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퇴근을 하고 와서 씻고 안경을 끼는데 안경의 코 한쪽이 떨어집니다.
안경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상상하는 것밖에
할 수 없기에 안경은 저에게 있어서 몸의 일부나 다름이 없습니다.
코 한쪽만 떨어졌는데도 안경이 곧 흘러내릴 것도 같고 또 촛점도 옆으로
조금 기울어져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글을 적고 있습니다
며칠전 읽기 시작한 책에는 '뇌'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주걱 한주걱 퍼다 담은 아이스크림이라고 말입니다.
뇌는 진화에 의해서 어류의 뇌에 파충류의 뇌가 더해지고 .... 그위에 인간의 뇌가
더해졌다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설계해서 딱 완벽한 모습이 아니라...
덕지덕지 쳐발라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들어 흑백TV에 칼라TV부품을 끼워놓고 다시 벽걸이형 TV의 부품을 끼워넣고...
그렇게 했는데 하여간 운영이 되는 그런 구조라 합니다.
별로 효율적이지도 않고.. 그냥 되는대로 굴러가는...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경우 있지 않습니다.
"존재"를 깨닭는 것...
'나'라는 존재를 깨닭는 순간 말입니다....
존재의 의미라고 하나요? 일단 존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말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불확실해도 존재하는 나는 분명하다는 것 말입니다..
(제가 철학을 잘 몰라서... 제 생각대로 적습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하나의 시발점이지요...
그런데, 요즘...
그런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이 생기네요...
'나'라는 존재조차도 이세상에서 우주에서 거짓 존재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남는가?
모릅니다.. 대신, '나'라는 존재를 깨닭을때와..
'나'라는 존재의 불확실성을 깨닭을때... 어떻게 살아야하는가?하는데서
답이 틀리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나'라는 존재를 깨닭았을때는 세상을 나 위주 파악하고...
뭔가를 이루어 나가고... 내 생각이 절대 틀리지 않는다.
나는 보편적인 생각을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나도 틀릴 수 있고... '내가 옳다는 것' 그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맞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틀리고...
또,,,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사실과 다른 틀린 생각을 맞다고 믿을까?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사람이더군요...
바둑이 그렇습니다.
절대 이렇게 두어야 한다는 것도 사실 없고...
바둑에 대해서 다 아는 사람도 없고...
이런 방식 저런 방식 각자의 방식으로 두다보면
또 전체적으로 각자 바둑에 대한 깨닭음이 있고...
이런면에서 바둑은 사람과 닮았습니다.
바둑이 재미있는 것은 사람과 닮았기때문인가 봅니다.
닮은 것끼리 서로 통하는 것을
'resonance -공명' 서로 같이 울리는 공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유릿잔이, 말굽자석이 서로 울리듯이...
닮은 사람끼리 서로 잘 어울리고 즐거워 하며 죽이 잘 맞듯이...
바둑과 사람도 닮았기에...
사람이 바둑에 속 빠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