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한병장이 서슬이 퍼래가지고 나에게 소리친다.

  "야 이새꺄! 고참이 까라면 까는거지...

  뭐어?... 못먹는다고??...

  대가리 박어 이새꺄!!! 

  빠져가지고...

  갓 일병 단 놈이 짬밥에 벌써 배가 불렀냐 임마!"

  오늘 매복이 있을거라고 상황실에서 통보를 받은 고상병은

  낮에 PX면회를 오신 부모님이 보신하라고 가져다 준 개장국을 남겨서

  반합에 그득 담아 판초우의 안에다 숨겨서 나왔었다.

  산 속 깊은 오솔길

  꽤 길게 자란 풀 숲 길가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분대원이 두루 모여 보신탕을 한숟갈씩 맛을 보는데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는 나를 보며

  억지로 먹이려고 장난치듯 시작한 놀이는

  조용해야 할 매복지의 어수선한 모습으로

  분대장 한병장의 비위를 거슬렸던 모양이다.

  때 마침 쏟아지는 빗방울이

  걸쳐 입은 판초우의에 투두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정수리에 철길이 나도록 반합따까리에 머리를 박으면서도

  내 생각은 어릴적 추억 한 편을 더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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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집 소죽 끓이는 방

  얕은 봉창 아래 몸을 누이고

  처마 짚 대롱이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비몽사몽하던 나는

  벌써 3일째 앓아 누워 있었다.

  "정호럴 약을 히 믹이야 헐랑가베요..."

  탄식하듯 말씀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태우시던 곰방대를 놋쇠재떨이에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면서

  "작것이 저리 몸띵이가 약해서 워따 쓸랑고~"

  꿈결인가?

  귀옥이랑 같이 삐비를 찾아 뽑다가

  마침 벌을 보고는 고무신을 벗어 

  나꿔채듯 벌을 잡아 빙빙 돌려서 땅에 패대기를 치는데

  어쩐지 벌이 아니라 내가 어지럽다고 생각하며 들은 얘기였다.

  그날 저녁

  개다리소반에 흰쌀죽과 고깃국을 담아 들어오신 할머니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아가~ 언능 인나.. 밥먹자...

  할매가 괴기 찟어줄팅게 많이 먹어!"

  "할머니! 고기가 맛이 왜 이려?"

  "너 병 나수라고 하나부지가 약 쪼까 넣어서 그랴!~ 언능 먹어!

  몸이 아파서일까!

  평소 좋아하는 고깃국이

  냄새조차도 역하게 느껴지면서

  나는 먹는둥 마는둥 할머니 애만 태우다 숟가락을 놓았다.

  자리에 눕기 전 잠시 창호문을 열고 나가

  고개를 아래로 박고 토방마루 밑에 누렁이를 찾는데 보이지 않는다.

  "누렁아!"

  "누렁아!~"

  마당과 뒤안을 향해 누렁이를 찾아 부르는데

  갑자기 멍석들을 돌돌 말아놓은 헛간 옆 호두나무 아래로

  거무튀튀하게 뭔가를 태운 자국이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우 웩!~~

  컥..컥~~

  먹은 것을 도로 다 쏟아 내고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 토물이 범벅이 되어

  꺼이꺼이 울어대는 날 보고 할아버지는

  "저, 저, 저 눔!!

  저 눔을 어찌야 옳아!~

  하고 혀를 차며 역정을 내시고

  나는 원망어린 눈초리로 할아버지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밤에 마을 어귀 수복이네 집까지 마실 나갔다가

  어둑어둑한 초가 담장길을 더듬어 집으로 돌아올 때

  무섬증이 나 누렁이를 크게 부르면

  쏜살같이 내게 달려와 뛰어오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무서증을 덜어 주던 누렁이...

  그 누렁이를...

  그 날 이후부터 오랫동안

  난 할아버지와 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서울로 이사를 하고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사춘기를 거치고 새로운 친구들도 어울리게되자

  더 더욱 할아버지와 말을 할 기회가 없어졌다.

  평생을 시골에서 농사일과 함께 보내신 양반이

  복잡하고도 하릴없는 서울생활이 익숙해지실리 없었다.

  별 말씀이나 불평이 없으셔서 아버지는 몰랐을테지만

  누렁이 없는 나의 시골생활처럼

  적적한 서울생활을 하셨을 것이라고 나는 짐작했다.

  가끔 방 안에서 시조를 읇고

  동네 경로당에 가서 노인들 시조를 가르치거나

  놀이삼아 장기나, 화투를 즐기는 것이 할아버지 생활의 전부였는데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경로당에서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어이 윤선상! 머혀?  마장 받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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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판 앞에 앉은 채로 그렇게 조용히 가셨다.

  큰고모가 통곡을 하며 직접 염을 하셨고

  병원 영안실에 먼 친척들까지 와서 모두들 우는데도

  나는 왠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탈상을 하기 전 날 새벽

  영안실 한 쪽 귀퉁이에서 새우잠을 자다 깬 나는

  허기를 느껴 고모가 주시는 육개장에 밥을 말아 먹는데

  문득 그 육개장 고기덩어리가

  마치 어릴적 그 날

  할아버지가 약으로 잡아 주신 누렁이 맛이 나는 것 같아

  숟가락을 물고 하염없이 소리 죽여 울었다.

  평생을 걱정만 끼쳐드렸는데...

  돌아가시면서도 손주를 걱정하며 보신하라고 역정하시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을 뒤 재를 넘어 무거운 꼴지게를 지고

  지는 석양의 실루엣을 받으며 내려 오시는 할아버지 모습.

  겨울이면 골방에서

  시조를 나즈막히 부르시며 새끼 꼬시던 바로 그 모습...

  '상산~ 조~자룡을 네~ 혹시~ 이~름이나~~ 들었~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