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화가.

아직 끝이 매운 바람이 불었다. 순정공의 부인인 수로부인은 흔들리는 가마위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반쯤 열려진 가마문 밖의 풍경은 은은했고 하늘엔 종달새가 지저귀고 있었다.

“좀 쉬었다 가자꾸나.”

수로부인이 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말을 탄 채 묵묵히 따라오던 순정공이 가마꾼들에게 명령했다.

“가마를 멈추라.”

가마가 바닥에 내려지고 흔들거림이 멈추었다. 수로부인이 가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봄바람 한줄기가 수로부인의 코끝을 간질였다. 가마가 멈춘 곳은 높은 절벽아래였다. 까마득해 보이는 절벽위로는 특이하게 생긴 꽃 한 송이가 위태롭게 매달려있었다. 가마꾼들은 절벽 아래 모여 앉아서 땀을 닦으면서 자기들 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꽃이 참 아름답네요.”

수로부인의 손가락이 이름 모를 꽃에 멎었다. 순정공의 눈도 수로부인의 손끝을 따랐다.

“꺾어다 주고 싶지만 나는 너무 위험하오,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죽음을 각오하여야 할게요.”

순정공은 미안한 마음에 수로부인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가마꾼들을 손짓해 불렀다. 가마꾼들이 달려왔다.

“출발하시게요?”

아직 한가하게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수로부인을 보면서 가마꾼이 대답했다. 가마꾼은 네 명이었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와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 둘이었다.

“자네들 중 혹시 누가 저 꽃을 꺾어올 수 없겠는가.?”

수로부인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네 사내를 훑었다. 하지만 절벽은 너무 험했고 그럴수록 요염한 자태를 자랑하는 꽃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네 사내는 서로를 뻘쭘 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 험하고 높습니다. 소인은 집에 늙은 노모와 어린 자식들이 있는지라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다른 사내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포기 하시는 게 좋으실 듯합니다. 저 꽃을 꺾어 올 자는 없을 듯싶네요.”

한 사내가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사람의 발자취가 다다를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그때 한 노인이 암소를 끌고 지나가고 있었다. 희끗희끗한 흰 수염이 길게 난 촌로였다.

뭐라고 흥얼흥얼 흥얼거리면서 지나가다가 수로부인의 눈길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았다. 꽃이 있었다. 수로부인이 촌로에게 말했다.

“저 꽃이 아름답지 않나요.?”

촌로가 대답했다.

“정말 아름답군요.”

촌로의 눈길과 수로부인의 눈길이 머문 그 꽃은 더욱 요염한 자태를 뽐내면서 봄바람에 흔들흔들 거리고 있었다.

“제가 꺾어다 드리겠습니다.”

촌로는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가볍게 위험한 절벽을 기어올랐다. 너무도 가벼운 몸놀림으로 오르는 지라 오히려 상쾌해 보일 지경이었다. 꽃을 꺾은 노인이 올라갈 때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절벽을 내려왔다.

紫布岩乎 希 (자주 빛 바위 끝에)

執音乎手母牛放敎遣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吾 不喩慚 伊賜等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花 折叱可獻乎理音如 (꽃을 꺾어 받자오리다.)

노옹이 수로부인에게 정성스럽게 꽃을 바쳤다. 수로부인이 받아들면서 말했다.

“고마워요. ”

그리고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말했다.

“향기가 너무 좋아요.”

눈을 감고 꽃향기에 진저리를 치다가 눈을 뜨니 어느새 노옹은 암소를 끌고 여전히 흥얼흥얼 거리면서 저만치 가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한 음성이 들려왔다.

“부인, 부인은 꽃보다 훨씬 아름답소이다. 그려. 곧 뵐 날이 있을 거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못 듣는 듯 했다. 한참 가던 노옹이 뒤를 돌아다보면서 싱긋이 웃었다. 자글자글한 주름의 행간 속으로 따뜻한 마음 한 자락이 숨어있었다. 그리고 수로 부인은 그 마음 한 자락을 읽어냈다.

