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일은 농사일 바쁘셔도 꼭 교회에 나오셔야 하는 날입니다.”
지난주일 예배에서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말하셨다.
“다음 주일처럼 부처님 오신 날과 성령강림주일이 겹치는 날 교회 안 오시면, 이 양반 혹 절에 가셨나 오해받으실 수 있습니다.”
예배를 함께 하는 성도들이 모두 웃었고 유튜브로 예배드리는 우리도 따라 미소했다.
어제, 5월 24일은 묘한 날이었다.
부처님오신 날과 성령강림절이 같은 날인 것처럼 겹쳐 있었다.
절간에는 주렁주렁 연등이 걸리고, 교회에는 성령을 기다리는 기도가 가득한 날, 다르게 보이지만 사람마다의 마음속 간절함은 같은 무게일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인 23일, 우리는 제천으로 떠났다.
아내와 아들, 며느리, 두 손자. 우리 여섯 식구의 나들이는 여행이라기보다는 서울의 제법 이름 알려진 대학에서의 교수 질을 접고 오십이 넘어 제천의 시골에서 교회를 개척하며 또 다른 인생을 꾸리고 있는 후배가 인도하는 교회의 출석예배가 큰 목적이었다.
“할아버지, 제천 가면 강 있지요?”
큰손자가 묻는다.
“있지. 아주 맑은 물도 있고, 산도 있고, 제천은 바람도 깨끗하단다.”
그러자 작은손자가 재빨리 끼어든다.
“오늘도 물수제비 할 수 있어요?”
손자들에게 제천 여행은 예배가 아니라 물놀이가 목적이다.
어른들과 달리 손자들은 그저 돌멩이 하나면 여행의 즐거움을 모두 얻는다.
아내는 뒷자리에서 간식을 꺼내 손주들에게 나눠주고 며느리는 준비해온 물티슈를 챙겨 손자들의 손을 닦아주고 아들은 운전대를 잡은 채 연신 내비게이션을 확인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가족이란 결국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같은 차를 타고 가는 긴 여행을 하라고 하나님이 묶어주신 모둠이 아닐까.
빨리 가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조용한 사람도 있고, 졸린 사람도, 떠들썩한 사람도 있지만 결국은 함께 가는 것. 그것이 가족의 여행 아닐까?
숙소로 예약한 북단양리조트에 도착한 시각은 세 시를 조금 넘긴 오후.
지난 해 추석, 역시 제천교회에서의 예배를 위해 하루 전 토요일에 와서 묵었던 그 리조트였고 물놀이로 익숙한 장소인 탓인지 아이들은 이미 신이 나 뛰어다니고 있었다.
“할아버지! 돌 던져도 돼요?”
“납작한 돌 찾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물가에 쪼그려 앉았다.
바닥에 널린 돌들은 제각각이었다. 동그란 돌, 까칠한 돌, 가벼운 돌.
그중에서도 물수제비에 알맞은 돌을 찾아야 한다.
“이거다!”
큰손자가 지 손바닥 만 한 얇은 조갯돌을 찾아들고 보물이라도 찾은 듯 외쳤다.
이렇게 각자 물수제비뜨기 좋은 몇 개씩의 돌을 찾은 후 나는 손주들에게 돌 던지는 법을 다시 가르쳤다.
“이렇게 손목을 낮게 해서, 물을 스치듯 던지는 거야.”
내가 먼저 시범 투구를 한다. 퉁, 퉁, 퉁—
돌멩이가 수면 위를 튀어나간다.
아이들이 동시에 환호했다.
“우와아아!”
그 웃음소리가 물결 위를 날아갔다.
아내와 며느리는 멀리 벤치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었다.
문득 그 모습이 참 오래된 풍경처럼 느껴졌다.
