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초여름인가!~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데 바람이 선선하게 느껴진다.

저녁상을 일찍 물린 할아버지께선

광에서 돌돌말린 덕석들을 꺼내어 타작마당에 깔아놓고

보리타작을 도우러 태동에서 오신 발동기주인 아저씨는

마당 한 켠에 탱탱이(타작기)와 발동기를 적당한 간격으로 고정시키고 피댓줄을 건다.

"어르신! 저녁진지는 자셨는게라우!~"

오늘 놉으로 쓰기로한 귀옥이, 수복이 아버지

그리고 동네 아짐 두엇이 갈쿠리를 들고 마당으로 들어오며 할아버지께 인사한다.

이제 동리에 마악 들어온 전기

큰삼춘은 밤을 밝히려고 전선을 토방마루 제비집이 있는 처마 밖으로 뽑고

수건을 동여서 머리에 맨 할머니는 막걸리 안주를 준비하느라

정지에서 급히 겉절이를 만드신다.

"해도 없는디 시상에 저 많은 보릿단을 언제 다 훑을까라이?~"

"홀테허고 발동기를 당최 낮에는 쓸 새가 없이 빠쁭게로

저녁이라도 히야지 어찌것는가!"

어여와서 탁배기나 한사발썩 쭈욱 들이키게!

목젖을 꿀럭거리며 바가지에 담긴 막걸리 걸쭉하게 들이킨 태동아저씨는

양손에 퇴퇴하고 침을 뱉고는 발동기로 다가가 시동을 건다

푸쉭! 푸쉭~~푸쉬시~~~

좀처럼 시동이 걸리지 않는 발동기를 보면서

동네 아짐 한분이 태동아저씨께 타박을 한다

"저렇게 물짠놈을 가꼬댕김서 먼 일을 허신다요."

푸시식.. 스쿵.쿠앙.쿠앙..쾅...쾅..쾅.......

타작도 하기전에 아저씨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 쯤에야

발동기는 굉음을 내며 돌아간다

드럼통에 브러쉬처럼 쇠가 박혀 있는 탱탱이(탈곡기)가 함께 돌아가면서

보리단을 한웅큼씩 잡고  그 위에 아래위로 돌려가며 대면

보리낱알은 아래로 우수수 떨어지고

까스락은 스키장 제설기에서 나오는 눈처럼 흩날린다.

귀옥이와 나는 열심히 보리단을 날라다 탈곡기 옆에다 쌓아 주고

수복이와 상태는 제법 어른스럽게

탈곡이 다 된 보리단을 묶어 우리에게 건넨다.

머리에 수건을 동여 맨 동네 아짐들은

갈퀴로 검불을 걷어내면서 낱알을 골라 키질해 가마니에 담고

할아버지는 빵빵해진 가마니를 광에다 차곡차곡 쌓으신다.

다들 온 몸에 땀이 흥건해지고

까스락이  잔뜩 머리와 목덜미에 내려 앉아 아프게 찔려올 때쯤 

잠시 새참을 먹느라 발동기를 끄니

정적같은 고요가 찾아온다.

아까부터 보이지않던 귀옥이가 다가와

상태와 수복이를 놔두고 내 손을 슬며시 끌며 정지로 가더니

때 이르게 익은 산딸기를 따 즙을내어 사카린을 탄 쥬스를 건넨다.

"언넝 마셔! 쟈들 보문 안됭께.. 히히~"

까맣게 봄 햇살에 그슬리고 검불이 여기저기 뭍어 있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는 귀옥이...

피댓줄에 걸려 힘차게 도는 탱탱이처럼

내 심장은

발동기 굉음보다도 더 큰 소리를 내며 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