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이세돌 9단과 박영훈 9단이 삼성화재배 패권을 놓고 빅매치를 벌이고 있다. 세간의 관심어린 눈빛을 받으며 뚜껑을 연 1국은 예상외로 이세돌 9단의 손쉬운 승리로 끝이 났는데 박영훈 9단의 공격이 사뭇 아쉬운 판이라는 다수의 감상이 있었다.
초반 욕심 사납게 실리를 잔뜩 챙겨 논 이세돌 9단은 중반에 접어들어 박영훈 9단의 공격력을 시험이라도 하듯 과감한 침투작전을 연달아 선보였는데…. 재미있게도 이 작전은 박영훈 9단의 의표를 정확히 찔러가며 흑의 심장부를 강타한다. 힘의 우열이 갈린 장면을 다시 한 번 돌아보자.
제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3번기 1국
○이세돌 9단
●박영훈 9단
장소: 삼성화재 본사 특별대국실
날짜: 2008년 1월 21일
결과: 262수 끝, 백4집반승
장면1 (박영훈의 신선한 발상)
사이버오로 해설의 목진석 9단은 박영훈 9단의 흑▲를 상당히 좋은 수라 평가했다. A의 날일자 달림이 안팎 20집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 자리였지만 박영훈 9단의 눈은 중앙 두터움을 선택한 것이다. 목진석 9단의 판단은 이랬다. 흑▲가 단순히 상변 진영만 넓히는 것이라면 A보다 더 좋은 자리라 말할 수 없는데 후속 수단이 아주 멋들어졌기 때문이다.
실전진행1 (좋은 수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곧이어 나온 박영훈 9단의 수에 목진석 9단은 고개를 갸웃했다. 검토실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는데 흑2의 한 칸 다가섬이 당최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 백으로서는 가뜩이나 두고 싶었던 3의 자리를 자연스럽게 두게 됐고 3의 자리를 두면서 상변 흑진영의 삭감과 백말의 보강을 동시에 하게 됐으니 이세돌 9단으로선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장면이겠다. 이제 와서 흑4의 지킴은 한 발 늦었다.
참고도1 (일관성 있는 행마)
애초 흑▲의 의도를 살려 백 두 점을 압박하면서 상변을 키울 수 있는 궁리를 했어야 했다. 일감으로 흑1의 어깨짚음이 떠오른다. 상변 모양을 입체적으로 키울 수 있는 좋은 수.
참고도2 (적극적인 발상)
타이트하게 바짝 압박해나가는 흑1의 붙임수도 고려해볼만하다. 이하 흑7까지 상변 모양은 물론이고 중앙에도 커다란 힘을 실어준다. 이렇게만 된다면 흑의 두터움은 전판을 호령하는 웅장한 자세다. 백이 어디서부터 삭감을 해야 될지 매우 어렵게 되는 장면. 물론 흑의 만족이다.
실전진행2 (날카로운 침입)
때늦게 흑1로 지켰지만 이세돌 9단은 흑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백2의 급소 치중에 이어 4의 붙임이 절묘한 박자를 맞추며 타개의 하모니를 이뤘으니 흑으로선 가죽장사를 한 꼴이 됐다. 세력을 쌓았지만 애초 백△가 온 이상 우변 백말을 괴롭힐 명분도 없게 됐다. 상변에서 백이 떵떵거리게 살게 되선 일찌감치 흑의 실리 부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
장면2 (공격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상변에서의 실패를 뒤로 하고 흑이 조금씩 추격하는 장면이다. 백이 좌변을 뿌리 채 깨자고 들어왔을 때가 흑으로서는 기회였는데 흑은 백△를 어떻게 추궁하는 것이 정답이었을까?
참고도3 (성동격서의 일감!)
성동격서의 격언이 있듯이 자고로 공격은 능구렁이 같아야 한다. 백X가 아직 미생이라는 점을 이용해 흑1로 모자 씌우는 감각이 좋은 수다. 흑1은 백X를 추궁하면서 멀찍이 떨어져있는 백△를 노려보는 능구렁이 같은 수. 백의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착점이다.
참고도4 (흑1의 자리도 은근했다!)
박영훈 9단의 스타일상 흑1로 밀고 들어가는 수도 괜찮았다. 백X를 건드리면서 좌변 △를 노려보는 것도 괜찮은 발상이다. 흑1은 끝내기로도 굉장히 큰 자리이기 때문에 후반부의 끝내기 승부를 즐겨하는 박영훈 9단이라면 이런 수도 고려해봄직했다. 흑1로 밀고 들어가는 수는 검토실의 이영구 6단이 강력히 주장했던 수.
실전진행3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격)
실전은 흑이 아무런 전과도 얻지 못했다. 백A로 붙여서 모양을 잡는 것이 싫다고 정직하게 일직선으로 공격했는데 흑1이 결국은 패착의 멍에를 뒤집어썼다. 백2의 입구자로 연결하자고 한 다음에 백4의 선수 활용, 백6까지 한 칸 폴짝 뛰자 흑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 격이 되고 말았다. 결국 박영훈 9단은 좌변 공격에서 별다른 전단을 구하지 못하고 실리 부족을 절감한 채 아쉽게 패배의 쓴잔을 들이키고 만다.
단곤마는 절대 안 잡힌다는 말처럼 정직한 공격은 언제나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사랑도 그렇고 바둑도 그렇고 공격이란 자고로 능구렁이 같아야 상대방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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