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면 가끔 2 - 3일씩 학교를 빠지곤 했지만

이렇게 일주일 이상 등교하지 않은 적이 없는 진기였다.

그 날 담임선생님은

진기네 집을 방문하기 위해서 방과 후 나에게 남으라 하셨다.

진기네는 중산리 뒷산 언덕 그루터기에 화전을 일구며 산다.

그 옛날

후즐구레한 차림의 진기 아버지가 지게에 궤를 하나 지고

달랑 보따리 하나 가슴에 안은 진기 어머니 팔을 끌고 처음 중산리로 왔을 때

배 속에 아이를 품은 아낙과

말투 어눌한 낯선 사내를

동네사람들은 탐탁치 않은 눈으로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궂은 일을 마다 않고 동네 일에 열심히 나서서 도왔고

농번기 일손이 달려 저마다 놉을 얻기 어려울 때

이 부부는 훌륭한 삯일꾼이 되었으며

보리쌀 한줌이나 씨강냉이로 헐하게 품삯을 받아도

항상 감사해하는 얼굴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

그래서 산모퉁이에 움막을 짓고 비를 피하던 진기네에게

마을사람들은 무당 떠난 쓰러져가는 서낭당자리를

이들의 집으로 기꺼이 내 주었다.

"아직 멀었니?"

학교 앞 면 삼거리에서 태동을 지나 중산리까지 비포장을 걷고

또 뒷산을 바라고 낮은 언덕을 몇 개 지나시던 선생님이

숨을 헐떡이며 물으신다.

소낭구재를 마악 넘어서 우리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이랴! 이랴.....자라 자라..."

비록 나보다 두살 위이긴 하지만

아직 나 어린 진기가 소를 몰고

독새기풀 그득한 밭뙈기를 쟁기질로 뒤엎고 있었다.

"워 워어~~"

밭둑 끝에 서있는 우리를 발견한 진기는 소를 세우고 달려오는데

고랑이 생긴 밭자락에서 돌을 고르시던 진기어머니께서 황망히 일어나신다,

"오메오메 이게 누구디야!

진기 성상님 아니신게라우!~

글씨...쟈 아부지가 허리를 다치서 쟈를 핵교를 못보내고 있었는디 우찌야 쓰까요!~"

햇빛에 검게 그슬린 얼굴

벌써 주름이 자글자글해져 초로에 접어든 진기어머니는

밥 때를 피해서 온 선생님을 기어이 붙잡고

남에게 빌려온 소를 마저 부리고 해를 넘길즈음에야 집으로 모신다고 앞장섰다.

진기아버지는 반쯤 누운채로 봉창을 밀어 인사하셨고

방안은 너무 누추하다 하면서

선생님을 툇마루에 앉히시고 부랴부랴 부엌에 들어가시는 진기어머니,

진기와 나는 부엌에서 고추단을 태워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데

진기어머니는 넋두리처럼 혼자말을 하신다.

'성상님 오싰는디 머슬 대접히드리야 헐끄나!~'

그 날...

기울어지는 진기네 집 토방마루로 올려진 저녁밥은

놀랍게도 눈처럼 흰 쌀밥이었다.

독상으로 차려진 개다리소반에는

어느새 닭 한마리를 비틀었는지

노르스름한 기름이 떠 있는 닭국이 하얀 국사발이 넘치도록 그득하였다.

"성상님! 많이 드시게라우!~"

선상님! 자 아부지는 아직 곡기를 제대로 못 자신게 깜밥을 푸욱 과 드리야것구만요..

느그덜은 정지다 따로 채리놨응께 어여 가서 먹고..."

겸연쩍어 말씀하시는 진기 어머니..

분명 1년에 한 번

진기 할아버지 제사날에 쓰려고 둔 쌀로 밥을 지으셨을텐데...

밥상을 앞에 두고

차마 수저를 들지 못하시는 선생님의 눈가에 이슬이 비친다.

오랜만에 만난 나와 진기는 부엌에서

낮 동안 가마솥에 보온해 둔 고구마섞은 꽁보리밥을

닭멀국에 맛있게 말아 먹으면서

밭에서 쟁기질하던 진기를 흉내내며 깔깔거린다.

"이랴이랴...자라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