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9 첫등정 가야산>
“잘 다녀와~”
오늘은 애기는 어린이집 운동회이고 마누라는 회사 체육대회다. 결국 세식구 모두 오늘은 운동을 하기로되어 있는 운세인가 보다. 회사에서 월급을 안줄라고 강제로 휴가를 내라고 해서 1주일 휴가를 냈서 이번주는 백수다. 급여 삭감을 위한 조치에 화내기보다는 이왕 받은 휴가를 개인적으로 소중하게 사용하리가 마음을 먹고 등산 계획을 잡았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이글을 읽는다면 이사람은 정말 산을 좋아하고 산을 잘 타는 사람인가보다 하고 글을 읽기 시작하시겠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등산과는 거리가 거의 서울에서 부산까지인 사람이다. 회사 모임에서도 등산을 가더라도 늘 입구에 있는 절에서 맴돌다 오는 것이 전부이고 체질적으로 등산이 몸에 안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휴가때 등산을 하겠다고 작심한 것은 산이 좋아서라기보다는 결심때문이다. 나이에 아홉수가 다가와서 인생의 조바심이 생겨서인지 우리나라 명산을 죽기전에 다올라가봐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겠지만 유명한 사람들은 다들 전국을 둘러보고 뭔가를 느낀 것 같았다. 책에 의해 간접적으로 느끼기 보다는 과연 그들이 명산을 오르면서 느낀 것이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1년 몇 개의 산을 오를 수 있을까? 보통의 경우 1년에 1-2개정도임을 감안하면 10년은 걸릴 대계획인 셈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첫 번째로 가야산에 오르기로 했다. 주말에 태백산을 가고 싶었지만 거리도 멀고 첫산행인 점을 감안하여 가까운 것으로 가야할 것 같았다. 그리고 명산=국립공원일 것이라는 짐작을 기반으로 가야산을 택한 것이다. 등산이 좀 익숙해지면 멀리있는 산도 심적으로 부담이 적을 것 같아서이다. 그런 것을 포석이라 하지 않는가? 하하
해인사 입구에서 예전 기억을 되살려 성철 스님 부도탑을 잠시 보고 가기로 했다. 안쪽에 있어서 바로 보이지는 않아 둘러보니 낡은 나무판자로 안내가 있다. 해인사에 가장 처음 온 것이 성철스님이 입적하시고 바로 다음이니까 94년인 것 같다. 그날은 부도와 해인사만 보고 간 것 같다. 그때는 아주 깨끗하고 빛이 나는 부도탑이었는데 이제 세월을 간직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세상에 많이 회자되었었는데 93년 그렇게 입적하신 것이었다. 그당시 워낙 유명하신분이라 나도 몇권의 책을 읽은적이 있었는데 이 부도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과연 성철스님이 살아계셨으면 이런 부도탑을 허락했을까? 허릿한 기억 속에 사후에 장례도 간소하게 치르고 사리도 챙기지 말라고 한 신 것 같았는데...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기때문이다. 부도탑의 설명을 보니 부도탑 상부의 구는 완전한 깨닭음을 반구는 연꽃을 나타낸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 다시보니 당시보다는 규모에 대한 느낌이 작게 느껴져서 그런지 반감은 좀 줄었지만 그래도 역시 이 부도탑은 나의 눈살을 짓게 한다. "色"은 "空"이라 한 걸 생각한다면 성철스님을 기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차라리 더 성철스님을 기리는 일이 아닐까한다. 부도탑 아래 잔디밭에서 보게 된 작은 버섯에서 더 인간세상에 살다가신 성철 스님이 회상되어 진다.

부도탑을 지나면 바로 해인사 입구이다. 해인사 입구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풍경이다. 문과 문을 잇는 사이에 있는 거대한 수목들이 내가 표현해서 전할 수 없는 뭔가를 나타내고 있다. 공간적인 의미이다. 그것을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간에 그런 공간이 해인사 문에는 존재를 하고 있다.

