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말이 있지만 나 또한 그 속의 그림 하나일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미래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맴도는 걸 느끼고
내가 하는 것과 주변의 하찮게 보았던 일들이 누군가의 과거였으며
미래고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삶이 고달프기도 하지만 문득 악몽에서 깬 아침이 감사하기도 하고.
지친 몸을 눕힐 땐 막연한 내일이 중압감을 주지만 핑계 삼아 마시는 술 한 잔
한판의 바둑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흔들릴 때마다 한 잔씩 하더라도 누군가에겐 늘 흔들리는 잎만 보이리라.
“사장님.”
개나 소나 사장님이라고 뭔가 아쉬울 때 흔한 지칭이다.
“네“
“이 할머니 좀 모셔주세요.”
“그럽시다” 어디 가시는데요. “
“조 위에 은행에 가신데요. “
할머니 치매 10년에 100수 아버지 중풍 30여 년을 지켜보며 나름의 가치관도 생겼고
환자와 나이든 노약자들에겐 남다른 연민도 가지고 있다
직업상 노약자와 만취자는 늘 문제를 일으키고 영업에 지장을 초래하여 모두 꺼리지만
그동안의 간병에서 느낀 연민과 술과 사람을 좋아하는 자신을 비추어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흔들리며 한잔한다.
“할머니 어디로 가면 되죠.”
“응 저기 저 언덕 넘어서 요리로 가면 있어.”
뒤에서 요리로 조리로 하면 알아들을 수 없어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데
운전 중엔 위험하다.
그런데 할머니 얼굴이 가까워지니 악취가 진동한다.
음.
“저기 빨간불 보이지”
“네”
“거기서 요리로 가.“
“저기 버스 나오는데서 저리로 가”
요리가 조리가 또 요리가.
신호등 불빛과 버스와 빨간 차 검은 차 돌아가는 차........ 처음엔 정신이 맑은가 했다가
10여분이 지나니 이건 아니다.
상식은 경우를 지키는 것이고 그것이 예의라 생각한다.
그러나 환자는 원하는 대로 상식선에서 예의를 갖추고 요구를 들어주면 병을 고칠 수 없고
병을 빙자한 피해의식으로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 희생으로 병을 얻었다면 그 병마저 숨기거나 삼킨다.
남은 작은 것마저 털어 주고 싶은데 어떻게 짐이 될 일을 하겠는가.
세상엔 감당치 못해 어쩔 수 없는 사람들보다 감당치 못할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더 많다.
환자는 환자로 대해야 고칠 수 있다
더이상 들어 줄 수 없어 고함을 지르고 말을 막았더니 온갖 욕지거리가 날아왔다.
그래서 또 달랬다.
“할머니”
“응“
“대구에는 중앙은행이 없어요. “
“머라카노” 중앙은행이 왜 없어 어제도 갔다 왔는데. “
그제야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밤새 도둑이 들어 통장과 도장까지 가져갔다는데 은행에 가서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할미도 늘 도둑맞았다며 허구한 날 장롱에 못 질을 했더랬다.
그런데 그런 은행은 대구엔 없고 요리조리 계속 돌아서 될 일이 아니다.
빨간 벽돌로 지은 은행이라 고함지르는데 구순 할머니 거래은행이 한국은행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당도 아니고.
할 수 없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로 하고 112에 신고를 했다
이미 차비는 포기했는데 할머니 손엔 만 원권으로 보이는 시퍼런 지폐가 꼭 쥐어있었다.
긴급 상황이 아니지만. 대처 불능상태라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긴박한 사람이 나로 인해 피해를 입었을지도 모르지만 겨를이 없었고
잠시 눈이갔지만 차비는 포기했다고 했더니 경찰관이 멋쩍게 웃었다
와중에 여 경찰이 멋있었던 것이 마지막 위로였다
선글라스에 옆구리에 찬 권총(?)과 당당한 포스로 현장을 보고하고는
거수를 경례하면서.
“나머지는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나도 거수경례로 답했다.
“네 수고하세요.”
아들 이름 묻고 주소 묻고 주민등록 묻고 거기에 동문서답하는 할머니를 뒤로하고
돌아서오는 길에 룸 밀러에 비친 그들의 잔영에서 나의 현실이 반추되었다.
이제 남은 팔순 어머니 그리고 나.
끼니가 걱정되지는 않지만 끼니를 때우는 것이 모두가 아닌 삶
나는 바둑으로 치매를 늦춘다고 생각하지만 울 엄니와 내 걱정은 어떻게 하나.
공무원 시험공부 뒤 바라지로 나간 마누라와 딸내미는 시험 되고도 안 돌아온다.
이제 이 생활이 편해진 것이다.
엄니와 불편한 관계 지켜보기 힘 들자 일어난 핑계.
가끔 전화 오면 의무감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힘든 일 생기면 연락하라는 말로 끊는다.
누가 어떻게 더 오래 살지는 모른다. 우리는 구구단 나이로 짐작할 뿐이겠지.
오늘도 부지런하게 텃밭 일하며 온 동네 불려 다니는 엄니. 고맙소.
신도 운명도 양심이 있다면 당신껜 치매 중풍의 모진 고통 주지 못할 거요.
당신의 웃음을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게 해 준다면 내 기꺼이 행복한 사석이 되리다.
그리고 쪼매. 진짜 쪼매 섭섭한 이들에게 한두 집 정도 남는 계가를 만들어 주고 싶다.
살다가 한두 번 실수를 해도 반집이라도 남기게.
삶은 내가 누군가에게 늘 필요 할 수만 없다.
그래서 내 삶은 필요한 시점과 불편한 시점 그 당사자를 구분하여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나는 요석이자 사석이라 생각한다.
근데 나이 탓인지 눈물이 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