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조그만 면소재지 국민학교를 다닐 때

운학리에 사는 진기는

가끔 점심시간이면 밥을 먹지 않고 슬그머니 빠져나가

운동장에서 혼자 공을 차고는

수돗가에서 물을 꾸역꾸역 들이켰다.

이따금 밥을 싸오지 못할 정도의 가정형편임을 나중에 알고서

과연 물이 포만감을 줄지 궁금했었는데,

어느날 도시락을 책보에 넣는 것을 깜박한 나는

그 날 점심 때 진기와 함께 공을 차고는

수도꼭지에 고개를 반쯤 틀고 물을 몽땅 들이켰다.

출렁인다고 느껴지는 배를 움켜잡으며

함께 마주 보고 웃고 있었는데

들과 언덕길 시오리를 걸어오신 할머니가 도시락을 내미신다.

물로 불룩찬 배에 점심을 나눠먹은 그날 이후

나는 진기가 벤또를 가져오지 않은 날은

둘이 꼭 물과 함께 나눠먹었다.

세월이 흘러,,,

우연히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된 진기는

그 때 일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의 잦은 허기를 풀어준 것은 내가 나누어 준 도시락이 아니라

운동장 모퉁이에 있는

콘크리트 세면대 수도꼭지에 입에 물려 고개를 꺽을 때

마주보이는 내 얼굴이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