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신안쩍개.

서기 2018년 통일된 한국 땅에 봄이 찾아왔다. 아시아에서 맹주로 군림하던 한국은 드디어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 강대국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도 한국과 더불어 세계경제권의 일 이 위를 다투는 경제대국으로 성장해있었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미국은 마침내 삼류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바둑에 있어서도 한국은 명실 공히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있었다. 한국에 이어 중국이 그리고 일본이 이삼위의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파란 눈의 승부사라는 마이클 배가본드가 일본

기성 위를 차지하고 본인방과 명인을 차지한 유시훈이 서로의 타이틀에 서로 도전자로 결정되면서 일본은 일본인의 바둑 타이틀보유자를 보고 싶어 하였지만 한국과 대만과 중국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 타이틀을 보유하는 기현상이 오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한마디로 주객이 전도된 일본 바둑계였다. 그러나 일본바둑계에도 자부심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의 여류기성과 여류명인과 여류본인방을 차지한 다께꼬(竹子)라는 걸출한 인재가 있었다.

한국의 여류바둑계에도 걸출한 인재가 있었다. 배소미라는 23세의 여류기사가 있었다.

한때 중국에서 귀화한 철녀 루나웨이라는 기사가 한국의 여류바둑계를 이끌었으나 배소미가 도전을 하여 네 개의 여류 타이틀 중 세 개를 빼앗은 상태였다. 배소미 스물세 살 서울대 국문과 미스코리아를 지망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미모와 아름다움의 보유자. 통신바둑을 두시는 아버지의 바둑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바둑이 배우고 싶어져서 아버지를 졸라서 기원에 다닌 지 6개월 만에 아마정상급으로 일취월장하고 중학교 삼학년 때 마침내 여류프로로 등장한 것이다. 2018년 봄 삼월 각 일간지의 타이틀을 차지한 신문기사.

일본의 유명한 닛산자동차에서 마침내 세계 여자타이틀인 닛산 여왕배를 주최한다.

4년마다 한 번씩 열리고 우승상금은 한국 돈으로 사억 원. 여류기사는 모두 참가할 수 있으며 타이틀보유자라고 우대하지는 않는다. 모든 여류기사가 총 토너먼트를 걸쳐 최강자끼리 5번 기를 벌인다.

“제가 우승할 수 있을까요?”

“만만치는 않을 거야 총 토너먼트라니 언제 어디서 어떤 강자와 맞대결을 벌일지 알 수 없잖니”

“그래도 꼭 우승할래요.”

소미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입술을 앙다물었다. 반상의 아프로디테라는 별명의 소미는 꼭 우승을 하리라고 다짐을 하면서 일본의 다께꼬를 떠올렸다. 얼마 전 한일 여류기사 대결에서 이대 영으로 완봉패를 당한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찬스에 강하고 남자들보다도 더 수읽기가 깊다는 다께꼬. 얼마 전에 그를 완봉패 시키면서 여유 있게 웃던 다께꼬.

2018년 여름 7월. 마침내 4강의 판도가 가려졌다. 다께꼬와 루나웨이 배소미와 윤영선으로 사강판도가 가려지고 삼번기가 치러졌다. 루나웨이가 이대 영으로 무너지고 배소미와 윤영선은 삼번기 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 끝에 배소미가 반집을 남기고 결승을 진출했다.

2018년 가을 9월. 일본의 고도인 북해도에서 마침내 닛산배 여류타이틀 초대여왕을 뽑기 위한 결승 5 번기가 벌어졌다. 첫판은 불계패. 이상하게 유리하던 바둑을 마음에 동요를 일으키면서 무너지고 두 번째 판. 불리하던 바둑을 침착하게 물고 늘어져 두 집 반승. 다음 판 한집반승. 그러나 다음 판은 다시 불계로 패하면서 결승 마지막 대국을 남겨놓고 있었다. 북해도 온천에서 온천을 마치고 돌아오던 배소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허름한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었다.

“이봐 소미”

“네?”

“내일이 결승 오번 기를 두는 날이지?”

“네 ”

“혹시 첫 번째 판을 둘 때 이상한 느낌 같은 거 없었어?”

“네 할아버지, 중반까지는 제가 유리했는데 갑자기 눈앞이 흐려지면서 수읽기가 안 되었어요. 초반에 분명히 변화도를 읽어두었는데도 나중에 엉뚱하게 두었더라고요, 자꾸 이상하게 생긴 노인의 얼굴이 왔다갔다 하구요”

“그럴 줄 알았지, 그 영감 얼굴이 이마에 점이 있고 꼭 회칠한 도깨비같이 생기지 않았던?”

“예? 할아버지가 그걸 어떻게 아시죠?”

“놈들이 산신사(山神寺)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어. 그 산신 녀석이 네 심기를 흐리게 해 놓은 게야. 여긴 북해도고 북해도의 산신이 당연히 위력을 발휘하지,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오십 프로 먹고 들어가는 거라잖아”

“그런데 할아버지는 누구세요?”

“나 기신안쩍개”

소미는 빙그레 웃었다.

“이름이 재미있네요.”

“내일 바둑 둘 때 또 머리가 혼미해지거든 내 이름을 세 번 마음속으로 불러봐”

“참내, 할아버지 그걸 믿으라는 거 에요?”

“그래야 이겨, 안 그럼 그 산신사 늙은이의 혼령에 휘말려서 진다니깐”

“네 알았어요. 그런데 기신안쩍개가 무슨 뜻이죠?”

“기신은 말 그대로 바둑의 신이고 안쩍개는 눈 안자에 번쩍 하는 쩍자에 열릴 개자로 바둑을 보는 눈이 번쩍하고 열릴 것이다. 뭐 그런 뜻이지.”