젊은 날 우리는 바빴고, 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었고, 신혼부터 주말, 아니 격 주말 부부로 지나며 삶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왔다. 그런데 어느새 그 아이가 아버지가 되고, 나는 손주와 함께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왔다. 물 위를 튀다 사라지는 돌멩이처럼 그렇게 우리의 젊음은 지나왔고 스쳐지나온 자리에 또 다른 예쁜 자취가 남았다.
저녁준비는 아들과 며느리의 몫이다.
바비큐그릴에 삼겹살을 굽고 닭 꼬치를 굽고 캠핑장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몇 가지의 충청도 나물은 투박했지만 정갈했고 된장국 냄새는 구수했다.
손주들은 연신 웃고 장난을 치고 , 집사람과 며느리는 아이들 앞접시에 반찬을 덜어주느라 분주했다.
아들은 말없이 고기를 굽다가 문득 내게 물었다.
“아버지, 좋으시죠?”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좋았다. 참 좋았다. 하지만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젊은 날의 여행과 지금의 여행은 다르다.
지금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여행이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참 좋다.”
아내가 조용히 덧붙였다.
“이렇게 같이 다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순간 식탁이 조용해졌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함께 여행을 하고 함께 밥 먹는 일이 절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건강해야 하고, 시간이 주어져야 하고, 마음이 이어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저녁은 그 어떤 산해진미보다 따뜻했다.
후배가 목회하는 교회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알 수 있었다.
아, 이 교회는 사람 냄새가 나는구나.
도회지의 큰 교회들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늙어가는, 칠십의 중간을 지나는 내가 오히려 젊게 느껴지는, 많이 나이든 성도들의 숨결과 눈물과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후배는 우리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마주 잡은 그의 두 손은 거칠었다.
심방과 기도와 밭일과 눈물까지 모두 스며 있는 거칠지만 따뜻한 손이었다.
우리는 마주보고 미소했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늘 그렇듯이
마주보는 눈빛과 미소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예배가 시작되었다.
찬양은 크지 않았지만 진심이었다.
성도들의 거칠고 투박한 찬양에는 삶이 묻어 있었다.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누군가는 동네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누군가는 병든 가족을 돌보며 살아간다.
그러나 예배당에 모여 앉으면 모두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배 목사의 설교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따뜻했다.
“성령은 큰 바람처럼만 오시지 않습니다. 때로는 가족이 함께 웃는 식탁에도 오시고, 지친 사람의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로도 오십니다.”
나이가 들면 알게 된다. 신앙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는 것을.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함께 있어주는 시간,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기다림 속에 그 분이 있다는 것을.
여행의 끝은 늘 아쉽다.
돌아오는 길, 손주들은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아내는 창밖을 바라보며 아들과 며느리에게 조용히 말했다.
“다음에도 또 같이 오자.”
다음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젊을 때는 다음을 너무 쉽게 말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다음’이라는 약속이 얼마나 귀한지 알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나는 다시 지난 주 목사님의 농담을 떠올렸다.
“오늘 교회 안 오시면 절에 가셨나 오해받습니다.”
교인들도 웃었고 우리도 웃었지만 그 농담 속에는 따뜻함이 있었다.
종교보다 먼저 사람을 품는 마음. 정죄보다 웃음으로 다가가는 태도.
어쩌면 성령은 그런 곳에 머무는 지도 모른다.
웃음이 있는 자리, 가족이 함께 있는 자리, 세대를 이어 사랑이 흐르는 자리.
이번의 제천 여행도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 남을 여행이었다.
후배가 목회하는 교회에서 드린 예배, 북단양리조트의 물수제비, 손주들의 웃음소리, 아내의 따뜻한 눈빛. 그 모든 순간이 내 마음속에 조용한 성령의 바람처럼 머물고 있다.
나는 희망한다.
세월이 많이 흘러 손주들이 어른이 되고 할아버지 되어 자신의 손주들과 여행을 떠날 때에도, 오늘의 물수제비 하나쯤은 손주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 오래 튀어가고 있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