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부터 바둑을 둬 온 4명의 친구들이 있다.
한 놈은 바다이야기 속으로 가오리 잡으러 갔고 , 하난 망치하나
들고 제주도의 공사장에 일하러 갔고 ,, 또 한명은 아시다시피
3년전 미국으로 이민 갔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가오리 잡으러 간 친구놈 얘기를 해보고 싶다.
세개의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마을, 시시각각 변하는 저녁노을 빛이 있는 동네
마구생이 넘어 한없이 펼쳐진 들판, 밤하늘에 뚜렷이 볼 수 있는 하이얀 별들과
양쪽에 플라타나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신작로, 구불거리는 논뚝길을 따라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좋아 난 그곳 시골고교를 계속 다니고 싶었으나
2학년 2학기가 시작하자 어느날 밤 불이나 그학교 교사가 다 타버리는 바람에
놀란 아버님이 나의 의견도 묻지 않은체 전학할 학교를 정했으니 당장 올라 오라는
것이었다. 무장 해제하고 (아무것도 가지고 갈 것이 없으니) 기차에 올라 탓다.
이상하게도 동네의 산 3개를 지날때 쯤 눈물이 핑 돌았다.
가족과 부모가 있는 곳으로 가는데 왜 살던 고향을 떠날때 맘속에 눈물이 날까 !
서울 변두리,, 달동네와
판잣집이 둘러싸고 있는 학교 , 불량 학생들과 노는 애들이 유난히 많은
3류 학교에 전학와 처음 만난 옆짝궁이 바로 그 친구였다. 그런데
이것도 우연일까,, 바둑이 나와 같은 급의 호적수 였다. 수업시간이나 노는시간 할것 없이
우린 바둑을 두었다. 물론 종이 바둑이다. 아예 빈노트 한권에
줄을 19개씩 그려서 연필로 바둑을 두었다. 두다가 선생님에게 들키기도 했는데
3류 학교라 그런지 별로 뭐라 그러지도 않았다. 공부 잘하는 애 서넛 빼고는
수업시간엔 거의 졸거나 자고 있었으니까,,
우린 졸업 후 어찌어찌 해서 후진 대학이나마 들어갈 수 있었다. 뭐 그때 대학생들
하는 일이 공부는 일단 제껴두고 당구장이나 가고 미팅이나 관심 있었지 ,,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준비하고 그런것엔 관심이 없었었다. 오죽했으면 먹고 대학생
이란 말이 있었겠는가 (힘들게 열심히 공부 하신분들께는 죄송~)
어떤 애는 향토장학금(농촌에서 소를 팔고 논밭 일부를 팔아 부쳐주는 등록금등 학비)을
받아 유흥비로 다 써버려 학교도 쉬고 어슬렁거리기도 하였다.
기원에 가면 돈이 드니까 주로 친구집에 몰려 다니며 바둑을 두었다. 고스톱도 그때
배웠다. 우리집 가풍은 술 담배 및 도박은 금지니까 주로 그 친구집에서 놀았다.
그의 집에 가면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많이 헷갈렸었다. 11남매나 되었으니까
한번은 공사판에 간 친구와 셋이서 논쟁(사회 전반에 관하여)이 시작 되었는데 눈에
힘을 주고 자기 주장만 하다 밤을 꼬박 세우기도 햇다. 뭐 지금 생각해보니
별것도 아닌 일이었는데 그땐 다들 정력적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 , 군대가고 , 취직하고 , 결혼하고 개인사정에 바쁘나 보니
한 동안 뜸했지만 제 버릇(바둑) 개 주랴 !
그 친구 비디오방 차린 후 아예 근처 00기원에서 방내기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그 이후엔 나와 내기바둑을 두었다. 대신 돈을 딴사람이 저녁을 내고 ,,
그 친구는 그 기원에선 1급끼리 셕점을 잡고 내기바둑을 둔다고 했다. 기원 급수는
천차만별이라고 ,,자기는 가장 잘두는 사범에게 4점으로 두어 이기는 편이라고
침을 튀기며 얘기하던 친구
한동안 못 보다가 얼마전 어떤일로 그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근데
그 장소가 문제 였다. 날 어느 건물 지하로 안내하는데 거긴 요즘 영업이 금지된
' 바다이야기 ' 였다. 종업원 인듯한 젊은이가 아래위를 흩어보고 샷터문을 열어주었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실내에는 았싸 가오리와 바다 물고기들이 전자음과 함께 정신없이
돌고 있었다. 절대 누구에게도 , 특히 가족에겐 절대 비밀이란 말과 함께,, ,
난 그런곳에도 처음이거니와 묘한 분위기에 ,,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마음이 뭔지 모르게 착잡했다.
그 친구와 난 가는 길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랐지만 한가지는 같았다. 바로
바둑을 둔다는 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