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공생애를 마치시던 나이, 서른 셋.
나의 삶은 큰 고비를 맞고 있었습니다.
무릎의 관절이 삭고 있는 줄도 모르고 테니스에 열심이었고
어느 날 높이 오십 센티도 안 되는 높이에서 뛰어내리던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습니다.
무릎의 관절에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엑스레이를 찍고 CT를 촬영하고
마취도 없는 상태에서 무릎관절의 위와 아래쪽의 뼈를 채취하여 조직검사를 하고…….
암은 아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암으로 발전하기 직전의 상태,
당시 의사선생님의 표현으로는 음성이라 했습니다.
악성이 암이고 양성이 단순한 종양이라면 음성의 종양은 그 중간쯤의 어디라는 것이었습니다.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
관절을 살리기 위해서는 재발의 가능성이 너무 높은 위험한 수술이 되고
재발하여 암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으려면 무릎의 관절을 제거하고
왼쪽 무릎의 위와 아래의 뼈를 관절 없이 이어버리는 수술을 하여
뻗정다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뻗정다리로 만드는 수술에 동의했습니다.
결혼 삼년 차의 집사람도 동의했습니다.
재발하여 암으로 발전되는 상황보다는 살아가는데 많이 불편하겠지만
이제 두 돌이 지난 큰 아이와 아직도 지 엄마의 뱃속에 있는 둘째를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수술의 날짜가 잡히고 하루 전의 밤, 나는 집사람이 보는 앞에서 십여 미터를 걸었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걸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정상적으로 걷는 마지막의 모습일수도 있다는 생각이었고
그 모습을 집사람에게 기억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둘이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더라도 열심히 살겠노라고, 착하게 살겠노라 기도했습니다.
수술이 예정된 날 아침, 수술을 집도하실 과정선생님이 집사람과 나를 불렀습니다.
아직도 살아가야 할 날이 너무 많은 나이입니다.
무릎의 관절이 없는 뻗정다리로는 너무 불편할 것입니다.
무릎의 관절을 살리고 재발의 위험이 없게 하기 위해서는
무릎의 위와 아래쪽 뼈의 조직에 음성의 세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수술을 해야 하는데
재발없는 수술이 될 거라는 확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아침 주치의 회의에서
무릎의 관절을 살리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수술 후 육 개월에 한 번씩, 적어도 삼년은 검사를 해야 합니다.
만의 하나 재발할 경우 다시 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녹아버린 뼈는 모두 긁어내고 고관절의 위에 있는 없어도 되는 뼈의 조각과
부족한 부분은 소의 뼈를 넣어 채우는 수술을 할 것이고 시간은 세 시간을 예상합니다.
당시 환갑이 넘어 보이시던 그 과장님은 나의 예수님이셨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재활의 과정을 거쳐 목발을 짚고 출근을 했습니다.
오년을 주기로 본청과 지방청을 순환 근무하던 때라 목발을 짚고 지방청에 첫 출근을 했습니다.
당시의 청장님이 언젠가 말씀드렸던
당신의 봉급에서 남은 부분을 모두 삼성전자에 묻어두시고 퇴임하실 때는
백배도 넘는 수익을 남기신 그 분이었습니다.
목발을 짚고 첫 출근을 하는 나를 바라보시고
집사람은 고향에서 부모님을 모셔야 해서 혼자서 하숙생활을 해야 한다는 나의 사정을 들으신 청장님은 두 말없이 당신의 차와 기사를 내 주셨습니다.
나는 청장님의 차로 출퇴근을 하고 청장님은 택시로 출퇴근을 하는 기간은 내가 목발을 짚지 않아도 되는 삼 개월이 이어졌습니다.
그 분도 나의 예수님이셨습니다.
지금도 일 년에 한번쯤은 집사람과 같이 청장님을 찾아뵙습니다.
전남 신안의 바닷가에, 갯벌을 낀 만평이 넘는 대지에 오십 평이 넘는 너른 집을 짓고 사모님과 두 분이 사시는 청장님은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시고 돌아오는 길에는 당신의 집과 잇닿아 있는 갯벌에 쳐 놓은 덤장에서 잡아 말려놓은 생선을 한보따리씩 안겨주십니다.
고맙습니다,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받아들며 웃습니다. 마주 보면서…….
망 구십의 연세에도 넉넉한 웃음 잃지 않으시는 청장님은 지금도 여전히 나의 예수님 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