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장에서 만난 사제...구리의 ‘뻥카’에 방심하지 말기를
이세돌 9단은 컨디션 조절차 대국 이틀전 형 이상훈 8단의 승용차를 타고 앞서 고향에 내려왔다. 이세돌 9단을 키운 권갑용 8단은 하루전 전야제 때 한국기원 관계자-취재기자들과 함께 대국장에 도착했다. 사전에 이세돌 9단도 모르고 있었던 걸음걸이였다. 26일 오후6시 전야제 시간에 맞춰 연회장 입구로 걸어오던 제자는 스승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여길...”
“하하...응원하러 왔지.”
사실 권갑용 8단은 니장건 몽백합그룹 회장 쪽의 청으로 갑자기 대회장을 찾게 되었다고. 중국기사 사위 웨량(岳亮) 6단(권효진 6단의 남편)과 친한 니장건 회장이 꼭 뵈었으면 한다는 전갈을 넣은 것. 권갑용도장이 배출한 간판스타인 제자 이세돌의 승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당연히 세돌이가 이겨야 하고, 이길 거라고 믿는다. 그런데 전야제에서 구리 9단이 컨디션이 안 좋다고 말했는데 내가 보기엔 엄살이다. VIP테이블에 같이 앉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는데 컨디션이 무척 좋아보였다. 어떻게 아냐고? 일단 혈색이 좋았고 피부가 뽀송송허니 탄력이 있었다. 승부를 오래하고 대단한 승부사들을 자주 보다 보니 이젠 얼굴만 봐도 컨디션을 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하.”
▲ 스승과 제작의 깜짝 조우를 카메라에 담는 기자들.
신안군이 서울과 워낙 먼 거리여서인지 10번기에 대한 관심도에 비해 대국장을 찾은 프로기사들은 거의 없었다. 이세돌 9단의 형 이상훈 8단과 스승 권갑용 8단, 양재호 총장은 대회관계자였다. 이런 면에서 박정상 9단이 바둑캐스터로 활동하고 있기도 한 부인 김여원 아마6단과 일부러 대국장에 걸음한 것은 이목을 끌만했다.
박정상 9단은 종일 검토실을 지키며 대국 추이를 검토했다. “어릴적부터 우칭위엔 선생의 10번기를 공부하며 꿈에 그리던 10번기를 현장에서 보고 싶어 찾았다. 현장에서 이들의 승부호흡을 느끼며 공부하러 왔다. 현재(오후3시반) 형세를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구리 9단이 약간이나마 우세하다. 이세돌 9단이 중앙에서 최대한 판을 어지럽힐 수 있다면 미세한 승부로 갈 것이다.”고 말했다.
▲ 대국장을 찾은 박정상 9단 부부.
붙임 두 방의 콤비네이션
초반흐름은 이세돌 9단이 괜찮았다는 평이었으나 중반에 터진 흑▲(실전 83의 수)와 ■(실전 흑113)의 연타로 흐름이 구리 9단 쪽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라는 게 검토실의 분위기다.
▼ <장면도>
<1도>에서 보듯 이세돌 9단은 백1에서부터 7까지 두었다. 백7의 마늘모로 좌변을 구축한 것은 형세를 낙관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박정상 9단 또한 “이 장면에서라면 나 역시 백7을 두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백의 행마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는 얘기.
▼ <1도>
그러나 다음 순간 떨어진 흑8의 응수타진이 생각지 못한, 실로 날카로운 잽이었다. 이 수는 이후 흑A의 수와 조합을 이룬 교묘한 수였고 B쪽 흑의 영향력(잠재력)을 헤아릴 때도 도움이 되는 수였다.
결과적인 얘기지만, 이 점이 날카롭고 아픈지라 조훈현, 송태곤 9단 같은 바둑TV 해설진은 <2도> 애초 백3으로 붙인 수로 이처럼 백1로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도 냈다. 흑2로 젖히면 백3으로 틀어막고, 만약 흑2의 수로써 3의 자리로 밀고들어오면 백A로 막아 그만. 따라서 흑은 B 따위로 변화를 꾀하겠지만, 어쨌든 <1도> 백8의 잽이 아팠기에 나온 얘기였다.
▼ <2도>
<3도> 수순이 30여 수 더 진행된 장면에서 흑1의 옆구리붙임이 작렬했다. 앞서 흑▲와 연계된 콤비블로다. 이에 가령-
▼ <3도>
<4도> 백2로 받는 것은 흑3에 젖힐 것이다. 다음 백A에는 흑B의 들여다보는 수가 빤히 보이고...백C로 단수치는 것은 흑D로 빠져나갈 것이다.
▼ <4도>
해서 이세돌 9단은 고심 끝에 <5도>백2로 젖혀 8까지 매듭지은 다음 백10 이하로 최선을 다해 끝내기에 들어갔지만 형세는 안타깝게도 미세하게나마 뒤져 있다는 게 검토실의 중론. 한국팬으로선 안타까운 흐름이지만 처지를 바꾸어 보면, 바로 이러한 점이 바로 두터움을 바라보는 안목, 보이지 않는 두터움을 활용하는 구리 9단의 실력이다.
▼ <5도>
그렇지만 박정상 9단은 “2국 때도 이와 비슷한 흐름에서 역전한 바도 있으니 이세돌 9단의 귀신 같은 막판 흔들기를 기대해 보자.”며 끝까지 응원을 멈추지 말자고 한다. 과연 이후 이세돌 9단은 혼신의 흔들기에 들어갔고, 형세는 반집까지 추격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흑이 간발의 차로 앞서 있는 형세라고는 하나 까딱 한숨 놓치면 곧장 뒤집어질 정도로 극미한 만큼 종국까지 끈을 놓지 말자. 승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현지취재=정용진, 김수광 / 사진협조=이시용]
▲ 대국장 복도창에 담긴 증도의 해안. 반상의 접전도 따지고 보면 이처럼 한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 아니겠는가.
▲ 10번기 주최사인 몽백합그룹의 니장건 회장이 취재진 뒤에 서서 대국 장면을 지켜보는 모습. 니장건 회장은 이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결코 스폰서의 권리나 직함의 위세를 내세움이 없이 팬들 틈에 묻혀 자기가 좋아하는 구리 9단의 대국을 지켜본다.
▲ 그저 한명의 바둑팬처럼 이처럼 사진도 찍고...
▲ 검토실에 앉아 바둑내용을 줄곧 지켜보는 정말 바둑을 좋아하는 마니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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