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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달 19로 산책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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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속에 피는 꽃

2013-02-20 오후 9:39 조회 6824추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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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속에 피는 꽃

눈물속에 피는 꽃

조각달

“한 열흘 낚시질이나 하다 가렵니다.”

내 말에 주인사내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주 팔자가 늘어졌군.”

작지만 또렷한 소리로 사내가 말했다.

“팔자가 늘어진 건 아니고 제가 좀 머리 아픈 일이 있어서 생각 좀 하려고 그래요.“

사내가 다시 중얼거렸다.

“아주 호강에 겨워서 오강에 머리감는 소리만 하는군, 염병할“

싸가지가 풍부한 사람은 아니군, 나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경계해야지. 그때 그녀가 왔다. 한탄강 상류의 민박집이었다. 한탄강의 원류가 되는 강이 흐르고 있고 그 강을 끼고 오밀조밀 연한 집들이 보이고 긴 다리가 보이고 그 다리건너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마당이 있고 그 마당에는 경운기 한대와 리어카 한대가 나란히 있고 그 옆에 오토바이 100cc 짜리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커다란 감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햇살을 등지고 그녀가 왔다. 보따리를 주렁주렁 이고 들고 아마 시장이라도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서방이라는 작자는 쫓아가서 받아줄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듯 해보였다.

“하루 저녁에 2만원씩 만 내시고 밥은 이천 원씩 받으리다. 그 대신에 화려한 반찬을 기대하지는 마세요, 그냥 우리 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는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마당에 있는 평상위에다 시장 봐온 물건을 내려놓았다.

“민박을 하러온 손님인가요?”

내게 묻는 건지 아니면 자기 신랑한테 묻는 건지 애매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야 이년아, 그럼 민박하러 오지, 우리 집에 열쳤다고 저런 서울 양반이 오겠어?“

여자가 피식 웃었다. 체념이 섞인 웃음. 나는 사내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아직 마흔은 넘지 않은 듯 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제법 체구가 컸다. 함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망나니처럼 흩날렸고 가닥염색을 한 것이 그런대로 어울렸다.

“이방이오.”

사내가 나를 데리고 가서 뒷방의 방문을 열었다. 아이의 방인 듯 했다. 초등학교 삼학년의 교과서가 보였다.

“영일이는 몸이 아파서 외갓집에 가있어요”

방의 주인인 아들이름이 영일이인 모양이었다.

“밥 먹으러 갑시다. 밤낚시 할 작정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 실린 내 낚시장비에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네, 낚시는 밤낚시죠”

“거참 전국팔도에 좋은 낚시터 다 버려두고 하필 녹조에 피라미새끼하나 곁눈질 안한지 오래되는 이 한탄강 똥물로 낚시를 하러 오는 꾼도 있네, 당신 혹시 간첩 아니요?“

“맞아요, 내가 간첩 리철진이요.”

내말에 사내가 내 어깨를 치면서 하하 하고 웃었다.

“갑시다. 마누라쟁이가 밥상 봐 논 모양이요, 이번 농담은 정말 멋있었어요, 하하하“

“인사나 하고 지냅시다, 난 설태희고 마흔 두 살이요”

내가 말하자 그가 대답한다.

“난 이중건. 마흔 두 살이요, 갑 친구네 하하 친구 먹는 게 어때?”

“좋아 중건이 한잔 할까?”

평상에서 조촐한 저녁식사가 있었다. 구멍가게를 겸한 민박집의 평상이라 종종 담배를 사러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녀는 밥을 먹다 말고 가서 담배를 팔곤 했다. 나는 그녀에게 소주를 한 병 달라고 했고 그녀와 그녀의 남편에게도 권했다. 마다하지는 않았다. 마침 얼큰한 동태찌게가 제법 맛이 좋아서 안주로는 그만이었다. 그녀는 홀짝 홀짝 잘 마셨다. 세 병째 마시면서 어쩌면 한숨 자고 새벽에나 낚시를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상을 물리고 나는 낚시 장비를 챙겨서 낮에 봐둔 다리 밑으로 향했다. 라면과 소주를 사면서 보니 사내는 이미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고 있었다.

“아줌마는 몇 살이에요?”

“서른일곱이에요.”

여자가 고개를 들고 배시시 웃었다. 고혹적인 미소였다. 까맣게 타버린 얼굴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잘 보지 못했던 얼굴인데 정말 미인이었다.

