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옹이가 여느때처럼 문을 두드린다.
10년 가까이 되었으니 이놈도 천수를 누렸다 보는데.
어려운 형편이지만 조상에게 생선하나 올렸다가 대가리를 남겨 놓았었다.
육수를 만들면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 수 있지만
그놈이 눈에 걸려 설 음식 먹으라고 주니 환장을 하며 먹더니
야웅.거리며 잘 먹었다는 제스쳐를 하고는 횡하니 가버린다.
밉생이.
동서고금에 야옹이는 불운을 알리고 복수의 화신으로 알려졌다.
왠지 스물스물해서 싫다.
뱀 다음으로 싫어하는데 칭칭 감기는 인간도 싫고 영악한 인간도 싫은탓이다.
그런데 이놈은 미워할 수 없다.
특별한 애교도 없는데 니는 내꺼야 하는 오만함이 오히려 귀여운 것이다.
(고양이는 집사를 지가 선택한다고....)
빗쟁이처럼 와서 대문 열라고 하고는 먹이가 마음에 안들면 냄새만 맞고
쳐다보면서 야웅 거리고 밥 먹기 전에 집안을 한번 둘러본다.
(다른거 좀 내놔바 하는 제스쳐)
새벽3시면 기상하고 몸과 마음 정갈하게 하고는 부처님께 동쪽을 향해3배 한다.
엄니가 일어나시는 9시 전후로 들어와서 아침공양 올리면 어김 없이 오는 놈.
점심때1시 저녁때6시도.
나는 그렇게 세분을 공양하고 있다.
의지가 약하고 감성적이라 술을 마시면 통제력을 잃는다.
나를 사랑하고 변명에 젖는 것이다.
이제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정당화하고 싸가지 없는 세상을 탓하다 쓰러진다.
나는 성인이 아니고 깨달은 것도 없다
다만 신세를 갚으려고 노력하고 무리도 하고 매일 그러다 죽는 것을 염두에 둔다.
사람 도리하려면 어리석은 짓을 많이 하게 되는데 공치사는 묘연하고
오해를 받거나 안타까움의 질타와 질투도 동반한다.
무전취식의 길냥이를 보면서 내가 내민 생선대가리에 흡족해 하는 게 보람이랄까.?
별 반찬 없어도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고마워하는 엄니와 반추 된다.
세상은 살만하다면 살만하고 살벌하다면 또 그렇다.
다만 내가 이기려 하지 않는다면 그럭저럭 사는 것이고 지고 살면 평온하다.
그러나 지기 싫어 발버둥도 치고 가끔 이겼다 싶을 땐 나름 스트레스도 풀리지만
내가 졌을 때 분함보다 이겼을 때의 공허함은 더 오래간다.
바둑에서 상수나 맞수에게 피터지게 맞고 지는 기분은 오히려 속 시원하지만
하수에게 여유롭게 이기는 기분과 짓이겨 버리고 싶은 하수에게 져야만 할 때
무능함도 느끼고 자신에게 측은지심(?)도 든다
삶이 사활풀이의 연속이지만 운명은 정해져 있고 우리는 과정에 일희일비 하니
어차피 지나간 어제나 다가올 내일은 지금 내 뜻과 무관 할 것이다.
길냥이는 기득권이 없어도 오만하고 엄니는 당연함에도 감사한다.
사람을 피하는 길냥이에게 매일3번씩 문을 두드리게 했다는 믿음과
말년에 누구의 핍박도 받지 않고 편안한(?)엄니를 보면서
모자라는 건 별거 아니라는 변명을 하게 된다
무엇을 위해 사는 건 보람이다
능력 있거나 아니면 보여주고 싶거나. 그 모든 것에서 지속 가능 한 것은 마음이다.
옛 속담에 떡 매질 하는 놈은 지 식구도 배불리 먹이지 못하지만
주디로 떡 하는 놈은 조선 만 백성을 먹여 살린다 했다.
돈을 좀 더 벌었으면 좋겠다.
돈이 없어 못해드리는 마음이 죄스럽다가도 어제 마신 술값이 떠오른다.
도덕경을 따라 갈 수 없겠지만
나가 미치지 않고 살아야 되고 엄니보담 오래 살아야겠기에
술도 한잔하고 하루쯤 망가지기도 하면서 후회하는 하루가 일주일을 버텨주고
미안한 마음이 한 달을 버텨준다.
그리고 내 작은 정성을 고마워 하는 큰 마음이 일 년을 버티게 해준다.
건방진 길냥이. 평생 미안한 눈물을 흘리게 하는 엄니.
엄니는 보은의 신앙이고 길냥이는 나의 작은 능력을 일깨워 준다
그들의 믿음에 나는 자칫 가난한 천하대장군으로 사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