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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베 단편소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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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가는 길 2
2021-10-07 오전 10:20 조회 277추천 8   프린트스크랩

청평역이 가까워지자 오른쪽 앞에 웅장한 청평댐이 보였다.
그 밑으로는 한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강의 맞은편에는 제법 운치 있는 건물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그 사이로는 좁게나마 길이 나있는지 차들이 가끔 오가고 있었다.
 도로 위에는 골짜기와 산이 겹겹이 늘어서 있고, 맨 위에서는 뾰루봉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서 있었다.


청평에는 안전 유원지가 있다.
조종천이 북한강에 합류하기 전에 마지막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추는 곳이다.
야트막한 언덕이 북한강을 가리고 있어서 상당히 아늑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깊은 소도 있지만 대부분이 얕은 곳이라 어린이들이 놀기에도 안전한 곳이다.
나는 젊은 시절 해마다 여름철 휴가 때에는 가족과 함께 이곳에서 피서를 즐겼다.
 칙칙칙칙하면서 무섭게 불길이 솟아오르는 버너를 켜고는, 그릇들이 겹겹이 들어있는 코펠에다 찌개도 끓이고 밥도 지었다.
하루 종일 놀다가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때에야 짐을 챙겨서 승용차에 실었다.
유원지 입구의 논에서 풍기는 벼들의 향기와 길 위에서 맴돌던 고추잠자리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청평하면 호명산을 빼 놓을 수 없다.
예전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고 울어대서 호명산이라고 이름을 지었다는데 지금은 남한 전체에서 야생 호랑이가 멸종되었다니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15년 쯤 전에 고등학교 동기들 여러 명이 호명산에 올랐었다.
청평역에서 내린 다음 조종천의 둑길을 지나고, 내를 건넌 후에 급경사 지역을 헐떡거리면서 올라갔다.
 숨이 목까지 차올랐을 무렵에 능선에 도착하였고 그 너머로 청평호가 보였다.
그 멋진 경치에 그 전의 고생은 모두가 보상되었다.
청평호를 바라보면서 계속 능선 길을 올라갔다.
두 세 시간은 걸었을 것이다.
그 때에는 친구들이 모두 팔팔하여 두 세 시간쯤은 아무것도 아니고 다섯 시간, 일곱 시간씩 걸리는 등산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대부분 체력이 사그라져서 일부 특출한 친구들 외에는 장거리등산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능선 길에서 저 멀리에 언뜻 희게 보이던 부분이 궁금했었다.
산사태가 난 지역인가?
가까이 다가서서야 그것이 인공호수인 호명호수인 것을 알았다.
밤에 전기가 남아돌 때에 그 전기를 이용하여 강물을 끌어올리고, 그 물을 이용하여 수력발전기를 돌리는 양수 발전기의 장치였다.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품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차선책으로 어마어마한 공사를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현대생활에서 전기란 것이 이렇게 참으로 중요한 것이구나!
호명호수를 구경한 우리들은 산 중턱까지 걸어 내려와 거기에 늘어선 식당가에서 가평의 잣 막걸리를 즐긴 다음 버스를 타고 상천역으로 내려왔다.


상천역을 떠난 기차는 긴 터널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 바로 가평역 근방에 다다르게 된다.


가평에선 맨 먼저 남이섬이 떠오른다.
총각 시절에 나는 다른 직장의 처녀들과의 단체 미팅에 참여한 적이 있다.
바로 남이섬에서였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면서 젊음을 즐기었다.
내 짝으로 정해진 아가씨는 글래머에다가 시원시원한 성격이고, 얼굴도 그런대로 봐 줄만한 편이었다.
 단 둘이서만 노 젓는 보트에 탔을 때에는 은근히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그러나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사회성이 제로인 내가 무슨 진전을 이루었겠는가?


사회성 이야기가 나오니 신혼여행 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신혼여행을 부산으로 갔다.
원래는 설악산으로 가려다가 눈이 너무 오는 바람에 목적지를 바꾼 것이었다.
 부산역 부근의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해운대로 가기 위하여 아침 일찍 일어났다.
 당연히 택시를 잡아야 했으리라.
그런데 어릴 때부터 궁상스럽게 지낸 내 머릿속에는 택시란 단어가 아예 자리 잡고 있지 않았다.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에 오르니 빈자리가 딱 한 군데 있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내는 세워둔 채로 한 시간 내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한 두 번은 아내에게 자리를 양보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수줍은 아내가 고개를 젓자마자 나는 “아, 잘 되었구나.” 하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는 매사가 그런 식이었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오직 ‘단순 무식하게 사는 것’
내 마음과 몸은 비록 편했을지 모르지만 얼마나 무수한 상처를 남들에게 남겼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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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  2021-10-07 오후 5:20:3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읽는 내내 얼굴에 잔잔하게 미소가 맴돌았습니다.
그 시절의 추억들이, 제 삶이 생각났어요!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짜베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 잘 살 수 있을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둑도 새로 두어봤자. 더 잘 두는 것도 아니듯이.
삼나무길 |  2021-10-07 오후 8:48:3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방가워용^^  
짜베 또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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