“아름다우시네요. 정말로”

“놀리지 마세요.”

여자가 담배와 라면을 건네면서 말했다.

...........................

그녀는 왜 내 곁을 떠나갔을까? 낚싯대를 드리우고 나는 하염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가 울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다른 사람은 두 번 세 번 하는 결혼을 나는 한 번도 하지 않고 있다.

“남편과 호적정리만 되면 당신과 살고 싶어”

그녀가 말했었다. 하지만 호적정리는 금방 되지 않았다. 지지부진하게 육 개월이 넘어서면서 나는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이거 혼 빙 간 인거 알아?”

“그거 여자가 남자한테 하는 말 아니야?”

그때 삐리릭 하고 핸드폰이 울었다.

쉿! 하고 그녀가 입을 옴츠렸다.

“알았어, 동창회 끝나는 대로 갈게”

남편이 있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힘들다. 이건 지옥이다. 허락받지 않은 사랑은 축복받지도 못하는 것이다. 음지에서 차가운 바람만으로 피어나는 꽃이다. 눈물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일주일간 시간을 주겠어, 그때까지 호적 정리해

아니면 내가 정리를 해야겠어.“

“아이는?”

“너 꼴리는 대로 해”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눈치 챈 거 같아.”

“18, 서방질 하는 주제에 뭔 말이 많아. 자 이제 우리 이쯤에서 확실하게 해두자“

나는 담배를 피워 물면서 모텔의 방문을 나섰다.

메시지가 떴다.

“내가 당신 사랑하는 거 잘 알지? 우리 아들 남편이 맡기로 했어, 내일 도장 찍기로 합의 했어“

나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핸드폰이 울었다. 나는 핸드폰을 받지 않았다.

“어디 간 거야?”

다시 메시지가 날아왔다. 나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까맣게 타버린 가슴에 꽃이 피진 않겠지 굳게 닫혀버린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눈물이

흐르고 있어-

나는 어느새 조관우의 늪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울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난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을까?

까무룩 졸았는가 싶을 때 낚싯대가 휘청했다. 잡을 생각도 없는지라 떡밥도 안 만들고 그냥 지렁이 사다가 대충 꿰어 놓은 그 낚시에 월척이 걸린 것이다. 낚싯대를 잡았다.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졌다. 비로소 모든 감각이 살아나고 있었다. 가슴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면서 흥분되기 시작했다. 약 십 분여의 실랑이 끝에 끌어낸 놈은 한눈에 보기에도 40cm 는 넘어보였다. 그리고 나는 소주를 마시면서 다리 기둥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며칠이 흘렀다. 나는 핸드폰을 다시 열지 않았다. 아마 그녀의 속은 까맣게 타버렸을 것이다. 너도 당해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저녁을 먹을 때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혼자 평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늘 하던 대로 소주 한 병, 그러나 혼자였다. 그때 다리 저쪽에서 술 취한 녀석이 오고 있었다.

“어이 일주일동안 밤새서 고기 두 마리 잡은 놈”

나는 피식 웃었다.

“술 많이 마셨구나, 중건이”

“좀 마셨다. 하하하”

나는 서둘러 낚시를 나섰다. 자리를 펴고 담배를 꺼내 물어야 하는데,담배가 달랑 한 개비였다. 나는 할 수 없이 슬금슬금 일어나 민박집으로 향했다.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가 울었다. 고즈넉한 야경,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나는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천천히 걸었다.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박집이 온통 전쟁터였다.

“이런 18년이 어디서 개겨?”

“죽여라 이 10새끼야”

평상에 앉아서 열린 문에서 치고받는 남녀를 보았다. 남자가 따귀를 후려치면 여자는 이를 드러내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사내는 덩치가 산만한 녀석이었고 여자는 조그만 체구의 여자였다. 그때 핸드폰이 울었다.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줄타기 하네.

“여보세요?”

“나야 태희 씨 어디야?”

“연천이야?”

“연천 어디 지금 갈게”

나는 무심코 끊었다. 그리고 다시 핸드폰을 꺼버렸다. 아악 하고 단말마의 비명이 들렸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서 벽에다 부딪힌 것이다. 여자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뛰어들었다. 사내의 손이 피가 흐르는 여자의 얼굴로 다시 날아가고 있었다. 퍽.

“이년이 죽으려고 어디서 개기는 거야?”

