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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행복의 제아 아너스빌. 찬돌이 사는 서민형 빌라의 벽면에 조각되어 있는 문구였다. 찬돌은 평소 같으면 집 앞에 도착해서 위의 문구를 바라보며 코웃음을 치거나 독신 생활이 어서 끝나길 기원하거나 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단숨에 빌라 현관으로 달려 들어간 뒤 꼭대기 층인 4층까지 한 달음에 뛰어 올라갔다. 집안은 어두웠지만 그렇다고 컴퓨터가 있는 방을 찾아 들어가지 못할 건 없었다. 찬돌은 신발은 벗었지만 거실의 전등도 켜지 않은 채 안방으로 향했다. 그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컴퓨터부터 켰다. 그리고 평생을 익숙해지지 않을 부팅 시간을 인내한 뒤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열었다.

 찬돌이 포털 사이트의 검색 기능을 이용해서 ‘위고로’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대표 목록이 나타났다. 최상단의 ‘바로가기’라는 안내문구 옆에 ‘NS 오픈 세계 바둑 대회’ 라는 간단한 사이트 소개와 ‘www.wegoro.com’ 이라는 웹 주소가 따라붙어 있었다. 이제껏 서둘러대기만 하던 찬돌은 커서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커서가 웹 주소 위에 놓이자 밑줄이 생겼다. 찬돌은 클릭 버튼 위에 검지를 올려놓았다. 더 이상 망설여야 할 이유는 없었다. 찬돌은 소더버그 회장이 만들어놓은 웹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딸깍 하는 클릭 소리와 함께 상당히 빠른 반응으로 웹페이지가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첫 페이지는 메인 페이지가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흰 바탕 위에 검은 글씨로 열다섯 개의 서버와 세계 각국의 언어가 짝 지어져 있는 인트로 페이지였다.

 America Server 1 - English

America Server 2 - Espanol

America Server 3 - Português

* America Championship D-day Server (For 8 Ticket)

Asia Server 1 - 中國語

Asia Server 2 - 日本語

Asia Server 3 - 한국어

Asia Server 4 - English

* Asia Championship D-day Server (For 16 Ticket)

Europe Server 1 - Français

Europe Server 2 - Das Deutsche

Europe Server 3 - l'Italiano

Europe Server 4 - English

* Europe Championship D-day Server (For 8 Ticket)

* Wold Championship Tournament Server

 열다섯 개의 서버는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 3 개 대륙별로 안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언어를 기준으로 나뉘기도 했다. 불어를 많이 사용하는 아프리카 쪽에선 유럽 서버1을 접속하면 될 것이며 영어에 익숙한 인도인이나 필리핀인들의 경우엔 아시아 서버4에 접속하면 될 것이었다. 한국어는 일곱 번째 줄의 아시아 서버 3에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아홉 종류의 언어 중에 사용 인구가 가장 적은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서버가 배정되었다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더구나 가만 살펴보면 아시아 쪽에 할당된 열여섯 장의 본선 티켓 중에 최소한 넉 장 이상을 한국이 확보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찬돌은 마우스를 움직여 커서를 목록 위로 지나치게 해 보았다. 그러자 대륙별 서버는 밑줄이 생기면서 활성화 되었으나 챔피언십 서버는 아무 반응 없이 활성화 되지 않았다. 보나마나 챔피언십 서버는 클릭을 한다 해도 열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찬돌은 커서를 한국어 서버 위로 옮겼다. 그리고 그곳을 클릭하자 역시 웹 페이지는 빠른 속도로 바뀌었다.

