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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의 산책 - 고대 중국 포석의 갈등
2005-04 조회 12036추천 0   프린트스크랩
나의 반상 일기(4월 17일) 포석의 산책 - 고대 중국 포석의 갈등 대낮이다. 12시 5분.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금 古今의 비켜갈 수 없는 질문이다. 전쟁은 어떻게 해야 이기느냐? 전쟁은 본질이 무엇이냐? 차이와 부족, 욕망과 질투가 존재할 때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고대 중국에서 바둑 두는 사람들은 매우 고민했을 것이다. 의문이 많았을 것이다. 중국의 배석제 配石制가 과연 충분한 포석인가? 한판의 바둑을 전쟁으로 본다면 배석제는 전쟁을 위한 충분한 포진 布陣인가? 1) 이미 그 자체가 포석이다 2) 포석의 초기 단계다 3) 포석이 아니라 그냥 바둑의 처음 얼굴이다. 갈등했을 것이다. 3개의 기보가 있다. 1) 손책과 여범의 기보 2) 우신도 佑神圖 3) 겸산당 기보 -1 손책과 여범의 대국 우신도 겸산당 기보-1 12세기 초에 발간된 망우청락집에는 손책의 기보를 제일 앞에 두고, 그 다음에 우신도 등 다른 기보를 제시하고 있다. 17세기 초 경 발간된 겸산당 兼山堂 기보 棋譜에는 여기 선보인 겸산당 기보 -1 외에 다른 수많은 대국보를 싣고 있다. 손책의 기보는 분명히 위작 僞作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 알려준다. 당시에 포석은 이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신도와 겸산당 기보-1은 위작이 아니다. 실제로 둔 것을 채보 採譜한 것이다. 내용을 볼 때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신도는 대단한 수준이다. 국수급이다. 현대 이전 중국의 바둑을 보면, 손책의 기보와 같이 두어진 것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우신도와 겸산당기보-1과 같은 출발을 하고 있다. 포석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이 없었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굳이 있다면 1) 변으로 두칸 벌리는 것이 근거의 확보에 중요하다 2) 중앙으로 나갈 때는 한칸이 좋다 3) 세력은 별거 아니다 4) 돌을 살려두어야 다음 수를 노릴 수 있다 3)과 4)는 포석의 지침으로도 활용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포석 단계에서도 눈에 뜨이는 태도이다. 누구나 그 점을 지키고 있다.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면, 구별했다. 다음 두 개념을 구별했다. 1) 배석 配石 2) 포석 布石 그러나 포석의 이해는 매우 낮다. 배석이 포석에의 이해를 상당부분 선점 先占 cooption했기에, 배석이 포석의 조건을 상당부분 결정했기에, 포석의 이해는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새로운 포석의 실험하곤 했다. 겸산당 기보-2 천원의 1착을 실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앞서 보인 기보의 예를 벗어난 것을 찾기란 매우 힘들고도 힘들다.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자신이 없다. 자, 그건 그렇고. 초반 날일자 걸침, 그 수법이 포석에 들어가느냐? 우신도의 흑1, 손책의 백1 말이다. 이 문제야말로 어렵고도 어려운 것이 되겠다. 봄날에 꽃 얘기만 해도 아까운 날에, 달밤 보내기도 아까운 날에…. 그래도 歲歲年年花相似라 했으니…. 1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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