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반집을 졌다. 슬프다. 밖은 장마라 하루종일 비가 내리고 있고
내바둑은 그 빗줄기를 봤는지 하루종일 패배의 기록이 줄줄 쏟아지고 있다.
패배도 패배지만 바둑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포석에서부터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부딪히기보다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초반에 바둑을 망치지 않기위해서 피하는 수를 찾기
급급하다. 대국내내 바둑이 비실비실하는 것이다.
바둑에서 최악은 나의 곤마가 도망가다가 세력과 집이 없어지는 것보다
집이 부족해서 할 수 없이 상대방의 돌을 잡으러 가는데 그와중에 그나마 있는
집마저 다 깨어진다는 것이다.
"손대면 똑~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노래가 눈물을 머금고 생각이 난다.
이리로 몰면 이리로 가고 저리로 몰면 저리로 가다가
정말 손만 톡 대면 다 죽을 것만 같이 약한 내돌들이다.
사람들중에 스스로 고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하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까?
내가 이런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예전에는 분명
6급때는 2단인 지금 실력이 되면 스스로 고수라고 생각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또 남들이 고수라 여겨줄줄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급이 올라갈 수록, 단이 올라갈 수록 바둑에 자신이 없어진다.
하수는 고수가 많아보이고 고수는 하수가 많아보이는 걸까?
내 기준으로 볼때는 내 급수이하는 무조건 하수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누가 뭐라지 않아도 내바둑은 태생적으로 화초류이기는 하다.
그래도 그때는 강호 바둑과 상대적으로 비교해서 연약한 화초류라 분류되었지만
지금은 상대가 져주지 않으면 바둑의 판맛을 볼 수 없는 화초바둑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동급중에서도 강한 바둑이 있고 약한 바둑이 있기 마련이지만
승률에 관계없이 내 바둑은 동급에서도 약한 것 같다.
강한 바둑은 아니더라도 쉽게 지는 바둑이 되기는 싫었다
때로는 상대의 강한 펀치를 미끈미끈하게 피해가고 때로는 불리하더라도
상대를 끝까지 끈적끈적하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해조류는 되고 싶었다.
요즘은 초반부터 상대의 강한 펀치가 날아오면 쉽게 날라가기 마련이고
바둑 한판 끝까지 가더라도 상대가 져주지 않으면 이길수 없으니...
이건 바둑이 늘긴 늘었는데 바둑판 위에서는 점점 약해지니... 무슨조화인지...
혹시, 이러다가 약골에서 환골탈태해서 고수가 되는 것인가?하는
단 1%의 가능성도 없는 희망을 가지고 강호에서 화초류로 고수가 된 사람이
있나 대국실 이방 저방을 기웃거려봐도 초고수들이 있는 10초 바둑에서 강하게
빤치를 내뿜는 고수는 있어도 버드나뭇잎 떨어지듯이 하늘하늘 부드러운 바둑으로
이기는 바둑은 없었다.
참, 역설적이다. 기력이 올라갈 수록 바둑이 약해지다니...
비록 화초바둑이었지만, 예전에 그래도 곧잘 대마도 잡고 완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기도 했는데, 지금 내바둑에서는 그런 점은 찾을 수도 없고
괜히 힘자랑하는 상대에게 뻣대다 바둑판위의 거의 모든 돌을 죽여버리기나 한다.
나아지기 위해서는 화초류의 고수를 찾아 한 수 배우든지,
아니면 내스스로 화초류로 대성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바둑을 잘두고 싶은건, 바둑을 자유롭게 두고 싶기때문이다
맨날 두는 모자나 한칸뜀 이런 수들 말고, 고수들 처럼 착점하고 나면
한눈에도 좋아보이는 그런 수 말이다. 반상에서 소극적이지 않고 자유롭게..
취미인 바둑만큼은 좀 자유롭게 둬야하는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요당하거나 스스로 폭좁게 선택한 수를 두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