 위고로 닷컴은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동시 접속자 수는 한국어 서버만도 이미 6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오늘이 오픈 첫날인 것을 감안한다면 과연 130억 원에 달하는 상금이 지닌 홍보 효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메인 페이지는 디자인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일목요연하며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상단에는 ‘제 1회 NS 오픈 세계 바둑 대회’라는 타이틀이 보였고 그 아래엔 하부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게시 목록이 나열되어 있었다. 로그인 창은 화면 왼 편에 있었는데 ‘회원가입’이라는 문구 대신 ‘대회참가 신청’이라고 쓰여 있는 게 달라 보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아이템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구와 목록이 세로로 길게 나열되어 있었으며 목록의 가장 밑으로는 배너광고로 보이는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메인 페이지의 메인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을 만한 화면 중앙엔 대국장32에서 개설된 대국실 목록과 대기자 목록이 좌우로 분할된 형태로 보였다. 위고로 닷컴은 기존의 바둑 사이트들로부터 검증된 대국실 운영 방식을 거스르지 않고 있었으며 한 대국장에는 2천 명 정도의 인원이 들어가 있는 게 적당하다는 방식도 따르고 있었다. 다만 기존의 경우엔 대국실 설치 프로그램을 유저들이 다운로드한 뒤에 따로 설치하여야 했지만 위고로 닷컴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이 달랐다.

 찬돌은 대국실을 먼저 들어가 볼 것인지 게시 목록들을 먼저 열어 볼 것인지 결정하기 위해 메인 페이지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게시 목록은 대회 설명, 이용 방법, 대회 일정, 대회 현황, 내 정보, Q/A로 구성되어 있었다. 찬돌은 화면 좌측에 세로로 나열된 아이템 목록도 살펴보았다. 첫 번째에는 알파 로고와 함께 천사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두 번째는 베타 로고와 함께 병기를 든 전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Ticket’이라는 문구와 정말로 티켓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내 아이템 정보’라는 글자만 있는 목록이 보였다.

 찬돌은 아이템 목록 중에서 전사 그림이 있는 곳으로 커서를 옮긴 뒤 클릭하였다. 그러자 ‘대회 참가 신청을 하십시오.' 하는 안내 창이 뜨면서 페이지가 바뀌거나 새 페이지가 뜨거나 하지는 않았다. 찬돌은 로그인 칸 아래의 ‘대회 참가 신청’이라고 써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찬돌은 커서를 상단의 ‘이용 방법’이라고 쓰여 있는 곳으로 옮긴 뒤 그곳을 먼저 클릭하였다. 그러자 이번엔 페이지가 순조롭게 바뀌고 있었다. 찬돌은 게시물을 차분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찬돌은 눈이 커지면서 표정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이번엔 그의 입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

 위고로 닷컴의 전체 시스템과 구성 메커니즘은 그야말로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이용 방법 게시판에 쓰여 있는 안내문을 몇 줄만 읽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우선 ‘위고로 시스템’은 철저하게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관여 하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심지어 문제가 생겼을 때에 조정하러 들어오는 운영자도 인공지능이 맡고 있었고 ‘레프리’라고 부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알파와 베타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대회에 참가한 모든 참가자가 파트너로서 지정하여 이용할 수 있었다. 천사의 그림을 로고로 사용하는 알파는 형세, 사활, 정석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전사의 그림을 로고로 사용하는 베타는 전투와 수읽기를 알려주는 역할이었다. 다만 기억해 두어야 할 문제는 알파와 베타의 지원을 받을 시에 참가자는 각각 덤을 한 집 씩 손해 보아야 했다. 다시 말해 기존의 여섯 집 반의 덤이 적용되는 규정이 유동적으로 적용되는 것인데 알파와 베타 모두를 이용하여 흑을 쥐었을 경우엔 여덟 집 반을 상대 대국자에게 덤으로 내어 주어야 하며 백을 쥐었을 경우엔 넉 집 반의 덤만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찬돌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완전히 굳어버리게끔 한 내용은 그 다음에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NS 오픈 세계 바둑 대회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바둑에 익숙해 있는 일부 사람들만 전술 전략 게임으로서의 바둑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현실의 벽을 허무는 것의 의미 이상이었다. 그것은 바로 바둑은 일대 일로 두 사람이 만나서 개인과 개인의 능력을 겨루는 게임이라는 한계를 깨부수는 발상이었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도 이미 ‘세계 마인드 스포츠 올림픽’이라는 대회에서 팀 경기와 페어 경기 종목이 생겨나기도 했으나 엄밀하게는 한 판의 바둑 안에서의 협동 플레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위고로의 시스템 안에서는 세 사람까지 팀을 이루어 협동 플레이로 바둑을 둘 수 있게끔 대국실에 기능이 추가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위고로의 인공지능 기능을 이용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놓아보기 기능의 확대’라고 할 수 있었다. 놓아보기를 하되 바둑 실력이 뛰어난 인공지능이 다양한 형태를 제시하고 바람직한 곳과 위급한 곳과 위험성 등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팀 플레이의 경우엔 알파와 베타가 자리할 수 있는 그 자리에 팀원들이 들어가서 놓아보기를 하면서 바둑의 짜임새를 높일 수 있게끔 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내문의 마지막은 ‘위고로(Wegoro)라는 명칭은 바둑을 지칭하는 중국의 웨이키(Weiqi)와 일본의 고(Go) 한국의 오로(Oro)를 조합하여 만든 신조어로써 서구 사회에서 바둑을 지칭하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서 만들어 내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리고 위고로는 하이퍼 컴퓨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시스템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끝맺고 있었다.