다시 가마가 출발했다. 수로부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그 노옹의 얼굴만이 맴돌았다. 자글자글한 주름살, 그리고 마냥 좋아 보이는 웃음, 남편인 순정공보다 스무 살 이상은 더 많은 게 분명한 노인이었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하루 종일 말을 타고 오느라 피곤한 순정공은 잠이 들었고 수로부인은 싱숭생숭한 마음 때문에 잠을 이룰 수 가 없었다. 밖으로 나서자 하녀들이 따라 나섰다.

“밤길이라 위험하옵니다.”

“아니다, 혼자 걷고 싶구나.”

하녀와 머슴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수로부인을 바라보았다. 수로부인이 대답했다.

“바닷가를 거닐고 싶어서 그런다. 그러면 너희들은 저만치 떨어져 있으면 되지 않겠니.”

수로부인은 바닷가를 거닐었다. 밤바람은 차가웠고 둥근달은 그런 수로부인을 말없이 비춰주고 있었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파도 사이를 뚫고 조각배 한척이 다가왔다. 조각배 위에는 한 젊은이가 타고 있었다. 그런데 젊은이가 낯이 익었다. 조각배는 파도 속을 아주 자연스럽고 쉽게 뚫고 수로부인의 바로 앞에 멎었다.

“타시죠, 부인 흠모의 정으로 가슴이 뛰었소.”

“누구신지 너무 무례하군요.”

“낮에 제가 꺾어드린 꽃은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가요?”

수로부인이 호호호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기막힌 변장술이군요.”

“내가 정말 할아버지라면 그 험한 절벽을 어찌 그리 쉽게 올라갈 수 있었겠소. 어서 타시오. 내 집으로 갑시다. 나는 혼자 살고 있으니 즐거운 시간을 보냅시다.”

수로부인이 배에 오르자 조각배는 파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하녀와 머슴들이 밤늦도록 바닷가를 찾았지만 수로부인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났다. 순정공은 너무도 애가타서 마을의 점쟁이를 찾아갔다. 점쟁이가 말했다.

“용왕의 아들이 여색을 밝히는데 아마 부인을 데려간 듯싶습니다. 용왕의 아들은 이름이 귀라고 부릅니다. 거북이라는 뜻이지요.”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겠소.”

“방법을 알려드리리다.”

한편 수로부인과 청년 귀는 허름한 귀의 초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알몸으로 서로를 희롱하면서 방사를 나누었다. 깨물고 꼬집고 안고 뒹굴면서 사흘을 보냈다. 낚시질한 고기를 날것으로 썰어서 간장에 찍어서 먹기도 하였다. 꿀맛이었다. 꿈같이 달콤한 사흘이 흘렀다.

“우리 평생 같이 살까요?”

수로부인이 말하자 청년귀가 대답했다.

“하늘이 허락한다면 말이오.”

그때였다. 어디선가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龜何龜何(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약불현야) 내어 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

청년 귀가 고통스럽게 머리를 움켜쥐었다.

“왜?”

수로부인이 의아한 시선으로 묻자 청년 귀가 대답했다.

“당신 남편이 찾는 모양이요, 당신을 내어놓지 않으면 나를 불에다 태워 버린다 하는 군요. 속히 돌아가야 할 듯하오.”

수로부인과 청년 귀가 서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청년 귀가 말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청년 귀가 조각배에 수로부인을 태웠다. 그리고 험한 파도를 뚫고 달려가 바닷가에 수로부인을 내려놓고 파도 속으로 사라졌다. 수로부인이 사라진 청년 때문에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순정공이 다가왔다.

“걱정했어요. 괜찮소?”

“괜찮아요. 극진한 대접을 하던걸요, 하지만 당신이 너무 보고 싶었고 당신이 노래를 만들어 부르니까 겁을 먹고 나를 보내주던걸요.”

“누구였소?”

수로부인이 대답했다.

“꽃을 꺾어다 바치던 흰 수염의 노옹이었어요. ”

순정공이 수로부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수로부인은 자신을 끌어안은 순정공의 등 뒤로 한 청년이 조각배를 타고 사라지면서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수로부인이 웃었다. 순정공이 말했다.

“당신은 웃을 때 제일 아름답소, 앞으로 그렇게 웃으시오.”

수로부인의 웃음은 너무 아름다웠다. 눈가에 맺힌 이슬 때문에 더욱 고혹적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전에 대한 오마쥬가 있으신분은 너그러운 아량을,, 조각달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