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난세의 간웅 조조
조조는 얼핏 보기에도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인상을 갖게 되는 기운을 몸에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얘기도 있다. 훗날 그가 위왕에 즉위했을 때, 흉노로부터의 사자를 인견하게 되었다.
조조는 키가 작아서 자기의 몸매에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풍모가 그럴싸한 부하를 골라서 그를 그의 대역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호위처럼 손에 칼을 쥐고 옥좌 뒤편에 서 있었다.
인견이 끝나고 사자가 돌아 간 뒤에, 그는 몰래 정보원을 시켜 사자에게 물어보도록 했다. “위왕의 인상이 어떻소이까?” 그때 사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위왕은 가히 덕망과 풍모를 갖춘 분이었소. 그러나 칼을 쥐고 옥좌 곁에 서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영웅입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종합해 보면, 조조는 과연 영웅의 요소와 간웅의 요소를 겸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비상한 인물이라는 말을 듣게 된 연유였다.
조조는 열두어 살 때부터 스물이 되던 때까지 실로 자유분방하였다. 병서에 미쳐 손자·오자병법을 수십번 독파 했는가하면, 시와 독서에도 미쳐보았고, 사냥과 무예, 싸움에 미치고, 속이고 노는 일에 미치고, 춤과 노래, 여자에도 미쳤다. 무엇이든지 미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열정과 힘이 있었다.
그의 내면을 뜨겁게 휘몰고 있는 정체모를 불꽃은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방탕이요, 타락이요, 행악으로 밖에 비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무릇 어떤 분야에서 최 고수가 되어 정상에 서고자 한다면 자신이 잘하는 그 분야에 미쳐야한다. 바둑, 골프, 피아노, 게임,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어린 시절 오로지 그것만 하루 종일 하며 미쳐 지내야한다.
그러나 혼자 미쳐서 하면 발전은 없다. 반드시 최고로 뛰어난 고수에게 가서 배워야한다.
그리고 그 분야의 고수들이 쓴 책은 모조리 사서 열 번이고 백번이고 독파해야한다.
끝없이 연구하며 책을 보고, 배우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고수가 되는 길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서 게임이든 뭐가 되었던지 혼자 그 분야에 미쳐 날뛰며 시간만 허비한다면 그것은 얼치기가 되는 지름길이다.
만약 지금 그렇게 사는 젊은이가 있다면 당장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바란다. 조조는 그렇게 미쳐 살다가 입신양명으로 조상과 가문을 빛내야 하겠다고 홀연 깨달은바가 있어 부모에게 말하여 돈을 써서 효렴이 되었다.
효렴이란 그 마을에서 가장 부모에게 효도하고, 윗 어른을 잘 공경하고 능력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를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추천하여 나라에 올리면 그 사람에게 벼슬을 내려주는 제도이다.
조조는 효렴을 돈을 주고 사서 낙양북부도위라는 벼슬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벼슬길에 들어서는 것은 권력을 얻고, 가난에서 벗어나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지름길이었다. 조조는 권력을 장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조는 자신이 맡은 벼슬인 낙양북부도위는 궁궐 외곽의 성문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지만 그 벼슬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오색으로 칠한 몽둥이를 성문 좌우 10여장에 벌려 세우고 포고령을 써서 벽에 붙이는 한편 수하관원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정한시각이외에 이문을 드나들면 오색몽둥이로 때려죽일 것이다.
그런데 몇 달 뒤 십상시의 하나로 당시 대단한 세도가 환관인 중상시 건석의 아재비 되는 자가 조카의 빽을 믿고, 그걸 어기고 한 밤중에 그 문을 지나갔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상시를 믿고 한 짓 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용서하지 않았다. “국법을 시행하는데 어찌 사가 있겠는가?” 조조는 그렇게 말하고 그 자리에서 때려죽이게 했다.
다음날 중상시 건석이 황제에게 조조를 참소 했지만 워낙 잘잘못이 뚜렷한 일이라 황제도 조조를 벌할 수 없었다. 그 일로 조조의 명성은 온 장안에 퍼지게 되었다.
사람이 처음 시작하는 직장이나 일자리에서 얻게 되는 명성은 그 사람이 그 직장을 떠나거나 그 일을 그만 둘 때까지 따라 다니게 되는데, 무릇 큰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얻게 되는 명성이나 소문이 잘 나도록 특별히 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