“그만 해 중건이”

내가 중건이의 팔을 잡았다. 여자가 죽을 거 같았다.

“놔 이 새끼야.”

아주 차갑고 서늘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아주 차가운 눈빛. 뱀의 눈이었다. 사람의 눈이 아니다. 모든 감정이 배제된 눈, 살인의 눈.

“죽여 버리는 수가 있어, 이 촌놈의 새끼야”

그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주 차가운 전율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정신을 잃고 있던 여자가 눈을 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마 부끄러움이거나 수치심이라던가 뭐 그런 극단의 감정.

“뭘 꼬나봐 이 새끼야 가서 낚시나 해”

퍽 하고 솥뚜껑만한 손이 내 볼에 꽂혔다. 나는 휘청하고 주저앉았다.

“죽여 버린다.”

놈의 발이 면상으로 날아왔다. 나는 놈의 발을 살짝 피하면서 종아리를 걷어찼다. 이종격투기에 나오는 로우 킥, 한국말로 하면 하단차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휘청했다.

“지금 뭐 한 거야? 개기는 거야? 너 오늘 죽었다.”

녀석이 주먹을 얼굴로 올리고 잽을 뻗으면서 껑충껑충 뛰었다. 보기보다는 빨랐다. 저 커다란 체격에 저런 동작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이, 중건이. 그만하지. 제수씨가 다쳤잖아.”

“내 마누라를 왜 네놈이 간수 하냐? 둘이 했냐?”

“더러운 새끼.”

발길이 날아왔다. 슬쩍 흘리고는 껑충 솟아오르면서 무릎으로 녀석의 복부를 쳤다. 헉,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괜찮아?”

나는 중건이를 잡아 일으키면서 물었다. 그때였다. 중건이가 갑자기 내 멱살을 잡으면서 안면으로 주먹을 날렸다. 녀석은 속임수를 쓴 것이었다. 콧등이 얼얼하더니 뜨거운 무언가가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코피였다. 죽고 싶은 거야? 나는 코피를 훔치고 마주섰다. 녀석이 주먹을 흔들면서 웃었다.

“좀 칠 줄 아네?”

“소싯적에 좀 놀았지. 너 정도라면 세 명은 있어야 할 거야.”

“개새끼 지랄하네.”

휙 몸을 돌린 녀석이 벽에 세워져 있던 낫을 집어 들었다. 비로소 공포가 몰려왔다. 칼이나 몽둥이라면 차라리 편할 것이다. 저놈의 낫은, 내 무협소설에 낫을 병기로 쓰는 무사가 있었지. 대겸(大鎌)이라는 병기로 낫 겸鎌자를 쓴다.

“모가지를 싹둑 잘라 줄까? 어제 이상하게 낫을 갈아놓고 싶더라니,”

도망칠 수도 없다. 나는 마당에서 껑충껑충 뛰면서 놈을 향해 손짓했다. 그때 정신 줄을 놓고 평상위에 앉아서 코피를 닦던 여인이 소주병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녀석을 향해 다가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한번만 빗나가면 넌 끝이다. 가장 빠른 일격으로 단 한방으로 놈을 제압하지 않으면 오늘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

“저 새끼하고 너하고 붙어먹었지? 오늘 낮에 낮거리 한 거야? 낮거리 하면 영웅이 난다는데 저놈 맛은 어땠어?”

낫을 든 사내가 여인에게 다가갔다. 여인을 헤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녀석을 유인해내려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미쳤냐? 여자들이 하도 달려들어서 도망치듯이 낚시를 온 건데 여기 와서 저런 까만 촌 아줌마랑 놀아나겠냐고,”

녀석이 돌아섰다. 눈에서는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짐승의 눈빛, 나는 저런 눈빛을 안다. 술이 취하면 저런 눈빛을 하던 친구가 있었다. 결국 그는 살인을 하고 지금 감옥에 있다. 나는 중건이를 향해 다가섰다. 녀석이 낫을 치켜들었다. 내려치기 전에 빨리 저 손목을 제압해야 한다. 순간, 퍽, 소리와 함께 중건이가 모로 쓰러졌다. 여자가 병으로 중건이의 머리를 내려친 것이었다. 나는 낫을 얼른 치워버렸다. 녀석이 머리를 흔들면서 일어나고 있었다. 퍽, 내 발길이 정확하게 녀석의 목덜미를 찍었다. 눈동자를 하얗게 까뒤집으면서 녀석이 다시 모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