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자 나를 반긴 것은 노란 보리밭이었다.
도시에서 자란 탓에 보리밭은 나의 추억에 없고 게다가 조경용으로 심어논 것이지만 나를 과거로 돌려놓는데는 충분했다. 내게 가장 오래된 보리에 관한 기억은 어린시절 모두 외출하고 없는 텅빈집에서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먹고 냉장고 속 밥을 찾아 말아먹었는데... 그게 보리밥이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밥할때 섞어 사용하기 위해서 삶아놓은 보리였던 것이었다. 라면 국물 속의 보리알갱이는 미끈미끈해서 잘 씹히지도 않았다. 너무나 어설픈 보리에 관한 기억이지만 아직도 그날이 너무나 생생하고 냉장고 속 찬보리밥을 침묵으로 입에 넣던 나의 모습이 지금의 나의 모습 같기만 하다.
볼일이 있어서 간 것이지만, 잠시 시간이 있어서 예정에도 없던 여행이 시작되었다. 출장과 여행의 경계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2시간정도였지만 그건 분명 여행이었다. 40계단이라는 곳이 있다. 안성기와 박중훈이 열연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 나오기도 했다. 지금은 동상도 놓이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명소로 알고 있지만 40계단 위에 위치한 "40계단 기념관"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관광이라는 것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곳을 방문하는 낯선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하는 그 무엇... 아닐까?

그시절의 생활 용품들을 모아두었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나 어릴때도 있었는데...' 그 기억으로 문방구에서 구슬을 사서 지금도 6살짜리 애기와 집에서 구슬치기를 하는데... 비록 마당이 없는 아파트라 이불을 깔고하는 삼각구지만 말이다.
평범한 구슬들 속에 큰 왕구슬과 흰 사기구슬이 보인다. 다시금 보게 되는 구슬... 과거는 쉽게 없어지지는 않나보다..
대병(읽을때는 댓뼝이었는데..) 댓병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으시죠? 제가 어릴때는 저 병을 원형으로 본 적은 없고 상표는 제거되고 안에 꿀이 들어있었습니다. 꿀이 가득든 댓병이었죠. 시간이 많이 지나면 꿀이 굳기도 했는데...
저속에 들어 있는 꿀은 정말 보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저는 몇번 먹은 기억도 없는데 금방 바닥이 보이는 걸보면 아마 제가 잘때 어른들이 다 먹었나 봅니다.
그리고 두번째 방문한 곳은 인근에 있는 "부산근대사박물관"입니다. 이곳은 설명을 들으면 모르시는 분 없을 것입니다. 예전에 미문화원방화사건이라고 불리는 곳 있지 않습니까? 그곳입니다. 미문화원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그 문화원이 부산의 미문화원이었더군요. 그사건후 미국은 문화원을 철수해버렸지요.
그런데 가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미문화원으로 사용되기 이전의 용도 입니다. 그게 다름이 아니라... 역사책에서나 보던 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입니다."

그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부산지점이랍니다. 건물의 형태는 그시절 그대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고요. 근대사 박물관안에는 말 그대로 부산 근대사에 대한 자료들이 열거되어있었는데... 재현해놓은 것들이 있더군요. 지금도 볼 수 있는 빵..인데... 그빵이 일제시대때 들어온 것이더군요. 케익..롤케익..화과... 그리고 한복이 걸려있는 세탁소도 있었고...
아마 아래의 인단 사진을 보시면 기억 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저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보셨을 만한 것들인데... 제가 봐도 마음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과거가 고생의 과거일텐데..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저는 무슨 뇌의 오류인지.. 아련함과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내가 그시절을 그리워 하는 것 그것은 할아버지가 사시던 시대인 탓이고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탓이겠지요.. 짧은 여행은 그렇게 두군데를 둘러 보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