오랜만에 들렀으면 좋으련만 내려오는 길에 들리는 것이 마음의 여유가 있을 것 같아 '가야산해인사’라는 글자를 눈 옆에 두고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등산로를 찾기 위해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사람도 초행이라면서 ‘아마 이쪽으로 가면 될겁니다.’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적게 산행을 했더라도 산행의 경험이 전무한 나보다야 많을테니 그냥 믿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몇발짝 가지않아서 안내 팻말이 나오는 군요. 국립공원이라 등산로가 최소한 임도정도로 넓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두명이 교차할 정도로 좁은 길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국립공원이고 가을철이면 주말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사람이 있을줄 알았는데 사람이 없어 이상하다 생각하며 혼자 한참을 올라갔습니다. 그냥 어두컴컴한 길을 계속 올라갔습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나무밖에 없습니다. 이 등산로가 북쪽에서 돌라가는 길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길이라 계속 오르기만 했습니다. 언제가부터 드문드문 이제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이 보입니다.

청단풍잎과 적단풍입이 공존합니다. 누군가 그랬죠. 사진은 형을 담는 것이 아니라 빛을 담는 것이라고... 그래서 물론 똑딱이 디카지만 열심히 찍어봅니다. 어두운 길에서도 올려다보니 조금 빛이 보이는 곳이 있습니다. 그빛속에서 반짝이는 단풍잎이 보입니다. 찰칵~ 산을 오른지 처음으로 보는 가을입니다.
등산로가 상당히 음습합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서 밝음을 모두 없애버립니다. 발도 무거운데 마음도 무겁습니다. 하산하는 2명의 사람이 보입니다. 등산로 초입에서 도토리를 줍고 계신분 2분말고는 처음보는 사람입니다. 집에서 출근하는 시간에 나와서도 이제 올라가는데 벌서 내려오는 사람이 신기해서 물었더니, 어제 산아래에서 자고 올라오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3/4정도 올라왔다고 알려줍니다. 70년도에 대구 통합병원에 근무하셨다는 여성 분과 외국분인데 이야기를 미루어 짐작컨네 외국에 거주하고 있다가 잠시 오신 것 같았습니다. 지난 세월의 반가운 이야기를 뒤로 하고 다시 올랐습니다.
힘들어서 몇번 정신 잃을 정도의 고비를 겪고나니 이제 어두운 숲에서 벗어나 하늘이 보입니다. 등산은 바둑하고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긴장과 이완. 바둑이 정신적으로 긴장했다가 풀리는 것에서 기쁨이 있다면 등산은 몸을 긴장시키고 이완시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짐작이 아니더라도 하여간 등산이 힘이든 것은 분명합니다. 죽겠습니다. 산에서 최대한 많이 올라간 것이 2km인데 너무 긴 코스를 골랐나 봅니다. 이제 나무 그늘에서 벗어나 파란하늘이 보입니다. 그만 땡볕의 길에 앉아서 쉽니다. 밝은 햇살을 보니까 힘이 풀립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역시 사람은 햇볕에 타더라도 태양아래에서 살아야하나 봅니다. 한숨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길옆에 헬기장이 있습니다. 산에 가다보면 군용인지 아니면 유사시를 대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H표시가 되어 있는 헬기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곳입니다. 잡풀이 무성하지만 H자 표시는 찾을 수 있습니다. 양지바른 곳이라서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가방에서 꺼내서 점심을 먹습니다. 그냥 아침에 먹던 밥에 얼마전 시장에서 산 고추잎장아찌입니다. 산이라서 그런지 김밥이나 다른 반찬이 있는 것보다는 자연의 반찬이라 더욱 잘 어울리고 맛있습니다. 급히 나온다고 준비한 게 이것이랑 작은 생수 한 병이 준비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귀한 것입니다. 이거 못먹으면 앞으로 올라갈 길이 더 험하고 내려갈 길도 먼데 쫄쫄 굶어야합니다.

시장이 반찬이라 너무 맛있게 먹습니다. 이순간만은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한젓가락 한젓가락 먹다보니 다먹었네요. 물한 모금하고 다시 길을 갑니다. 혼자 급하게 먹고 급하게 다시 걸어서 그런지 속이 부댓낍니다. 그래도 그냥 올라갑니다. 소화가 되겠지요. 조금 더 올라가다보니 이제 본격적으로 단풍이 보입니다. 뉴스에서는 설악산의 단풍이 절정이라 했는데 가야산이 남쪽에 있음을 감안하면 너무 일찍 온 것은 아닌지 걱정되 되었지만 울긋불긋한 단풍잎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단풍잎의 색깔 하나 하나 보면서 걷습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데는 다 이유가 있나 봅니다. 이 가을에 꽃이 핀 것입니다. 단풍이라는 꽃 말입니다.

