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쌈허먼 쟈 이길 수 있냐?"

...........!

"이겨 못이겨??"

상태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수복이에게 연신 묻는다.
(저 아이는 나에게 왜이리 또 핍박을 주는가!!)
우리들보다 한 뼘정도 더 큰 상태와
대답을 안하고 우물쭈물하는 수복이의 상기된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나는 덩달아 어쩔줄 몰라 한다.

고만고만한 나이또래의 시골아이들..
설 여문 파릇한 보리 이삭을 잘라
불에 그슬려 비벼서 알맹이를 입에 털어넣어 껌처럼 씹어 먹으며
항상 놀이터처럼 놀던 소나무 동산에 올라
대꼬챙이로 달래를 캐며 사이좋게 놀던 우리들 모두는
싫증이 난 상태의 악의적인 놀이에 뒷덜미 나꿔채이듯 급작스레 빠져든다.

서울에서 갑자기 전학을 하고
할머니집이 있는 조그만 시골 촌동리에 와서 처음 상태를 봤던 그 때를 기억한다.
같은 4학년 친구라고 하지만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던 그 아이는
어른들처럼 마당에 널려있는 콩깍지를 도리깨로 후려치고 있었다.
손에 양쪽 귀를 눌려 잡혀 껑충 추켜올려진 것을 제외하고는
서울구경 한 번 하지못한 동네의 다른 아이들처럼
나를 신기해 하지도 않았고
절대 먼저 말을 건네는 법이 없었다. 

시골에 와서 겨우 동네아이들과 좀 어울릴만큼 시간이 지나 
아이들 하는대로 천지사방을 기웃거리듯 쫒아 다니며 
이제 좀 친해질만한 시기에 이 일은 벌어졌다.

"야 임마 이겨 못이겨???"
"너 못이기니까 말 못허지?"

강압적으로 말투가 바뀐 상태의 기세에 눌려 수복이는 단호히 말한다.

"아녀! 내가 이겨!!"

오호!~ 그려?? 
글먼... 너는 수복이 이기냐 어찌냐? 

고개를 돌려 내게 묻는 상태가 너무나 밉다.
물리적인 싸움이라고는 단 한 번도 해본적이 없이 샌님처럼 서울서 지내던 나는
비슷한 덩치라고는 하지만 들로 밭으로...
엄청난 활동량의 시골아이인 잰 걸음의 수복이를 이길 자신이 만무했다. 
아무 말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내게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수복이는 벌서 전투태세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상태가 수복이에게 말한다.

"야 수복아!~ 쟈가 너를 이기는갑다. 어디 함 붙어바라."
"머혀 이 빙신아!~"

갑자기 수복이가 주먹을 날려온다.

아이들 싸움은 대개
누군가 먼저 울거나 코피가 나면 판가름 난 것인데 
허둥지둥 휘두르는 내 주먹에 반해 
수복이의 주먹이 내 얼굴에 몇 대 적중하자
이내 나는 울음을 터트리며 상태에 대한 분노로 수복이 얼굴을 쥐어뜯으며 할퀴었다.
얼굴에 상흔을 입은 수복이가 울자
이 싸움은 어정쩡하게 끝났다.

남자들 싸움에 먼저 울고 비겁하게 할퀴기까지 했으니
당연 내가 진 싸움이긴 하지만
3대독자 수복이는
이 일 이후로 할아버지에게 엄청 혼나고나서
두번 다시 나를 이긴다고 말하거나 덤비는 법이 없었다. 
엄마에게 무슨 야단을 맞았는지
상태는 내게 도로 침묵을 지켰고
나는 아이들로부터 또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혼자가 되었다는 소외감보다는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수복이와의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싸움을 통한 괴리감
또 먼저 울음을 터트리고
남자들 싸움에서 금기시된 손톱을 사용했다는 수치심이
꽤 오랬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너랑 싸워도 이길수 있어!!'라고 하며
죽게 얻어 터지더라도 그 날 내가 싸운 상대가
수복이가 아닌 상태였어야 했다고 두고두고 생각되었다.
명예롭지 못한 그 날의 일은 아이들에게 곧 잊혀진 듯 보였지만
나의 시골 생활은  심지 닳은 호롱불 밝힌 골방처럼
칙칙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자리를 굳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