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임 중에 이화 모임이 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 만은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이뤄 하노라.’
고등학교 때 배운 고려 말 문신 이조년의 시조이다.
우리 모임은 이 시조를 흠모하는 모임이 아니다.
매월 두 번째 화요일에 모여서 바둑을 두는 모임이다.
사실 바둑도 두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둑이 끝난 후에 먹는 음식과 술이 주이다.
인터넷 바둑은 지고나면 열을 받는데 여기에서는 저도 그냥 즐겁다.
맛있는 음식과 술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우리 모임의 인원은 다섯 명이다.
코로나 방지 인원제한에 걸리는 숫자이다.
한 동안 모이지 않다가 지난주부터인가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한 친구가 양평 물소리 길을 걸어야한다며 빠졌다.
네 명이서 모였다.
몇 달 만에 모이니 무척 반가웠다.
한 친구에게 내 팔을 꼬집어보라고 하였다.
혹시 꿈이 아닌지.
바둑이 끝나고 나서 몇 차를 옮기며 술을 마셨다.
그래봤자 아홉시 까지였지만.
나는 대취해서 집에 왔다. 딸내미가 노발대발한건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집 문도 열지 못하느냐고. 이젠 제사고 뭐고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아내가 아픈 이후로 몇 년간 제사를 지내지 않다가 다시 딸애가 간소하게 차려서 제사를 지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저 잘 못했다고 비는 수밖에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어제 총무에게서 카톡이 왔다.
내일 모임에 모두 참석하시라고.
세 명이서 벌써 동의를 하고 있었다.
나마저 동의를 한다면 아직 대답을 못한 친구가 빠져야 된다.
나는 집안일이 있어서 참석을 못한다고 카톡에 올렸다.
예전에는 거짓말을 못 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나도 영악해진 것이다.
딸애에게 내가 참석 못한다는 카톡의 내용을 보여주었다.
딸애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딸애는 일정을 바꿔서 수요일에 보러갈 영화를 화요일로 옮겼다.
무슨 만화영화라고 하는데 엄마와 둘이서 보러간다고 하였다.
나는 빠지기로 했다.
만화영화를 시시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사실 만화영화라고 해서 시시한 것은 아니다. 멕시코의 무슨 만화영화는 하도 감동적이어서 영화를 보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저녁때 오는 생수 배달을 받아야 해서였다.
아내와 딸이 밖에 나가고 나 혼자만 남았다.
걸레를 빨아서 집안을 청소했다.
주로 아침에 청소를 했는데 자고 있는 아내가 달그락 거린다고 투덜거렸었다.
딸애마저 내가 깨끗하게 닦는 것이 아니고 그냥 먼지를 한쪽으로 밀어놓은 것에 불과하다고 지청구를 했었다.
모임에도 가지 못하고 혼자 있으려니 공연히 마음이 우울해졌다.
물을 틀어놓고 걸레를 빨면서 청승맞은 내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천동산 박달재를...
예전에 대학교 때 시골에 살 때에는 돌담 밖으로 인적이 없는 곳을 향하여 마음껏 노래를 불렀다.
아는 노래를 모조리 부르고 나면 목도 트이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후련해졌었다.
도시에 살면서는 노래도 마음껏 부르지 못한다.
그래도 물을 틀어놓으니 목소리가 어느 정도는 묻히는 것 같아서 제법 구성지게 노래들을 뿜어내었다.
고등학교 동창 녀석이 자꾸 카페에 글을 올리라고 성화이다.
나는 요즈음 글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서 글을 쓰지 않고 있다.
글을 몇 줄 써놓고 다시 보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아마도 술을 마시고는 술김에 글을 써 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술도 안 마신 상태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음이 우울해지니 술을 마신 것과 같은 상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개발 새발이지만 글을 써 보기로 했다.
글을 다 완성하기도 전에 아내와 딸이 들이닥쳤다.
아내가 배가 고프다고 성화이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지만 욕을 해대면서 컴퓨터를 부술 기세이다.
여기서 끝마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