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포님 뿐 아니라, 모두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저는 솔직히 제 자식들이 2세를 낳
지 않았으면 할 때가 많습니다.왜냐하면 이 전에 코로나도 그렇고, 현재의 지구 온난화 속
도도 그렇고, 몇 십년 후의 지구 미래가 불안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혹자들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 하실지 모르겠으나 저는 그렇습니다.
영포님 손주 사랑을 보면 또 그런 마음이 사라집니다.^^.
1970년 대, 예비군훈련에 가면 정관 수술할 사람 손 들라 했습니다. 훈련도 면제
해 주겠다 했습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했고 둘도 많다며 산아제한을 국가차원
에서 장려했었지요.
예비군훈련을 할 때마다 망설였습니다.
결혼 전이지만 진지하게 정관수술을 받아야 하나 고심했습니다.
젊었을 적의 저는 우리 삶의 가치를 행복과 불행의 양으로 가늠하곤 했습니다.
불행의 양이 행복의 양보다 많다면, 적자의 인생이고 그런 삶은 사는 게 오히려
마이너스인 삶이라고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행복의 양보다는 불행의 양이 많아 보였고 내 아이들에게
도 같은 삶을 물려줄 바에는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하더라도 아기는 낳지 않는 게
옳은 것 아닌가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살아보니 아니었습니다.
불행한 시간들조차도 우리 삶에 주는 의미는 너무 소중하고 큰 것이었습니다.
물론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들 보다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손자들이 살아야 할 시간은
훨씬 더 힘들고 혹독한 시간들일 수 있다는 염려, 합니다.
하지만 힘든 시간이 행복한 시간보다 훨씬 많음에도 문득 문득 행복한 시간들이
긴 터널과 같이 어려운 시간들을 모두 잊게 할 만큼 달콤하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
도 손자들도 느끼며 산다면 그 삶은 가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