차오르는 숨을 참으면서 단풍과 바위 사이를 오르자 이제 정상이 보입니다. 그런데 정상이 너무 멀게 보입니다. 눈앞에 정상이 보이지만 대충 거리를 어림잡아보아도 한참 걸릴 것 같습니다. 넓고 평평한 바위가 있습니다. 아침에 해인사입구에서 길을 물었던 분이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정상을 다녀왔나 봅니다. '딱 저렇게 했어야하는데...'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등산 실력이 한참 모자라서 중턱에서 점심시간을 맞은 것이 안타깝습니다. 위로는 정상을 아래로는 단풍을 두고 절경을 보면서 밥을 먹었어야했는데 말입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위 높은 곳에 서 있는 등산객이 보입니다. 저곳까지라고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바위 위에 서있는 사람을 보면서 '호연지기'라는 던어가 생각납니다. 부럽습니다.

부러움은 잊고 또 죽자 살자 까무르치기를 몇번하면서 산을 오릅니다. 정면에서 보이던 산의 뒤를 돌아 오르는 길입니다. 산이 가파라서 이번에는 거의 기다시피 하면서 오릅니다. 그러다가 잠시 쉬고 있는데 산을 내려오는 중년의 부부가 말을 꺼냅니다. '몸이 좋아서 산을 날아다닐 것 같습니다'라고 합니다. 아마 키가 커서 그렇게 보이나 봅니니다. 등산은 완전히 잼병이고 덩치는 무겁기만 하고 산을 오르는데 전혀 도움이 안되는데 말입니다. 몸도 잘 가꿔야지 유용하지 그냥 덩치만 큰 것은 아무짜개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바위 고개를 하나 오르니 평평한 바위가 널려있고 마지막 바위봉우리가 보입니다. 이제 마지막 몇십미터 계단만 오르면 끝입니다. 위에서는 웅성웅성합니다. 아마 반대쪽에서 오른 등산객들이 경치를 구경하고 있나 봅니다. 부럽습니다. 그리고 힘이 없습니다. 바위에 등을 기대고 태양을 향합니다. 휴식을 취합니다. 그분들이 모두 내려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산을 다시 오릅니다.
정상!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이 하나 있습니다. '가야산 상왕봉' 그리고 제자리에서 360도 돌면서 주위를 돌아봅니다. 검은 독수리 한마리가 공중을 날며 반겨줍니다.

표지석을 등 뒤에 두고 정복자처럼 산아래 모든 것이 내것인양 졸렬한 마음으로 굽어보고 있는데 주위에 공군비행장이 있는지 전투기 하나가 눈 높이로 멀리서 날아 가면서 나의 마음을 더 졸렬하게 만듭니다.
처음 보았던 검은 독수리가 다시 산정상을 돌면서 눈에 들어옵니다. 가야산 정상은 사람들의 것이 아니고 저 새들의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잠시 이곳을 지나가는 객이지만 산정상에 살고 있는 독수리가 진정 이곳의 주인 아니겠습니까? 머물 수 있어야 주인인 것이지요. 산아래는 마을이 보이고 또 멀리는 도시가 보입니다. 가을 노랗게 익은 벼가 장관입니다. 산아래 아직 초록의 나무들이 너무 부드럽게 보입니다. 마치 부드러운 양탄자처럼 보입니다. 저곳으로 떨어져도 하나도 안아플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발이 한발짝 뒤로 물러납니다. 스스로의 생각이었지만 생각을 하고도 무섭네요.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더니 바람이 찹니다. 해가 질 시간은 아직 남았는데 산은 찬바람을 동원하여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아래로 재촉합니다. 몇시간을 올라오고도 산정상에는 얼마 못있다가 내려갑니다.
그렇게 첫번째 계획 했던 가야산은 성공적으로 등정했습니다. 산을 다내려와서는 해인사에 들릴 시간도 없이 내려오다 보니 제대로 핀 길가 코스모스 잎에서 반딱이는 노린재가 배웅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