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에 상대성은 확연하다.
게시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내 생각과 나와 같이하는 사람으로
구분되기도 하고 가치관이라는 대의명분을 고집하지만
결국은 이해타산 적인 이기심과 아집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수성 하는 꼴이다.
일시적인 감정과 감성의 충돌이 아닌 것이다.
객관적 견해는 적이냐 아군이냐를 구분하고 진영의 손 이익에 따라 판단하고
배척하거나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생각에만 빠져 산다.
소수가 그러하고 집요하게 글을 올리며 선동하지만 한계를 모른다.
공감대가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것인데
참여한 들 반대 생각들의 집요한 공격에 누가 참여하고프겠는가.
그렇게 객관성이 무너지고 외면당하는 것이다.
지역감정이라지만 경상도에 거주하며 전라 친구도 제법 있고 만나고도 있다
신앙적인 면에선 기독교 카톨릭 친구들도 만나고 가끔 신세도 진다.
어느 날 새벽 6시.
전혀 연락 올 시간이 아닌데 벨이 울리며 등록된 친구 이름이 떴다.
반갑기도 했지만 연락 올 시간이 아닌데.
조금은 썰렁한 마음에 안부를 묻고 이유부터 물었다.
언제였던가 낚시를 좋아하고 대물도 많이 잡아 지인들에게 선물도 많이 했다는
사람이었지만 그랬냐면서 언제 우리 엄니에게 덕분에 효도 함 하자고 했던 분이다.
그게 일 년 전인가.?
대개 낚시꾼들과 심마니들의 뻥은 좀 있다고 그래도 마음만 받겠다고 했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 시간에 전화했다고는 짐작도 못했는데 올라오란다.
2시간 기다려 마수도 못했지만 뒷골이 찡하게 전율이 왔다.
알았습니다.
그 말에 여운은 나 외엔 모른다.
엄니를 위해서 신선 꿈을 꾸고 무덤을 파헤쳐 시체 다리를 고아 드렸다는 전설도 떠오르고
돼지 한 마리 지고 살인했다고 찾아온 친구 생각도 나고.
넘어지셔서 고관절 대수술한 엄니 드리라는 그분의 말에 앞에서 애써 웃으며
덕분에 마음고생 좀 들고 효도하게 생겼습니다 하고 돌아서 오며 엄청 울었다.
고기들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새벽 댓바람에 충주댐까지 냅다 달려갔다가.
그리고 허기진 배를 그분과 일행 한 분과 꿀맛 같은 라면으로 떼우고
바로 달려오며 고기들에게 말했다.
미안하다. 그리고 엄니가 너희들로 일어나시면 정말 고맙겠다. 고 했다가
갑자기 복받치는 설움으로.
그분이 고맙기도 하고 엄니에게 내가 못한 것만 떠오르고.
수술은 잘됐지만 얼마 못사실 겁니다. 하던 의사 말도 떠오르고.
월척 붕어 세 마리에 내 눈에 이무기 같은 8~9십 되는 잉어 두 마리.
폭 고아서 4통을 보관하고 있다.
엄니가 이번 주 퇴원을 원하시니 나는 엄니에게 체면을 세울 수 있다.
엄니도 너무 고마워하시며 그 약 먹고 꼭 일어나서 그 친구 초대해
따뜻한 밥 한 그릇 된장국에 내 잘하는 비지에 씨래기 고등어 넣고 찌져 주께 하신다.
엄니가 행복해하시니 더 할 게 없다.
사이버에서 만났지만 그 분은 우리 엄니와 마지막을 행복하게 해주셨다.
모두 이처럼 특별하게 만날 수는 없지만 생각 차이를 굳이 밝히며
매일 얼굴 붉힐 이유도 없다고 본다.
그날 동안의 생면부지였던 우리가 처음 만났고 꼭 필요한 것을 받은 나로서는
그분이 신인 것이다.
대명을 밝히면 바로 아실 분이고 선행을 올리고 싶지만 부담이 되실까봐
그냥 R 이라고만 밝힌다.
우리는 어쩌면 살아온 경험의 확신보다 얼마나 살지 모를 짧게 느껴지는
시차를 생각하며 할 수 있다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사는 동안 신세 갚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