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osode 1 : 다들 유치하다구!!

숨이 턱에 닿는 느낌이 이건가.. 싶을 정도로 급히 계단을 올라가 도착한 소공동 롯데호텔.

뛰어들어가보니 정면에 나를 맞는 안내판 하나. 아니 두 개.

바둑리그 안내판과 나란히 붙어 있는 결혼식 안내판.

신랑 : 김태준. 신부 : 최은실.

허허... 이거였군. (은하 이름이 바로.. 최은실)

이날 소공동 롯데호텔에는 바둑리그와 함께 또 하나의 행사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 것.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식 시작시간 한 시. 바둑리그 시작시간은 두 시.

식 끝내놓고 계시하러 가면 시간은 딱 맞겠네..?! 가 아니잖아!!!  >.<

아.. 왠지 사람들의 첫인사가 예상이 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2층으로 올라가니.. 아니나 달라? 마주치는 사람마다 결혼 축하한다고 난리다. 흑..

왜 하필 오늘 신부 이름이 은하랑 같은거야.. 왜 하필 여기서.. 왜 하필 이름이.. 에이!! %@*%#$@

하여간 은하. 자의건 타의건.. 조용히 사는 건 영~ 남의 얘기인가?

일단 대국장을 확인하고나서 구경을 다니기로 한 은하. 대국장에 들어가니 조명팀의 때 아닌 환대.

왜? 신랑 김태준 -> 조명팀장님 이름이다. ㅎ

둘이 언제 그렇게 됐냐부터 시작하여.. 끝도 없이 이어지는..

처음에는 "결혼축하해~" 하고 놀리면.. "그게 아니라... 신부 이름이 어쩌구저쩌구.." 대답했었는데..

나중에는 포기상태.. "잘살겠습니다~ 축의금은 계좌로.."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 은하는 얼마나 놀림 & 축하를 받아야 하는 걸까.. ㅜㅜ

다들 유치하다구!!!

episode 2 : 딱따구리는 어디에..

오늘 대국 역시 첫 국은 3국 동시진행.

<제1국> 홍성지 5단(흑) vs 박정상 9단

<제2국> 조한승 9단(백) vs 이희성 7단

<제3국> 목진석 9단(흑) vs 이창호 9단

사범님들이 마실 녹차를 준비해 반상 옆에 놔두고..

유난히 찬물을 많이 찾는 이창호 사범님을 위해 여분의 차가운 녹차를 준비해 은하의 계시용 숫자판 뒤에 숨겨두었다.

조금 기다리니 늘 그렇듯.. 목진석 사범님이 1등으로 들어왔다.

은하를 발견하고 ‘히히~’ 장난가득한 눈으로 웃는 목진석 사범님.

은하 : 대국 전인데 긴장 안 해?

목사범님 : 괜찮아. ^^

은하 : 웅.. 대단해.. 파이팅!!

이윽고 자리에 앉은 목사범님. 조용히 눈을 감고 있다. 그의 습관.

일찍 들어와 반상 앞에 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정리한다.

좀 전의 장난스런 웃음은 어디가고 프로기사 목진석이 앉아있다.

그러고보니 예전 생각이 났다. 목사범님의 어릴 적 버릇.

그는 대국 중에 쉼 없이 윗입술을 잡아당기는 버릇이 있었다.

난 그 모습이 딱따구리 같아서 놀리곤 했었는데.. 그 후로도 그 버릇은 고치지 않았었는데..

어른이 되어 만난 목사범님은.. 이제 대국 중에 윗입술을 잡아당기지 않았다.

언제 고친거지? 예전의 딱따구리가 살짝 보고싶어졌다. ^^

episode 3 : 불이야!!

은하가 맡은 대국은 제3국 목진석 사범님과 이창호 사범님의 대국이다.

항상 은하가 맡은 대국은 중계용 대국이라 가운데 자리에서 시작하는데 오늘은 활짝 열린 문 옆 잴 끝자리이다.

뜨거운 조명 한 가운데를 피하게 해준 배려일까? 무튼 자리 좋고~ ^^

바로 옆 큰 문까지 열려 있으니 오늘 계시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하나.. 했는데..

어랏! 갑자기 들어온 촬영 스텝들이 문을 닫아야 한단다.

큰 문을 닫는데.. 이때였다.

문 밑에 어지럽게 깔려있던 전선에서 파바박! 불꽃이 튀며 대국장 위의 조명이 다 꺼져버렸다.

어느새 들어와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던 선수들이 깜짝 놀라 이쪽을 쳐다본다.

촬영팀도 놀라고 선수들도 놀라고.. 불꽃이 은하 바로 옆에까지 튀어.. 은하.. 더 놀랐다.

목사범님도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무슨일이냐는 듯 은하를 쳐다보는 목사범님.

은하 : 괜찮아. 신기하게 우리 테이블 조명만 살아있네? 그냥 눈감고 있어. ^^

목사범님 : 끄덕끄덕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눈을 감는 목사범님.

신기하게도 세 개의 테이블 조명 중 우리 테이블 조명만 살아있다.

그리고 이창호 사범님.

평소보다 눈이 조금 커졌다.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이곳 저곳 두리번 거리다 은하와 눈이 마주쳤다.

왠지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이런 표현 써도.. 괜찮을까? ^^)

은하 : ^^ (씨익) 괜찮아요 오빠. 문 닫을래다 선이 문틈에 끼었나봐요.

이창호사범님 : 아..

은하 : 오늘은 찬물도 많이 준비했으니까 걱정말구 파이팅!

이창호사범님 : 아.. (꾸벅)

계시용 숫자판 뒤의 찬물을 흔들어보이며 장난스레 말했지만.. 실은 은하도 많이 놀랐다.

바로 옆에서 파바박! 하는 불꽃이 튀었으니까..

그래도 대국 전인데.. 선수들을 안심시켜야 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했다.

이창호 사범님의 대답은 오로지.. 예.. 도 아니고.. 어.. 도 아닌 ‘아..’

사석에서와는 조금 다른.. 긴장돼보이는 모습.

2시 30분.

다행히 조명도 다 고쳤고.. 이제 시작인가?

할 때마다 늘 떨리는 그 말.

대국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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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