“작명센스가 영 꽝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설마, 이 이름이 그래도 조각달이란 인기 더럽게도 없는 엉터리 작가가 삼일 동안 끙끙 앓다가 만들어낸 이름이거든. 작명비도 오만 원 줬다니까? 그런데 정말 작명센스가 꽝이야?”

“헉, 오만 원씩이나, 완전 도둑놈이시네, 그 센스 없는 작가랑 친하게 지내지 말아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오로인가 어디서 엉터리 바둑 소설을 연재하기에 나랑 관계가 소원한 편이다.”

“다음번에 만나면 혼내 주세요. 안쩍개가 뭐람. 정말 센스 꽝이다. 내 생각엔 술김에 대충 지어놓고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거에요.”

“기신 안쩍개, 괜찮은 거 같기도 한데?”

결승의 날이 밝았다. 홋까이도오(北海道)의 온천 호텔의 다다미방. 최종 국에서 다시 돌을 가렸다. 배소미가 맞추지 못해 백번을 들었다. 첫수가 화점에 떨어지고 다시 화점. 네 개의 돌이 화점에 놓여졌다. 다섯 번째 다께꼬의 평범한 날 일자 걸침에 소미가 두 칸 높은 협공을 하면서 판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한수 한수의 착 점은 한없이 느리고 이십 오수 만에 점심봉수. 점심을 챙겨주러 따라온 아버지의 창백한 얼굴은 나보다 아버지가 더 부담스러워하는 걸 느끼게 한다. 다시 대국, 120수가 넘어가면서 서로의 대마가 얽히고 한수 삐끗하면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숨 막히는 착수가 느릿느릿하게 이어진다. 그때였다. 갑자기 머릿속이 희미해지면서 어디선가 요란한 잔잔한 사미센소리가 들렸다. 일본전통 악기인 사미센 소리가 여기서 들릴 리 없다. 소미는 착수를 포기하고 머릿속을 가다듬었다. 회칠한 도깨비 얼굴의 노인이 사미센소리와 함께 웃으면서 나타난다.

소미야 아무데나 두어라 넌 어차피 지게 되어 있어 준우승 상금도 일억 오천이란다. 다시 사미센 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아주 슬픈 가락. 고 삼 때 열차사고로 죽은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인생이 무상하다. 바둑이 무엇인가. 이기고 지는 것은 무엇인가. 회한이 떠오르면서 그만 착수를 포기하고 싶어진다. 던지고 싶다. 던지고 싶다. 그때 문득 노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기신안쩍개. 기신안쩍개 기신안쩍개. 갑자기 두루마기의 노인이 나타난다. 회칠한 도깨비의 노인을 밀어내고 사미센소리가 그친다. 그 대신 어디선가 향긋한 솔향기의 바람이 불어오고 마음을 가로지르는 대금소리가 들린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모든 것은 허상이다. 허상에 흔들리지 마라. 눈을 뜬다. 바둑판이 뚜렷하게 보인다. 수읽기를 한다. 그리고 착 점. 다시 장고에 빠지는 다께꼬. 머릿속이 다시 혼란해진다. 사미센 소리가 들린다. 딱 소리에 눈을 뜨니 다께꼬가 착점을 하는 것이 보였다. 기신안쩍개 기신안쩍개 기신안쩍개. 다시 대금소리가 들리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티브이 모니터를 통해서 딸의 대국 장면을 지켜보는 소미의 아버님은 속이 탔다. 소미가 자꾸만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최후의 승부가 갈리는 것은 결국 반집짜리 패였다. 길고 지루한 오 번 기는 결국 최후의 반집의 패를 승리하는 쪽이 이기게 되어 있었다. 결국 반집은 사억 원짜리 반집이 되는 셈이었다. 팻감은 서로가 많았다. 스무 개 이상의 팻감이 교환되면서 마침내 흑이 반면으로 여섯 집을 남기며 백의 반집승으로 귀착되었다. 백 반집승 반상의 아프로디테 세계를 석권하다. 반집승이 확인되자 다께꼬가 중얼거렸다 와다시노 빠가야로.

복기를 할생각도 안하고 다께꼬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나가자 비로소 플레쉬가 터지면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우선 닛산 여왕배를 차지한 걸 축하드립니다. 누구에게 가장먼저 이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까?”

“우선 저를 응원해주신 국민들 하고요 저를 따라서 여기까지 와준 아버지 고향집에서 대국을 보면서 숨죽여 응원하셨을 어머니, 그리고 기신안쩍개 영감님이랑,”

“기신안쩍개 그게 뭐죠?”

“설명해도 믿지 못하실 거요. 호 호 호”

닛산여왕이 입을 가리면서 웃었다. 누가 그 말을 믿으랴. 나도 믿기지 않는데. 다음날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났다.

이번 타이틀전이 스물 세 살의 배소미양에게는 정신적인 부담이 많았던 모양이다. 기신안쩍개라는 이상한 헛소리를 하면서 웃던 배소미양은 잠시 정신이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수랴, 누구라도 그런 타이틀의 초대여왕으로 등극한다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초대타이틀을 차지한 배소미양에게 무한 애정과 존경심을 보낼 뿐이다.

THE END.

삼일절이라 그에 어울리는,

ps: 여러분의 성원으로 추천작가로 등록이 되었네요.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추천을 꾹꾹 눌러주신 여러분들의 따스한 손길이 제가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써놓은 바둑관련 소설들을 꾸준히 올리겠습니다.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재미로 보아주시면 그저 감읍할 따름입니다.

극중의 배소미양은 제 절친한 벗의 따님이름입니다. ^^!! 허락받고 도용을..히히.

성원에 재삼 감사드립니다. 오로에도 큰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끝으로, 오늘 삼일절이니 만세 삼창을,,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