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월간바둑 2월호의 내용이다.
지금 이세돌 사태의 예언이나 다름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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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바둑에도 봄은 오는가
목진석과 이세돌
12월 20일은 한국바둑 반란의 날이었다.
이날 약관(弱冠) 20세의 목진석 五단이 세계바둑 랭킹1위 이창호 九단을 2:1로 꺾고 KBS바둑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켰으며, 이제 17세에 불과한 이세돌 三단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는 유창혁 九단을 3:2로 물리치고 n016배 배달왕기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20일 오후 5시 여의도 KBS스튜디오에서 목진석 五단이 시소접전 끝에 부동의 일인자 이창호 九단을 따돌리고 생애 첫 타이틀을 차지한 지 정확히 1시간 30분 뒤 상왕십리 한국기원 특별대국실에선 ‘비금도 섬소년’ 이세돌 三단이 유창혁 九단을 제압하며 보름전 박카스배 천원 타이틀 우승에 이어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TV속기전이긴 하나 목진석의 이창호 제압은 작지 않은 파문이다. 이창호에게 6전 6패, 그동안 도대체 판맛을 보지 못했던 목진석이었기에 이번 ‘쿠데타’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거사였다. 더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창호 깃발이 나부낀 이래 비4인방 기사로선 처음으로 번기(番棋)에서 이九단을 누른 쾌거라는 사실. 목五단은 이창호와 다섯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이창호 극복’이 거의 불가능한 존재로 보았을 정도이고 심지어는 10년 나이 차 이내인 이세돌도 회의적이었던 게 바둑계의 솔직한 시각이었다.
이세돌과 유창혁
이세돌 三단의 괄목상대(刮目相對)는 가히 눈부시다.
기자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13년전인 88년 11월. 제6기 대왕전 도전5번기에서 거함 조훈현을 3:1로 꺾고 첫 타이틀을 차지하던 때의 유창혁 九단을. 당시 방위병으로 근무중이었던 그는 짧게 치깎은 스포츠머리에 유난히 작렬하던 눈빛을 지닌 22세의 청년이었다. 80년대말의 조훈현이면 그야말로 산천초목을 저르르 울리던 맹장이 아니었던가. 기껏해야 서봉수 九단 정도나 타이틀 홀더로 들락날락거렸을 뿐 그 누구도 감히 조훈현의 험산준령을 넘지 못하던 때. 그러나 이 모든 사실보다 기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당하고 자신에 찬 유창혁의 인터뷰였다.
-도전기 처음 시작할 때 자신은 있었어요?
“다만 배우는 자세로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기분이었습니다.”
-아, 그럼 결국 지긴 지겠지만 최선만….
“아닙니다. 결코 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다만 힘을 다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더더욱이 놀라웠던 건 비보도를 전제로 한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조국수님은 무리가 많은 바둑이지요. 그걸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다보니 허점이 장점으로 돌변하는 거지요. 물론 다 뛰어나시지만 그러나 끝내기에는 약한 면을 보이십니다. 의외로 계산에 밝지 못하다는 뜻이지요.”
세상에나. 당시 그 어떤 기사가 감히 불경스럽게도(?) 조훈현 바둑의 아킬레스건을 정확히 진단하고 언급할 수 있었더란 말인가. 놀라워라. 최소한 향후 10년은 더 독주할 것이라던 조훈현 九단은 과연 유창혁의 진단대로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제자 이창호에게 ‘끝내기’에서 밀려 하야(下野)하기 시작했으니.
승부의 화살은 부메랑의 화살처럼 돌아와, 지금 유창혁 九단을 눕히고 타이틀을 딴 이세돌 三단의 자신에 찬 눈빛이, 어조가 돌연 십수년전 청년 유창혁의 모습을 영락없이 떠올리게 했다. “이창호 九단과 싸워도 자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거침없이 “자신 있습니다”라고 외쳐대는 17세 소년. “자신은 있지만 승부란 게 꼭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이란 사족을 달긴 했지만서도 너무 자신에 차다 못해 당돌하게까지 보이는 소년의 자신감. 고맙게도 우리는 또 한명의 스트라이커를 얻은 것이다.
