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속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져서 글 쓰는 것을 중단했다.
고교동문 카페를 운영하는 친구한테서 독려의 문자가 왔다.
어느 정도 묵혔으면 어서 글을 써내라고.
하! 나는 자신이 없어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판인데 묵힌 것을 풀어내라고? 묵힌 것이 어디 있어?
아내가 5월 달에 지공거사가 되었다.
아내가 공짜 지하철 카드를 받자마자 춘천에 가려고 했다.
김유정 역을 가보고 [김유정 역 가는 길]을 써보려고 했다.
곳곳마다 사연이 맺혀서 제법 쏠쏠한 글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정으로 11월 중순이 된 지금에도 아직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직 가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상상하던 것을 그대로 글로 써볼까?
그런대로 글은 써질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은 아니다. 란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에 김장을 해갖고 온다는 전갈이 왔다.
아내의 친구한테서 온 전갈인데 그 분은 일산에 살고 있다.
전에는 다 같이 중랑구 묵동에서 살고 있었다.
그 분은 묵동에서 살다가 경기도 일동으로 이사를 갔었다.
일동에서 부추농사를 지었다.
부군은 버스 운전을 하시다가 은퇴한 분이었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승용차로 힘들게 운전하면 그 분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뒤는 명성산 자락이고 앞에는 비닐하우스와 논이 펼쳐져있고, 저 멀리에 적당한 높이의 산이 솟아 있었다.
멋진 시골 풍경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몇 년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었다.
뒷산 계곡에 들어가서 물고기 어항을 놓고 삼겹살을 구웠다.
삼겹살에 소주 몇 잔을 걸치고 얼큰해질 무렵에는 어항에 물고기가 가득 찼다.
물고기 튀김을 맛있게 먹고는 흥에 겨워 노래를 불렀다.
생음악 이었다.
이어서 집에 들어가서는 노래방 기기를 틀어놓고 제대로 한판을 어울렸었다.
그 분들이 사정이 생겨서 일동을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가 남자답지 못하게 여럿이 보는데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사나이의 눈물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멋있던 추억 때문에.
일동에 살 때도 김장은 그 분들에게 부탁했었지만 그 분들이 일산으로 이사 간 뒤에도 김장을 그 분들에게 부탁했다.
아내의 친구인 그 분은 묵동에 살 때도 반찬가게를 운영할 정도로 요리에 솜씨가 있었으므로.
일요일에 김장이 왔다.
비닐에 쌓여온 김장을 통에 채우고는 바깥에 두었다.
어느 정도 익은 다음에 김치냉장고에 넣을 거라고 하였다.
점심을 먹고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아내의 친구 부군이 일산에 이사 갔더니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저는 심심하지 않습니다. 바둑도 두고, 요즈음엔 홍루몽을 읽고 있습니다.’ 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TV를 보는데 청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강희제의 충복인 조인이 당나라의 모든 시를 모은 전당시를 출판했다.
그리고 그 조인이 강희제가 승하한 다음에 관가에 잡혀가서 고생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장면을 조인의 손자인 조설근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는 이야기였다.
조설근은 나에게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는 집안이 몰락한 다음에 북경에 가서 어렵게 살았다고 하였다.
“조설근, 누구인가?”
그런데 그 조설근이 석두기란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이 나중에 홍루몽이 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서야 “아, 그 유명한 홍루몽?” 이라고 감탄했다.
돼지고기를 사다가 저녁때 보쌈을 해먹기로 하였다.
일 년 만에 맛보는 별미이다.
매년 김장때마다 김치 속에다가 보쌈을 해 먹는다.
자신 있게 딸애에게 소주를 한 병 사오라고 시켰다.
코로나가 2단계로 되면서 모든 모임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나가서 먹지 못하니까 집에서나마 마음 놓고 먹어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