 안아주는 것이다. 파산 신고를 하고 조폭들은 경찰한테 신고해 버리는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라. 춥다, 엄청난 추위가 온몸을 휘감는다. 입춘 우수 지나고 한식날 다가오는데 왜 이렇게 추운 것일까? 조각달아, 문득 어디선가 절망의 현실을 가르는 아버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분이 이렇게 다시 생생하게 내게 이름을 불러주신다. 조각달 아, 전생과 현생과 억겁의 미래와 무한대의 절망을 가르는 아버님의 목소리. 조각달아,

 

아버지?”

 

그래, 나다 에비다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로 저를 데려가세요, 여긴 너무 춥고 희망도 없어요,”

 

바보 같은 놈아,”

 

아버지,”

 

어둠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아버지였는데, 꺼칠한 수염은 여전하고 훌쩍한 키도 여전하고 깡마른 어깨도 여전하고 바람 냄새를 풍기면서 걸어오시는 모습도 여전한데,

 

어쩌자고 이러는 게냐?”

 

아포리아, 절망이에요, 출구가 없는 완벽한 절망이에요.”

 

자 받아라, 이젠 좀 사람답게 살아봐라

 

아버지가 불쑥 내미는 것은 여섯 개의 숫자가 적힌 흰 종이였다.

 

내일 저녁에 당첨될 로또 복권의 번호다.”

 

아버지, 고마워요

 

아버지는 불현듯 사라지고 나는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단돈 천원을 투자하여 한 줄의 로또를 구입한다. 초조한 기다림, 아버지가 내게 거짓말을 할 까닭이 없다. 이제 복권이 맞으면 빚도 갚고 아아 염병할 내 인생은 끝난 게 아니었구나. 초조한 기다림 끝에 낡은 전파사 앞에서 벙어리 화면을 이용해 로또복권을 들여다보면서 숫자를 맞춘다. ? 어어? 으아? 와 아 앙...

 

이번 주 일등은 단 한 명이군요, 인천시 계양구에서 당첨되었네요, 당첨금은 88억 원 이네요."

 

그게 바로 나다. 세금을 공제해도 얼마야? 나는 희열로 몸을 떤다. 그런데 여전히 춥다. 나는 로또를 들고 달려가야 하는데 내일아침 은행이 문을 열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환장하겠네, 우선 비상금 숨겨두었던 것으로 컵라면에 소주 한 잔 하자. 24시간 편의점으로 들어가 컵라면과 소주 한 병을 사고 꼬깃꼬깃 숨겨두었던, 일 만 원짜리 종이돈을 내밀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학생이 돈을 받아들고 뭐라고 중얼거린다.

 

아저씨,@#$$%^^&**(*()_|+”

 

이 신나는 인생에 왜 엉뚱한 년이 태클 들어오는 것이냐? 시끄러운 헛소리 하지 말고,

 

얼른 거스름돈이나 줘라

 

아저씨,@#$$%^^&**(*()_|+”

 

잘 안 들린다. 지금 내게 뭐라는 게냐, 어서 거스름돈이나 달라니깐

 

얼른 뜨거운 라면국물로 몸을 녹이고 소주한 잔을 해야 하는데, 망할 년의 계집아이가 자꾸 뭐라고 지지배배 하는 것이냐. 제발 거스름돈이나 달란 말이다.

 

아저씨.”

 

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이 손짓해서 불렀다. 내가 로도 맞은 걸 알고 유혹하려나? 설마? 가까이 다가가자 여학생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아저씨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뭐라 카노?”

 

갑자기 여학생이 소리를 빽 질렀다.

 

아저씨 이런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

 

화들짝 놀라 눈을 뜨자 나는 길가 전신주 아래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는데 밤늦게 학습을 마치고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내게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모두가 꿈이었다. 로또도 거스름돈을 안주던 여학생도, 번호를 건네주던 아버지도, 아아,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데 뒤에서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냄새가 심하네, 노숙하는 아저씨 인가봐,”

 

? 나 저 아저씨 알아. 공원에서 급수를 속인 사기바둑으로 할아버지들 돈 따먹다가 경찰서 잡혀갔었는데 금방 풀려났대.”

 

뭐 지 말로는 한때 잘 나가는 소설가였다고 뻥치고 다니는데 아무도 믿질 않아.”

 

소설은 무슨, 한글도 잘 모를 거 같은데? 호 호 호

 

"꼴통에다 쌈도 잘하고 여자 노숙자들 사이에 인기도 있다고 하던데? 말은 또 청산유수야. 입만 열면 미사여구가 줄줄이 쏟아진다더군."

 

"생긴 대로 가지가지 하면서 사네. 국산도 참 다양해. 그렇지?"

 

"맞아."

 

문득 부끄러움, 잊고 있던 부끄러움이 온몸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것이었는데, 희망을 버리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나도 길다는 것이었는데, 나는 찬물로 머리를 감기 위해 공원의 공중화장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머리를 감고 나면 삶의 희망이 보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ps: 조각달 인사드립니다.

바둑에 관한 글을 쓰고 싶어 나도 작가 신청했습니다.첫 번째로 단편하나 올려봅니다. 종종 뵙기를 소망합니다. 조각달 큰절 넙죽..

 

┃꼬릿글 쓰기
팔공선달 |  2013-02-19 오전 11:27:1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서오세요. 일단 근무중이라 인사부터 ^^ 건필하소서(__)  
조각달 감사합니다. 인사가 늦었네요. 작가님도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장금아빠 |  2013-02-19 오후 2:50: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빌어 먹어도 이승서 빌어 먹는게 낫겠지요.
재미있네요..  
팔공선달 올만입니다(__)
조각달 삶의 진정성과 치열함에서 배제된 삶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패스파인더 |  2013-02-19 오후 10:00: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미있네요..
눈가에겐 정말 절실히 다가오는 것도 있을 겁니다...종종 뵙기를...  
조각달 바둑과 인생은 닮아있지요. 저도 종종뵙기를...
yls1006 |  2013-02-19 오후 10:07:54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영등포 오비공원같은 느낌이드네  
조각달 공원에서 두는 내기바둑을 지켜보는 것 재미있지요. 오비공원일지도..하하하
철권미나 |  2013-02-20 오전 9:26: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이쿠.. 엄청난 고수분이 계셨군요!  
철권미나 장관입니다..^^*
철권미나 조각달이 아름답게 눈짓하네여 ..!
江湖千秋 |  2013-02-20 오후 4:33: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잼난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좋은글 마니마니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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