조훈현-서봉수 이후 한국바둑계의 투톱 역할을 하던 이창호-유창혁 동시 침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목진석 五단의 이창호 격침에 대해선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도 있다. 공포의 핵주먹 타이슨이 도쿄 방어전에서 무명의 더글러스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후 금이 갔듯 누가 알겠는가. 이창호 九단도 어쩌면 ‘대반란의 날’을 기해 금이 갈지. 과연 그럴까.
춘추전국시대라 말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아직은 바둑계에서의 ‘도쿄반란’을 기대하는 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게 기자의 시각이다. TV속기전은 본격 신문기전에 비해 팬서비스 차원의 이벤트성이 강하고 실력 외에 시간적인 변수가 많이 작용하는 기전이어서 목진석 五단이 이창호 九단과의 정면승부에서 이겼다고 보기 어렵고, 이세돌 三단의 n016배 우승 역시 앞서 상보에서 보았듯 유창혁 九단의 착각에 힘입어 줍다시피한 승리였기에 검증의 기간이 더 요구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 한국바둑계의 현실에서 이창호의 목에 방울을 걸 가장 강력한 신예기사로 떠오른 이세돌 三단의 경우 단숨에 2관왕에 오르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행운이 따른 것도 사실이다. 말할 것도 없이 ‘최강 이창호’와 최종 결승에서 마주치지 않은 행운이다. 박카스배 천원전에선 류재형 四단이 8강에서 이창호를 잡아준 게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물론 n016배 배달왕기전에선 준결승에서 직접 이창호를 잡기는 했다. 대단하고도 쇼킹한 일이다. 그러나 단판승부였다.
최근 한국바둑계가 최명훈 七단에 이어 이세돌 三단, 목진석 五단의 눈부신 활약으로 무려 7명의 타이틀 보유자를 내자 일본바둑과 더불어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고 흥분하기도 한다. 70년대 초반 군웅할거시대 이후 4인방끼리만 나눠먹던 타이틀 전선에 무려 30여년 만에 7명의 챔피언이 나타났으니 그럴만도 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한국바둑은 춘추전국시대가 아니다. 그럴 조짐이 보일 뿐 여전히 이창호 일인 독주시대인 것이다. 최명훈 七단의 LG정유배 우승도 따지고 보면 4강에서 루이 九단이 이창호 九단을 잡아주었기에 가능했다. 이방인 국수 루이 九단도 단판승부에서는 이창호 九단을 몇번 혼내고는 있으나 아직껏 정면승부다운 번기(番棋)는 한번도 없었다. 서봉수 九단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러한 현상을 잘 함의(含意)하고 있다.
“이창호와의 번기를 피해 단숨에 2관왕에 오른 이세돌에 비하면 최명훈은 정말 재수 없는 친구다. LG정유배 우승 이전까지 벌였던 6번의 번기가 하필이면 하나같이 이창호였으니 말이다. 단판승부에서도 한판 이기기가 어려운데 이창호와의 5번기는 그야말로 지옥코스다. 나도 18세 二단시절 요행히 명인에 오른 적이 있지만, 타이틀이란 분명 시대운과 행운이 따라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2. 바둑 한냥 사람 서푼
이창호와 이세돌
캐슬린 배틀이란 유명한 흑인 소프라노가 있다. 그녀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프리마 돈나였으나 너무 거들먹거리다가 단원들에 의해 쫓겨났다. 지난해말 우리나라에서 가진 공연에서도 툭하면 “공연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인터뷰는 물론 리허설 사진도 못 찍게 하는 등 시종일관 거만하기 짝이 없는 행동으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
지난해 은퇴한 ‘면돗날’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 九단의 자서전을 보면 “빰 한 대가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란 고백을 하고 있다. 15세에 입단한 그가 떠오르는 신예기사로서 주가를 올리고 있을 무렵 어느날 선배기사들의 복기에 끼어 자기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붓다가 ‘건방진 놈’이라는 소리와 함께 호되게 빰따귀를 얻어 맞았다. 이때 청년 사카다는 깨달은 바가 있었고 이후 자신의 바둑인생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창호가 왜 위대한가. 바둑 하나만 잘 둔다고 위대한가? 얼마전 일본 천원 타이틀을 딴 류시훈 七단이 현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창호는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마음 속 깊이 존경하고 있다. 나는 바둑에서 ‘선의 굵기’라는 것을 중요시하는데, 창호에게는 그것이 있다. 바둑은 물론이려니와 인간적인 면에서도 그러하다. 창호의 굉장한 점은 백이면 백 그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그런 사람은 바둑계에서는 이창호밖에 없다.”
