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옵니다. 무거운 장마비가 오다보니 왠지 따뜻함이 무거움을 날려 줄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합니다. 뜻밖에도 한겨울 따뜻하게 타 먹던 콩가루가 생각이 납니다.

혹시, 콩가루를 저희 집에서만 타 먹은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해봅니다.

어른이 되어서 어린시절 먹던 음식을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니 집집마다 전혀 다른 음식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마다 우리집 특이한 식습관으로 분류되었던 것들이 있어

그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저절로 납니다. 첫번째가 '밥에 마가린 비벼먹기'

두번째가 '시금치나물 마요네즈 찍어먹기'입니다. 어린시절에는 집집마다 다 그렇게 먹는

줄알았습니다. 요즘도 간혹 본가에 가면 시금치나물을 그렇게 먹을 기회가 있지만 주변에는

그렇게 먹어본 사람이 거의 없더군요.

겨울이면 전지분유를 타먹었는데 어느해 몸에 좋다며 콩가루가 등장한 것입니다.

어떻게 만든 콩가루인지는 모르지만 타먹으면 아주 고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해 겨울은 그래서 늘 간식으로 그것을 타먹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이 콩가루에 닿자 옆에 놓여 있는 비밀봉다리에 든 미싯가루가 눈에 들어옵니다.

저것도 따뜻한 물에 타 먹으면 맛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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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날때까지 작은 주전자에 물을 끓인 후 컵에 한 숟가락 넣고 타먹습니다.

미싯가루를 만들려면 많은 정성이 들어갑니다. 한여름 땡빛에 몇번이고 뒤적여가며

말리는 것도 고역이고 그것을 방앗간까지 들고 가는 것도 고역이고 가만히 있어도

더운 여름에 과정 하나 하나에 땀나지 않은 것 없습니다

그래도 해놓고 보면 여름철 음료로써 더 좋은 것이 없죠. 요즘은 얼음이 각얼음이지만

예전에 사다먹는 얼음 맛은 기가 막혔습니다. 우리동네 얼음가게에는 파란페인트로

얼음창고를 칠해놓고 그위에다가 크게 "어름"이라고 적어 놓았는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곳에서 파는 얼음 한덩어리를 사서 부엌칼로 잘게 부수어 수박화채도 해먹고

미싯가루도 타먹으면 정말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많이 흔해졌습니다. 미싯가루도 흔해졌고 다른 음식들도 많이 흔해졌습니다.

소풍, 운동회 때나 먹을 수 있었던 김밥도 한줄에 1-2천원이면 쉽게 사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릴때 김밥은 계란을 흰자와 노른자를 구분에서 부쳤는데 요즘 가게에

파는 김밥은 그냥 섞어서 하더군요. 희고 노란 계란이 들어간 김밥이 맛이 있는데 보기도

좋고 맛도 있었는 것 같은데... 김밥도 집에서 해먹을려면 정말 어떤 요리 못지 않게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데 이제는 너무나 쉽게 먹는 음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둑도 예전에는 바둑을 둘 수 있는 상대를 만나야 둘 수 있는 귀한 것이었는데

요즘은 인터넷바둑 덕분에 너무나 쉽게 두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에 손님이 오면

"바둑 두실 줄 아십니까?"라고 인사를 한 것을 보면 그만큼 바둑에 귀함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 바둑은 집 나무 위에서 우는 까치처럼 '손님'의 의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까치가 손님이 오는 것을 알려주는 의미라면 바둑은 손님을 맞는 의미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