 과학은 역설적이다. 인간은 인류 전체를 삽시간에 말살할 수 있는 핵폭탄과 수소폭탄을 발명한 뒤에야 비로소 전쟁을 멈추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이너마이트보다 수천만 배 강력한 거대한 힘은 미소 원자와 핵으로부터 발생한다. 컴퓨터 과학의 핵심인 2진법은 가장 단순한 것이야말로 가장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디지털은 명징하며 데이터와 수학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결과물은 정직하다. 그리고 바둑의 원리는 이러한 컴퓨터의 원리와 흡사하다. 기본적으로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기초적인 물리 활동에서 시작되고 있으되 정보가 축적되면서 다양한 창조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가로 세로 교차된 19 라인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361 포인트는 아이큐 90에서 170 사이에 머물고 있는 인간이 몸소 체험해 볼 수 있는 컴퓨터와 디지털에 대한 가상 체험의 무대이다. 인간의 뇌는 컴퓨터보다 뛰어나지만 실상 인간은 컴퓨터보다 나약하다. 하지만 60억 대의 컴퓨터를 활용한 어떤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결과물과 60억 명의 인류가 합심하여 이루어 낸 결과물을 비교해 본다고 가정할 때 과연 컴퓨터가 인간보다 뛰어난 업적을 이룰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바둑이 수학인가 예술인가 아니면 그저 스포츠일 뿐인가 하는 질문은 컴퓨터의 능력이 정점에까지 진보하게 될 미래 세대를 위해 남겨둘 만한 숙제이다. 그렇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바둑이란 수리와 계산 이외에도 직관과 창의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바둑에서 만큼은 컴퓨터가 인간을 꺾을 수 없다는 결론을 접하거나 컴퓨터 인공지능이 인간의 대표팀을 연파했다는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으나 찬돌의 방은 등이 꺼진 채였다. 찬돌은 책상 앞에 계속 앉아 있었지만 고개를 떨군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책상 위의 모니터에는 고전적인 우주여행 화면 보호기가 실행되고 있었다. 찬돌의 머릿속은 모니터에서 실행되는 쏟아지는 별의 이미지처럼 복잡했다. 조금 전 그는 위고로 닷컴 한국 서버의 대국실을 구경하기 위해 대회 참가신청을 해야 했다. 의외로 대회 참가 신청란은 단조로웠으며 동의를 해야 할 조건들은 상식적이며 단순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대회 참가자의 등록번호는 바로 실명란 옆에 기입해야 하는 은행 계좌번호를 기입하면서 같이 쓰인다는 점이었다. 과연 대회를 주 목적으로 개설된 웹사이트다웠다. 그런데 대회 참가 신청을 마치고 대국장에 들어간 뒤에는 뭔가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내년 2월부터 정식 대회 일정이 시작된다고는 했지만 대국장은 너무 어수선했다. 먼저 다른 사람들의 대국을 관전을 해 보니 대국자들의 실력이 너무 중구난방인데다가 기력을 아무렇게나 신청한 저급자들도 많았다. 따라서 팀플레이를 하는 팀의 놓아보기와 대화를 엿볼 수 없는 이상 바둑에서의 협력 플레이가 얼마나 상승작용을 하는지 아니면 무의미한 일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점은 인공지능 알파와 베타의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대국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찬돌이 직접 누군가와 팀을 짜고 함께 바둑을 두면서 몸소 체험을 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찬돌은 인공지능 알파와 베타의 활용도를 시험해보기 위해 대국신청을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검증되지 않은 상대를 만나 넌센스에 가까운 대국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망설여졌다. 그래서 그는 어수선한 분위기가 잦아든 뒤에 시도하기로 하고 접속을 끊었다.