잘 알다시피 이창호는 여드름꽃이 채 피기전인 14세에 첫 타이틀을 땄다. 그리고 20세가 되기 전에 이미 세계 바둑계를 평정했으며 허리에는 무려 10개에 이르는 타이틀을 주렁주렁 단 ‘월드스타’였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지금도 그러하지만 언제나 겸손과 겸양을 앞세운다는 사실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를 제패한 10대 아이라면 한번쯤 우쭐대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 그 또래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기자는 물론 바둑계의 많은 관계자들이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이창호 九단을 거장의 예로 대하는 것이다.
사카다를 키운 빰 한대
이세돌 三단은 17세에 이미 2관왕에 올랐다. 이창호의 14세에 이은 두 번째 최연소 타이틀 획득 기록이다. 대단한 일이다. 기자같이 ‘바둑밥’을 먹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뉴스메이커가 더없이 고맙고도 감사하다. 이세돌 三단은 특히 어릴 때부터 한국기원 계단을 오르내리며 지켜봐 오던 ‘꼬마’였기에 대견하고도 잔정이 가는 기사다. 그러나 타이틀 획득을 전후해 보인 최근의 매끄럽지 못한 ‘물의’를 지켜보며, 더 늦기전에, 사카다의 빰을 때린 선배기사와 같은 심정으로 한번쯤 펜을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난해 10월말 제천에서 박카스배 천원전 결승1국이 끝난 후 관례대로 대국반(盤)에 사인을 요구했을 때 패자인 류재형 四단은 군말없이 붓을 잡았다. 그런데 이세돌 三단은 “붓글씨가 서툴다”는 이유를 들어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물려줄 것을 요청했고 그러고서도 20분이나 머뭇거리다 이름 석자를 썼다. 여기까지는 애교로 봐주자.
박카스배 결승2국은 자신의 홈링이나 다름없는 목포에서 두어졌다. 말하자면 자기 고장 바둑천재의 화려한 등극을 바라는 홈팬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성사된 대국인데, 그곳 어른들이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애취급했다 하여 끝내 기념촬영을 거부, 대회 관계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다.
최근 본지와의 신경전도 만만치 않다. 형 이상훈 三단과의 형제대결 때 사진촬영 거부로 빈축을 산 데 이어 이미 잡혀 있는 해설약속까지 ‘펑크’낸 행동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틀전 이三단은 편집부를 찾아와 기보해설료에 대한 불만을 “너무 적지 않나요?”란 단 한마디 말로 일방적으로 토로하고 횡하니 나가버린 적이 있다.
액수를 밝히기 뭣하지만 본지의 경우 타이틀 보유자의 경우는 예우를 하여 비보유자보다는 많은 해설료를 준다. 그러나 해설료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기 기보의 경우는 팬서비스적인 차원의 성격도 있는 것이다. 이 달의 경우 조훈현 九단은 춘란배 기보를 자전해설했는데, 중국에서 귀국한 바로 다음날(토요일이었다) 오전 일찍 편집부에 몸소 나와 강평했다. 그 자리에서 이세돌 三단의 얘기를 듣고는 “내가 돈을 보고 할 것 같았으면 아예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공인의 자세와 언행
기자는 십수년간 바둑지를 만들어오면서 아직까지 해설료 액수를 놓고 4인방 스타들과 눈살을 찌푸린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적다 생각되면 ‘NO’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기사를 한명도 보지 못했다. 편집부가 예뻐서가 아니라 독자들의 ‘알권리’를 먼저 생각하는 배려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기 몸값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이 틀렸다면 이는 공인으로서 분명 되새겨 봐야 한다. 이 글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끝내 이세돌 三단은 그 진의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없었다. 승부세계의 속성이 강자가 목소리를 내고 강자에게 관대하긴 하지만 아직 그 위치와 나이를 생각할 때다, 중국속담에 버릇이란 처음엔 거미줄 같은 것이지만 순식간에 끊기 힘든 동아줄이 된다고 했다.
