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짝을 나서니

따듯한 6월의 햇살이 낮게 드리운 양떼구름 사이사이로 온 들판을 비춘다

보라색 감자꽃이 넘실대는 밭이랑이마다

무당벌레가 날아들어 감자잎에 앉아 잠시 쉬고는 또 날아간다.

주전자를 흔들며 촐랑촐랑 뛰듯이 걷다

마을 어귀 동수형네집 탱자나무 울타리를 지날 때

가시덤불 깊숙히 보석처럼 박혀있는 설익은 탱자를 따보려고

조심스레 고사리손을 뻗어서 탱자를 쥐려하다

가시만큼이나 무섭게 짖어대는 동수형네 복술이 때문에

황급히 팔을 빼다 가시에 긁혔다.

팔에 난 생채기를 입으로 빨며 태동 신작로에 다다르니

삼륜차 하나가 비포장 도로에 먼지를 날리며 지나간다.

양조장은 면사무소 가는 길 양철로 지어진 큰 곡물창고 옆에 있다.

“아이고야 이게 뉘기여!.. 뱅고지떡 손지 아녀?”

“할배 할매는 잘 기시쟈?”

"고놈 즈그아버지 타기서 똘방지게 생깄네!"

사다리같은 계단에 올라 커다란 주조통 안을

바가지가 달린 길다란 막대를 휘휘 젓던 아저씨가

나를 아는척 하시더니

한 통을 퍼서 주전자에 막걸리를 부어 주신다.

"솔찬히 무건깨 잘 들고 가그라이!~".

(오메!~ 정말 무겁다!)

주전자를 오른손으로 들다가 왼손으로 바꿔 들고 다시 두손으로 들면서

주전자의 무게때문에 나는 오던 길을 버리고

비록 경사는 많지만 언덕 꼭대기 마을정자가 있는 방향으로 지름길을 택했다.

귀밑머리쪽으로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데

시원한 바람이 솔잎사이로 스쳐지나는 소리를 들으며

버섯, 고사리 뒤지던 소나무 구릉지를 지나니

드넓은 언덕받이에 천수답이 펼쳐져 있다.

밭자락 끝에 걸터앉아 잠시 쉬면서

걸을 때마다 주전자 주둥이 쪽으로 찔금찔금 흘리던 막걸리가 아까워

목도 마르고 어차피 흘릴바에야 조금 마시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여

뚜껑에 조금 따라 마신다.

(크으으으읔~~~)

달달한듯 쓴 막걸리 맛이 익숙지 않아 카~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어른들은 이딴걸 왜 마시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일어나 걷는다.

오솔길가 풀숲에서 산개구리 한마리가 튀어나온다.

얼룩덜룩한 등짝에 넓적다리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녀석은

봄이면 중산리 방죽에서

밤새 울어제끼던 논개구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크다.

상태가 봤더라면 허리아래를 작신 분질러 껍닥을 벗기고 구웠을텐데…

잡아다 삶아서 닭장에 던져넣으면 닭들이 달려와 신나게 쪼을텐데..

한참을 개구리를 바라보다 다시 길을 나선다.

언덕 끝에서 온동리가 다 보이는 모정에 다다르니 온 몸이 뻐근하다.

왠지 한모금 더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늘이 서늘한 사각정자에 잠시 올라 한 뚜껑 마신다.

아까보다는 쓴 맛보다 달큼한 맛이 한층 더 느껴지며 어쩐지 기분이 좋다.

(조금 더 마셔볼까?)

흐르는 땀을 식히느라 잠시 정자마루에 누워서 천정을 보니

언젠가 정자의 처마끝을

상태와 수복이가 후라쉬를 들고 참새를 뒤지던 생각이 났다.

(귀옥이는 지금 뭘하고 있을까?)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던지....

함께 산딸기를 따면서

내가 쥔 매끄럼하고 예쁘게 생긴 것은 뱀딸기니까 먹으면 안된다고

땡그란 눈을 더 크게 뜨고 소리치듯 말하는

꿈 속의 귀옥이 목소리에 깨어 보니…

“정호야아!~~~"

"아 정호야아!~~~~

하고 애타게 나를 찾는 할머니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이런!~)

중천에 있던 해가 어느덧 지난 가을 어름따던 뒷산으로 기울려 한다.

부랴부랴 주전자를 챙겨들고 동리쪽으로 내려가면서

“할무니!~~~~ 나 여깄어어~~

할아버지를 뒤에 두시고 할머니가 힘겹게 잰걸음으로 올라오시며 나를 보더니

“아이고 아가!~ 워디있다 오능겨!~~ 할무니 애간장이 다 타겄구만~~~…”

…………………

눈물을 글썽이는 할머니를 뵈니 할말을 잊는다.

“이런 작것!!"

"해넘어 가겄는디 어디서 멋허니라고 인자사 오고 자빠졌냐 이눔아”!.

뛰따라 오시던 할아버지가 역정을 내신다

할아버지 야단에 금방 눈물이 그렁한 나를 보며 할머니는 

“아그한티 너무 그라지 말어라우”.

“어여 가자 아가” 하신다.

(후.....!) 뜻 모를 한숨을 내 쉬며

할아버지는 달력 찢은 습자지종이에 괴춤에서 꺼낸 담배가루를 돌돌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