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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령제의 삼국지 성공처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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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십상시의 난
2021-12-05 오후 4:28 조회 477추천 7   프린트스크랩

6-2. 십상시의 난



서기 166년의 1차 당고에서는 청류파 관료의 대표 격인 사예교위(현 경찰총장

이응을 비롯한 200여 명의 관료와 지식인들이 투옥되었다

이응은 환관의 비리를 엄중이 다스리던 중, 악행을 거듭하던 환관 장양의 아우 

장삭을 추적하여 형의 저택에 피신하여 기둥 속에 숨은 그를 끝내 체포함으로써 

환관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응 등의 죄목은 '태학의 학생, 각 군의 생도들과 왕래하면서 당을 만들어 

정부를 비방하고 사회의 풍기를 문란하게 한다'는 명목이었다.

이들은 이듬해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종신 금고형, 즉 관직추방과 

영원한 관리등용 금지의 처분을 받게 되었다.


이어 169년의 2차 당고에서는 당인 100명이 사형을, 그 외 600명이 유형이나 

금고에 처해지는 등 대숙청이 이루어졌다.

심지어 당인을 은닉했다고 의심이 가는 집에까지 처형의 손길이 뻗쳤다.


환관들은 조정에서 건드릴 수 없는 자들이 되었고 이 세력이 영제(靈帝)때의 

유명한 십상시 (十常侍)로 이어진다

십상시의 권세는 천민 출신의 하()씨를 황후로 만들었다

하씨는 얼굴이 이쁘고 머리가 영리하여 궁에 들어가자 어떻게 해야 권력을 잡는지를

 환관들을  통하여 듣고, 바로 뇌물로 환관의 환심을 사서 환관인 십상시들이 

모두 힘을 합쳐 하씨를 황제의 후비(后妃)로 밀어올리고, 그녀가 황제의 아들을 낳아

 황후(皇后)가 되면서 십상시의 권세는 절정에 달했다.


영제가 죽은 후 벌어진 권력투쟁에서 하씨의 아들이 한의 소제(少帝)로 등극하면서 

하황후는 태후가 되고, 그녀의 오빠 하진(何進)은 대장군이 되었다.

하진은 대장군이 되자 뛸 듯이 기뻤다.

천하가 모두 자신의 손에 들어온 느낌 이었다.


집에는 전국 각지에서 벼슬이라도 한자리 하려는 자들이 하진을 만나기 위하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매일 들어오는 뇌물을 처치하기가 곤란 할 지경이었다.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세상인심은 변한게 없다.

오늘날에도 실세에게 줄을 대려는 사람이 뇌물 등과 같은 모든 것을 다 동원하여 

실세에게  줄을 대 출세하려고 한다.

현직관리는 물론이고, 퇴직한 관리도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이라면 더 좋은 관직을 

얻기 위해  실세에게 돈을 주고, 선거하기 전 거액의 선거 자금을 대고

공천을 받기도 하고, 선거운동에  앞장서며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싸우기도 한다.


하진은 인생 최고의 절정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항상 인간에게 최고의 행운이 찾아 올 때가 가장 위기인 것이다

그때 겸손하고 자신의 위치를 알고, 유능한 사람을 주위에 많이 모이게 하고

그런 사람의 조언을 듣고 행동을 잘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독자들도 인생의 최고 좋을 때, 돈이 많이 들어와 어떤 사업을 시작 할 때 

그때가 인생 최고의 위기일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잘 대처하길 바란다

하씨들이 새로운 외척세력이 되자 하진 장군의 주위에 모여든 사람 중 

원소와 조조는 환관세력을 일소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에 동조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진도 자기누이가 환관들에 의하여 황후가 되었지만 환관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그들을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환관들이 그 정보를 알면서

 환관세력과 갈등을 빚었고,  세 불리를 느낀 하진이 외부세력과 힘을 합하여 

환관세력을 없애려 하였다.


이때 하진에게 동조한 인물 중에는 하북의 유명한 사족(士族)출신인 원소(袁紹)와 

서량의 동탁(董卓)등이 있었다. 하진은 환관을 제거하기 위하여 동탁의 군사를 

서울로 불러 들여  환관 세력을 일소 하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강력히 반대하며 말하기를 환관세력보다 더 위험한 것은 

동탁이 군대를  데리고 와서 권력을 장악하면 더 문제가 커지니 절대로 동탁의

 군대를  불러들이면 안되며

환관세력의 제거는 원소와 자신의 군사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진은 조조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동탁의 군대와 주변의 모든 군대를 

서울로 불러 들였다.

