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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 (kbs) 뉴스광장 김도연 앵커가 드러내주는 우리 안의 전체주의 (totalitarianism)
2021-02-19 오전 9:41 조회 1409추천 7   프린트스크랩



한국방송 (kbs) 뉴스광장 김도연 앵커가 드러내주는 우리 안의 전체주의 (totalitarianism) 


우리는 전체주의 (totalitarianism) 정치 체제를 안다. 1800년대 하반기 쯤 일본의 유신 체제, 1920년대 쯤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체제, 1930년대 쯤 소련의 스탈린 체제 등을 전체주의의 한 예로 들 수 있다.

 

전체주의는 부분에 대한 전체의 선행성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정치 체제라고 하겠다. 개인은 전체 속에서 존재 가치를 가지므로 전체의 존립과 이익과 발전을 위해서 전체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으며 개인의 희생을 기꺼이 수용하는 체제를 말하겠다. 하여, 이는 개인의 자유를 더 우선시하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와는 거의 맞지 않기에 현대 민주주의 속의 우리는 전체주의 체제를 배격한다.

 

화재, 지진, 표류, 전쟁, 가뭄이나 홍수로 발생한 흉년의 굶주림, 그리고 현재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등에 의해서 개인이나 집단이 극단적 상황에 처하면 개인의 본성도 집단의 본성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내 보따리 내놔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보따리를 가지고 물에 빠졌을 수도 있긴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생명이 어떻게 다시 살게 되었는지는 생각치 않고, 하여 구조자에게 먼저 감사를 드리지 않고, 배은망덕하게도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먼저 챙기다니.

 

, 똥 싸러 갈 때 마음과 똥 싸고 나올 때 마음은 다르다는 말도 있다. 극단적 상황에 처하니 간이라도 빼줄 듯 하다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니 "내가 언제?" 하고 똥 배짱을 내미는 것이다. 이것들은 극단적 상황에 처한 개인들의 인품 혹은 도덕성 없는 타살적 이기주의 본성이 여과없이 드러난 경우이다.

 

지금 코로나19가 전 지구적으로 창궐하고 있다. 그러니, 인류라는 집단은 전 지구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있는 것이다. 물론, 한국도, 유럽이나 미국보다는 상황이 조금 낫다고는 하겠으나, 역시 극단적인 상황에 몰려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한국 집단 전체의 본성이 여과 없이 드러난 예가 있다. 매일 많은 매체들이 코로나19 상황을 심각히 보도하고 있다. 그 많은 매체들도 이것과 무슨 병아리 눈물만큼의 차이가 있을 것은 아닌데, 한국방송 (kbs) 이 아침 6시에 진행하는 뉴스광장에서, 한국 집단 전체의 타살적 (他殺的) 자기 생존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을 볼 수 있다.

 

김도연 앵커라는데, 그녀가 김범주라는 기자, 국제 백신 (vaccine) 연구소 사무차장 송만기,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정재훈의 설명을 총합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이 백신 접종을 한 달여 앞두고 있습니다. 워낙 단기간에 개발되다 보니까 믿을 수 있나 하는 생각 충분히 드실 수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일부 부작용을 고려하더라고 맞는 게 여러 모로 훨씬 낫다고 강조합니다. 김범주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한국방송 (kbs) 뉴스광장 김도연 앵커가 드러내주는 우리 안의 전체주의 (totalitarianism)                 



노르웨이에서 백신 접종 직후 발생한 30여 명의 사망자는 대부분이 고령층이니, 실제 백신의 부작용이 일부 드러나더라도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작은 문제라는 추가 설명이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많은 언론들은 정부 고위 관료들의 말을 총합하여 김도연 앵커가 말한 것과 아무 차이 없는 내용을 수시로 보도했다.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첨단을 걷는다는 미국도 유럽도 극단적 상황에 몰리니 전체주의 발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백신 배분에서도 타살적 자기 생존 본성을 조금의 여과도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 역사적으로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래 살아, 살만큼 산 사람들이니 죽어도 그만이다. 전체를 위해서 늙은이 몇몇을 희생케하는 것 쯤이야 어쩌랴, 무슨 대수랴, 하는 전체주의 본성을 여과없이 드러내었다. 현대 민주주의를 숭상한다던 우리가 그 동안 멸시하며 배격하던 전체주의 사고 (思考, thinking) 를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니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부끄러운 것인가? 하여, 자신도 모르게 전체주의를 표출한 그들을, 우리들을, 위하여, 전체주의를 위한 변명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형이상학 (Metaphysics) 에서, 전체는 부분들의 합보다 크다 (The whole is more than the sum of its parts). 이렇게 전체를 앞세워 좋을 때도 아니 앞세워야만 하는 때도 살다보니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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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선달 |  2021-02-19 오전 11:41: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반갑습니다^^  
⊙신인 |  2021-02-19 오후 8:52: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니그니 |  2021-02-23 오전 11:25: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감사합니다  
소판돈이다 |  2021-03-02 오전 10:51:5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간만에 작가란에 글 올리셨군요.
저기요..과거 호주에 가셔서 일하면서 현지체험도 하는 것을 영어로 무어라 하셨는데 기억
이 안나는군요....다시 한번 그 것의 명칭 부탁드립니다.
 
지니그니 소판돈이다 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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