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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바사(프로 바둑기사 사랑회 http://cafe.daum.net/badoll) 게시판에 계시원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계시원.. 나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둑은 승부의 세계.. 두 선수 외에 누구도 관여할 수 없다.
그런 승부의 세계를 누구보다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한사람.. 매력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나니 일은 빨리 진행되었다.
모집글을 올린 A7(http://cafe.daum.net/clubA7bodook)사무실로 찾아가 면접을 보고 바둑TV PD님께 소개를 받아, 한국기원에 가게 되었다.
한국기원이라.. 몇 년만이지? 기원..
90년대 초반, 피아노가방, 태권도 학원 도복과 함께 바둑교실 포석책이 아이들의 손에 들려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가 살던 잠실에는 바둑 붐이 특히 심했었는데, 잠실5단지 중앙상가에 있는 수양바둑교실에는 늘 또래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들이 가득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주말이면 종종 내기바둑을 두곤 하셨는데..
어께너머로 배운 바둑을 막내동생이 곧잘 따라하곤했다.
‘얘가 제2의 이창호 아닐까?’라는 생각에 엄마는 얼른 바둑교실에 동생을 보냈다.
당시에 제2의 이창호사범님을 꿈꾸는 아이들은 정말 많았다.
동생이 어리다는 핑계(?)로 엄마도 함께 바둑교실을 다니셨는데, 나와 내 동생 둘 모두가 다녔던 국민학교가 바둑교실 바로 옆이었기에 자연스레 우리는 바둑교실에 모여 바둑을 두다가 아버지가 퇴근하실때쯤 함께 집으로 왔다.
손에 손을 잡고, 오늘은 어떤수 때문에 졌다.. 네 바둑은 순전 꼼수(!)다.. 해가며 집까지 걸어오던 그 길..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예쁜 한 가족의 뒷모습 아니었을까?
내가 중학교에 올라가던 해.. 엄마는 결국 바둑교실&기원을 차리셨다.
우리 가족의 공식적 아지트가 생긴 기분이랄까? 이제 아버지도 우리 바둑교실로 퇴근을 하셔서 온 가족이 함께 퇴근을 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도 나는 바둑을 배우지 못했는데.. 아니다. 안배웠다는 표현이 맞을것이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탓이 컸다.
지기 싫으니 더 열심히 배웠던 동생과는 달리, 지기 싫어서 바둑판 근처에 가는걸 꺼려했다.
그시절 우리 바둑교실에 정말 바둑 잘두던, 사범님 제자들 두명이 드나들곤 했는데..
특히 그네들이 오면 혹시나 두라고 할까봐 꽁지빠지게 도망가곤 했었다.
그러면서도 그네들에게 누나라고 부르라며 어깃장을 놓곤 했었다.
이제와서 알고보니 나보다 한살 많은 오빠였지만, 그때 누나라고 불러준 착한 M군과 U군.. (지금은 프로기사가 되어있어서.. KB바둑리그 선수명단을 보다가.. 사실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하수(!)들이 모여있던 초등부가 오는 시간에는 누구보다 신나게 바둑을 뒀다.
제대로 된 정석이나 포석 같은건 모르는.. 어께너머로 뒀던 바둑이기에.. 정말 웃기는 바둑을 두고.. 대충 내 집이 좀 모자란다 싶으면 개가를 하며 슬쩍슬쩍 돌을 밀어 승부조작극(!)까지 벌였던 나이지만..
바둑은 그시절 나에게 분명 매력있는 ‘놀이’였다.
바둑의 유행이 살짝 시들해지고..
동생도 연구생으로 들어가기엔 모자란 면이 많다는걸 깨달으며 엄마는 바둑학원 운영을 그만두셨다.
그리고 나와 동생이 슬슬 입시에 다가가며, 온 가족의 놀이터였던 바둑판에도 조금씩 먼지가 생겼다.
바둑에 조금은 미련이 남았나?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과 건물 지하에 있는.. 바둑 동아리에 제발로 찾아가 가입을 하였다.(당시 입학하자마자 제발로 찾아가 동아리에 가입하는건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바둑은 많이 안두었다. 일단 바둑판이 몇 개없어서 학번에서 밀려서.. ^^;;;
그후로 고시공부며.. 취직까지.. 이런저런 일에 바빠 바둑은 잊고 살았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었을까?
검색으로 프바사 까페를 찾아 가입하고, 종종 안부글을 남기며 지내던 어느날.. 계시원 모집공고를 보고는.. 계시원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