하진은 자신의 행동과 말이 미래에 무슨 일로 일어날지 예측하지 못하였다

미래에 일어 날 일을 예측 할 정도로 하진은 본래 타고난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다.

뛰어난 사람들은 매사에 주의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항상 사물의 이면까지 

생각하는 존재였다

또한 뛰어난 사람들은 주변에 유능한 인재를 두고, 뛰어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재능이 있고, 그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좋은 의견은 따르고, 끝없이 경계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의 성공은 늘 친구나 뛰어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적을 이기는데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고, 누가 참된 친구인지 아닌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지 아니면

 해를 끼치는 사람인지 분간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에 적이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며

적은 항상 친구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나타난

그러므로 친구와 적을 가려내고 뛰어난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야말로 

성공의 필수 요소이며성공의 과정은 바로 장애를 극복하고 적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으로 지혜롭고 뛰어난 사람들의  장기인 것이다.


권력을 잡으면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그러한 위험이 발생할 것에 대비하는

마음이  없다면 권력을 유지 할 수 없게 된다.

권력과 관계된 중요한 일을 처리 할 때는 권모술수로 모든 것을 처리하며

일은 비밀을 지키고상대방이 준비하지 않은 틈을 타서 공격하고 

행동은 번개처럼 신속히 해야 하는데 

하진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행동이 신속하지 않으면 일이 복잡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상대에게 기선을 빼앗기면 

계획은 어려워진다.

적에 대하여 행동 할 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유부단하고 생각만 많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수를 빼앗기고 수동적인 위치에 처하게 된다. 서민 출신인 하진은 

배운 것도  많지 않았고 속성상 그런 사람과 달랐다.


그저 좋게 말하면 호인이라 칭할 만한 사람일 뿐으로 만일 그가 책을 많이 보고

많이 배운 뛰어난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무참하게 참살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환관을 주살하려는 하진의 모의를 알아챈 환관들이 오히려 선수를 쳐서 하진을 

황태후가  부른다고 궁궐로 유인하여 죽이고 그 일족을 몰살하는 

이른바 십상시의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환관들을 제거하려는 세력들에게 좋은 명분을 주었다

이미 군대를 동원한 원소 등은 황궁에 난입하여 환관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을 

벌였고,  2000여명의 환관이 참살 당했고 이로서 조정을 뒤흔들던 

환관들의 세력이 꺾였다.


한편 뒤늦게 궁궐로 무섭게 달려오는 동탁의 군대를 보자 환관의 우두머리들은 

서로 앞 다투어 황하에 몸을 던져 물귀신이 되었다

가장 강력한 많은 군사를 동원한 동탁은 손쉽게 황제 형제

를 손에 넣게 되었다.


원소는 세 불리를 느낀 나머지 자기 본거지로 급히 도망갔다

아무리 쇠락한 왕조라 해도 황제는 정권의 정통성을 다투는데 있어서는 

최고의 무기라고 할 수 있다.


환관들의 전횡 역시 황제를 가까이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동탁은 최고의 패를 손에 넣은 셈이었다. 그러나 환관 토벌을 한 후 동탁은 

수도인 낙양에 들어오자마자 소제를 폐하고 그 동생인 진류왕을 헌제(獻帝)로 세웠다.

이에 원소 등은 동탁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연합군을 결성하고 동탁은 이를 피하여 

서한(西漢)의 수도이던 장안으로 수도를 옮겼다.

외척과 환관들이 암투를 벌이는 동안 매관매직은 일상적인 일이 되었고 

변방의 장수들은  거의 독립 세력이 되었으며 주목(州牧)들의 권한이 급상승하면서

 조정이 통제하기 힘든  지방 세력이 곳곳에 생겨났다.


원소가 결성한 호족연합군중 대부분이 한 지역을 장악한 주목이나 자사출신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동원한 군대를 해체하지도 않았고 이를 기반 삼아 혼란한 정국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였다.

정치가 어지러워지면서 백성들의 세금 부담도 늘어났고 대 호족들은 더 많은 

땅을 점유하게 되었다.

후한은 점차 기존의 체제로는 유지가 어려운 한계상황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편, 농민들은 부패한 정권과 잇따른 정쟁 속에서 서서히 몰락해갔다.

호족과 부패한 관료세력에 의한 토지겸병은 날로 심각해졌으며

메뚜기 떼와 홍수와 가뭄 등으로 인한 거듭된 대기근은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사서'쌀값은 치솟고 사람이 서로 잡아먹으며 노약자는 길에 버려지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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