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새하얀 눈이 내린다
온 세상 허물과 모난 곳 높낮이를 어우르며
하얗게 시린 발등을 고르게 덮어 준다.
할머니의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이 그러했다.
우리 남매의 웅크린 마음 한 자락 놓치지 않고
고르게 고르게 덮어 주었다
모서리라 뾰족이 쌓이고 웅덩이라 조금은 움푹했지만
자고 나면 두리뭉실해진다.
행여나 잠 설칠까 뒤꿈치 들고 밤새 내려서
하얀 미소로 어젯밤 꿈을 펼쳐 보인다
성스러운 자태로 세상을 신비롭게 감싸주고
몸을 굴려 떼를 써도 검불 하나 묻지 않는다
해가 뜨면 체할까 풀잎 띄운 마음으로 서서히 몸을 녹여
모두의 목을 적시니 흠집 없는 하얀 눈 같은 마음을
내 머리 반백이 되고서야 절실히 다가온다.
부모 품을 벗어나 사회로 나오면서
하얗고 포근하며 자상한 눈을 바라던 생각은
비바람에 젖어 흐느끼고 실수를 용납받지 못하고
누명에 억울함을 호소도 했다.
모두가 내 탓인 걸 억지 인정하는데도 반백 년이 걸렸고
그 죄 사함은 또 반백 년이 갈려나
하얀 눈길마저 나서지 못함은 그나마 철이 든 것일까.
때 묻은 마음은 그저 창밖만 바라본다
인연으로 스쳐 간 모든 것들이 새록하다.
소신이라고 하얀 백지 위에 수없이 갈겨놓은 낙서들
지우개로 모두 지우고 다시 쓰고픈 부끄러운 날들
저 눈처럼 하얗게 덮어 버리고 싶은 날들
그런들 뭐하리 깨끗해지지 않는 영혼이 미끄러지고 미끄러지는데.
엉덩이가 시퍼렇게 멍들어도 나의 손에는 아직 펜이 있다.
마음의 창밖으로 눈은 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