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닭] 요리하는 법[1]
오십 년 전의 서울역 광장은 야바위 협잡 꾼들의 천국이었습니다.
촌스런 매무새에 허름한 가방 들고 서울역 광장에 서면
십 여 명의 야바위 협잡 꾼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곤 했습니다.
총각 이쁜 아가씨 있는데…….
총각 싼 달 방 있는데 가보실려우…….
들고 있는 가방 힐끔거리며 빈틈을 노리는 저 사기꾼들은
종일 서울역의 광장을 어슬렁거리며
하루 한 놈만 걸려 그 눈탱이 칠 수 있다면 넉넉한 일당을 건질 수 있었으니
할 일은 없고 남는 게 시간뿐이었던 저들에게 서울역 광장은 더없는 직장이었습니다.
매일 수 천 수만의 문자 날려
어수룩한 이 하나만 결려 들어도 짭짤한 벌이가 되는 피싱범들이나
오로의 광장에서 종일 실없는 농담 흘리며
눈탱이 칠 노인네를 찾는 저 [개새끼]들이나 다를 바 없는…….
말 그대로 그 시절의 서울역광장은 [야바위협잡꾼]들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제주도에서 서울까지는
배를 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온전히 하루가 걸리는 먼 길이었습니다.
대단히 멀었습니다.
당연히 서울에서 제주까지의 거리도 멀었습니다.
먼저 기차를 타고 다시 배로 갈아타야 한다는 것만 다를 뿐…….
이른 아침 자취하던 집을 나서면 자정이 넘어서야 고향의 집에 도착하는 먼 길이었습니다.
물론 그 때도 열려 있던 하늘 길로 가면 한 시간 남짓의 거리였지만
기차와 배를 이용하는 것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교통비가 들고
그래서 가난한 학생들은 전혀 선택의 대상일 수 없는 교통편이 하늘 길이었고
매 년 최소 두 번은 오가야 했던 그 먼 길을 기차를 타고 배를 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 살이 1년을 하고 맞이한 첫 번 째 겨울 방학,
책이 몇 권 든 조그만 가방을 들고 고향으로 가는 길은 설레는 길이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고 동생들이 있는,
내 존재의 모든 의미였던 그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서울역에서 오전 9시에 출발하는 목포행 태극호 열차를 타고 목포역에 내리면 오후 다섯 시,
여섯시 목포항에서 출발하는 가야호를 타고 일곱 시간쯤의 항행을 하여 제주항에 도착하면 다음날 새벽 한시. 걸어 집에 도착하면 새벽 두시 언저리……. 정말 먼 길이었습니다.
기차와 배를 번갈아 타는 긴 여행을 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기차에서의 시간은 좁은 의자에 갇힌 시간이지만
배에서의 시간은 다리를 쭉 뻗고 편하게 앉을 수도 있고
졸리면 길게 누워 잠들 수도 있는 제법 여유론 공간이 주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장 값이 싼 3등 객실은 정원이 백 명에 가까운,
바닥에 다다미 깔린 널찍한 공간으로 일행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할 수 있고,
때로는 둘러 앉아 화투놀이도 할 수 있는,
가난한 여행객들조차도 얼마든지 지루하지 않게 여행할 수 있는, 즐거울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1972년의 12월, 목포에서 제주로 향하는,
어둠이 짙어가는 바다를 항행하는 가야호의 3등 객실에서
나는 태어 나 처음 어른끼리 주고받는 [호로새끼]라는 거친 욕설을 들었고
너무 가까이에서 그 [호로새끼]들을 처음 보았고
[호로새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