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한수 아래로 보는듯한 굴초님의 멸시와  잊지못할
파고다 공원에서의 소라네 님과의 오프라인 대국에서의 처참한 3연패로 인하여
와신상담(臥薪嘗膽)한 바, 뭐 쓸개즙까진 씹지 않았어도
디립다 덤비지 않고 하루 한판으로 내 마음을 다스리니 ,, 그결과는
놀랍게도 6당에 턱걸이 하게 되었다.

근데 그게 무늬만 6당이지 실력은 안되어 강단의 900점대와 승단의 100점대에서
계속 왔다리 갔다리 한게 벌써 2달째다.
신기하게도 그 범주를 벗어 나지도 않고 특별히 그 밑으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물론 실력이 없으니 그런건 너무도 당연하고 욕심부려서 될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향을 지향하는 것은 어쩔수 없던가 ?

그건 나 스스로도 의문이지만 어쨌든,,  어제의 한 판은
부끄럽기 짝이 없어 키보드를 두드릴 수 밖에 없음을 ,, ,

했님이 짱하게 비치는 오후   생각밖에
일찍 집에 들어온 난 쌈박한 기분으로 오로기원에 들어갔다.

080점수로 파란판을 뒤적이다 보니 대기자가 한군데 있었다.
습관대로 그의 점수가 눈에 띄는 순간 앗 ! 하고 잽싸게 방나오기를 크릭했다.
820점에 88승 40패의 화려한 전적이 날 놀래킨 것이다. 만일
그가 한 수 하자고 하면 난 죽음이다. 그렇다고 거절을 누르고 빠져 나오기엔
너무 비참한 것이 아닌가.

새가슴이 마구 떨리고 좀 안정하느라 시간이 좀 흘렀다.
여기 조금  저기 조금 기웃기웃하다 적당한 상대 점수를 찾지 못하고
430점대와 맞닥뜨렸다. 자신은 없었지만 어찌하랴
항상 쉬운 상대하고만 둘순 없지 않은가 ?

 
백을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밀리고 있었다. 그나마
싸움으로 가야 되는데 내 뜻대로 되진 않고 땅따먹기로만 흘러 갔다.
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쭉 밀려버렸다. 왜 바둑을 두다보면
그 감이란게 있잖은가   이 판이 대충 이렇게 될거 같은게 ,,
형세분석을 보니 25집은 차이가 나고 있었다.  당연히 진다고 생각하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 고 여기저기 쑤셔댔다.

여기서 쑤신다는 것은 조제비님의 ‘흔들기’와는 다른 개념이다.
흔들기는 상황의 반전을 꾀하거나 상대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책략의 하나로
전법의 일종이지만 쑤시는 건 정수로는 안 먹히고 완전 불리해 패색이 짙어갈 때
꽁수 같은 걸로 한번 ‘ 우찌 해볼까 ’ 하는 것이다.
상대는 유리하다는 걸 알기에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건너가지 않는 이창호마냥
안전빵으로만 응수 했다. 난감했다.
이제 바둑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던질까 말까
한참을 망서리다  ,, 비겁하게 생각해도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해서 이길 가망이 없으므로 개기고 싶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마지막 노림수는 이제 한곳 뿐이었다. 우하변 대마를 슬슬노리며
상대방이 눈치 못채게 (싸이버 바둑판엔 상대방의 눈을 볼수 없어 ,, 알순 없지만)
사전 공작을 했다. 만약 그 친구가 그 수를 안 받고 두눈 내고 살아 버리면
바로 돌을 던지겠다고 생각하며 ,, 근데 이상하게
내 수를 다 받아주는 것 아닌가. 난 회심의 미소를 뛰우며
급소에 돌을 힘차게 찔러 넣었다. 마치 K-1에서 추성훈의 일격처럼

그 한방에 비틀거리며 용을 썼지만  대마가 죽자 항서를 썼다.
난 다시 두자고 할까봐 “ 잘두었습니다 ” 를 찍어 넣듯이 하고 잽싸게 빠져나왔다.

그러니까 바둑은 지고 결과만 이긴 부끄러운 일전이었지만 ,,

난 조금 지나면 그런 것은 다 잊고
내 점수가 올라간 것만 생각하겠지,, 그리고 (내가 잘해) 이긴 것만 기억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