 찬돌은 컴퓨터를 끄지는 않았으나 모니터로부터 시선을 거둔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위고로 닷컴은 일단 외견적으로는 성공적인 스타트를 끊은 듯싶었다. 문제는 대회에 선수로 출전하게 될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오메가의 활약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와 팀플레이를 선택한 아마추어들이 프로를 꺾는 일이 실현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었다. 대회 운영 규정에 따르면 프로는 개인 출전을 원칙으로 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명의 프로 기사가 모여서 현재의 대국 상황을 연구하고 의논된 내용을 대회에 참가중인 동료에게 알려주는 일이 발각되면 제재를 가한다거나 상금 수여 자격을 박탈한다거나 한다는 내용은 없었다. 어차피 오프라인을 완전히 배제한 채 온라인 상에서 결승까지 치루게 될 대회였다. 참가자들이 집에서 혼자 바둑을 두든 회관 같은 데서 여러 사람 내지는 수십 명이 함께 모니터에 실행되는 이미지를 공유하며 바둑을 두든 확실한 제한을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프로 바둑 기사의 자존심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한 것이었다. 다른 프로기사들과 아마추어 바둑인들이 규정에 따라 대회에 참가하는 가운데 누군가는 다른 동료 프로 기사와 모의를 하여 반칙을 일삼는다는 것은 있기 힘든 일이었다.

 찬돌은 국내외의 프로 바둑계에선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바둑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혁신적인 시도가 많은 관계로 보이콧을 한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반응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현역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나 협회 관계자들이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얼마 동안은 패닉 상태에 빠져 있게 될 게 분명했다. ‘바투’가 등장했을 때만 해도 e 스포츠로써의 바둑의 진화에 대해 익숙해지기 힘든 거부감은 어느 정도 밑에 깔려 있었지만 그다지 큰 우려는 나오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바투의 출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충격이 있었다. 어쩌면 프로 바둑계는 완전히 재편되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세계 바둑의 흐름과 주도권이 서양으로 넘어 갈 수도 있고 미국식 상업주의와 맞물려서 바둑의 가치가 변질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찬돌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것은 운명이 그를 프로 기사로 이끌지 않은 데에 대한 조소에 가까웠으며 결국에는 열등의식의 반영이었기 때문에 마음껏 내색할 수는 없는 표현이었다. 찬돌의 입가의 미소는 곳 사라졌다.

 그 때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 놓아두었던 찬돌의 휴대전화가 울려대고 있었다. 찬돌은 주리가 전화를 했나 싶어서 얼른 단말기를 집어 들어 번호를 보았다. 그런데 주리의 전화번호는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 번호가 나열되어 있었다. 찬돌은 슬라이드식의 통화연결 과정을 거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러자 저 쪽에서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중년 남자의 영어 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찬돌은 갑자기 웬 외국인인가 싶었지만 곧 기억이 가물가물한 영어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응대했다.

“아....... 예. 제가 박찬돌 맞습니만, 누구시죠?”

그러자 상대방은 이런 저런 설명을 앞세우기보다 바로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있었다. 그리고 찬돌에게 있어서 그 이름은 익숙한 듯 하면서도 너무나 어색한 이름이었다.

“마침내 연락이 되었군요. 난 필 소더버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