사진촬영 거부 때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형 이상훈 三단이 동생이 ‘펑크’를 내던 그날 편집부를 찾아와 대신 사과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이상훈 三단에게는 실로 미안한 마음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형이 동생을 대신해 사과하고 다닐 것인가. 우리나이로 19세면 자기 앞가림과 행동에 대해 충분히 책임져야 할 연령이 된 것이다. 더욱이 타이틀 보유자에 MVP로까지 선정된 몸이면 여간한 공인(公人)이 아닌 것이다.
누구 못지 않게 이세돌 三단과 같은 기재를 아끼고 ‘광을 내줘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에, 혹여 이 칼럼이 누워 침뱉기가 되지나 않을까, 나어린 스타에게 깊은 상처만 주는 건 아닐까 여러날 고민했음을 밝힌다. 그러나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구만리인 이세돌 三단이기에 ‘경솔한 글’이었다고 기자가 비난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바둑언론의 ‘빰 한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사카다의 빰을 때렸던 사람은 프로기사도 아닌, 옆에서 복기검토를 지켜보던 「기도(棋道)」지 편집장, 아마추어 기사 야스나가 하지메(安永一)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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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는 크게 잘못 된 것이 있다. 바둑기자라는 사람들에게서 비판이라는 것을 볼 수가 없다. 바둑기자는 기자가 아닌가? 기자라면 비판 의식이 있어야할텐데 그런 것이 없다. 그것이 오늘날 "이세돌 사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무조건 쉬쉬하고 덮을려고 하는 태도는 스스로의 자정 기능을 없애버리기만 했다. 그 첫번째로 곪아터진 것이 "윤기현 사건"이다. 그리고 그 두번째가 이번 "이세돌 사태"이다.
누가 봐도 잘못 된 것을 못본체하고 인정해버리니 그것이 크게 사단이 난 것이다. 더 큰문제는 몸에 보약이 되는 쓴소리를 프로기사들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속 좁음을 가지고 있는 프로기사들도 반성을 해야한다. 프로기사들도 바둑이 9단이지 인생이 9단은 아니다. 그래서 당연히 틀릴 수도 있고 그러면 당연히 비판받을 점이 생기는 것이다. 비판이 나오면 스스로 고치면 그 뿐인 것을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그러니 이세돌 같은 이런 엇나간 후배가 나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선배들은 선배의 역할을 해야한다. 일이 이지경까지 되고 있는데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있으니 일이 더 이상하게 되어 가는 것이다. 지금은 이세돌이 한국기원을 떠나서 중국기원가는 것 아닌가? 피곤한 사람이 중국가서 리그에 참여하겠다는 해괴한 소리가 나도는데도 안들리는가?
이참에, 이세돌의 휴직계를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휴직계는 돌려주고 자격정지 같은 징계를 내려야한다. 이번 일의 수습은 조훈현 9단, 서봉수9단, 김인 9단, 유창혁 9단 등 바둑계의 책임있는 사람이 나서지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수습을 해야한다. 그리고 이제부터 바둑기자들도 이세돌에 대해서 제대로 된 기사를 적어주기 바란다. 내용 다빼고 적으니 기사가 전달이 되는가? 내가 기자라면 앞으로 바둑관련해서는 부끄러워서 더 글을 못적을 것 같구만...
광장지기 정용진이사도 이참에 다른 뺨도 한번 더 때리는 용기를 내어보시지요. 타이젬에 있을땐 안그렇더만 오로로 오고 나서는 유구무언의 자세를 철저히 지키고 있나이다. 초심을 잃지 마소서~
언젠가부터 바둑계에는 "바둑이 무엇인가?"하는 화두가 사라지고 바둑판 위에서도 잔재주가 바둑판 밖에서도 잔재주만 넘치고 있다. 바둑때문에 중학교 중퇴한다는 이야기 나올때 알아봤어야했다. 그래서 군대도 안가는거 아닌가? 법에는 안걸리지만 고의로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는 것이잖아. 그렇게 잔머리 굴리면서 바둑둔다고 공부 안할때 알아봤다.
지금 연구생들도 명심하기 바란다. 운동한다고 공부 안하면 영화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무사 역할 맡는 최홍만 되듯이 "바둑 둔다고 공부 안하면 이세돌처럼 된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