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벌어진 녀석과의 해프닝!

종례시간 내내 내 뒷통수에 활활 타오르는 분노의 눈길을 꼿는 녀석!

녀석이 남긴 말

'너 이새끼! 끝나고 교문 앞으로 나와!'

라는 말이 이명처럼 귀전을 울리고

나는 급작히 몸과 마음이 움츠려드는 것을 느낀다.

'이 일을 어찌해야할 것인가!'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달려든 내게 아주 잠시동안 밀리기는 했지만

나를 아작내리라고 단단히 벼르는 덩치 큰 녀석을 어찌 이겨낼 것인가!

종례를 마치고 선생님이 나가자

녀석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재촉하며 먼저 교실을 나섰고

평소보다 훨씬 천천히 책가방을 싸고 책상을 정리하며

나는 교문 앞에서 녀석이 기다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운동장을 빙 돌아 교문 앞을 나갈때까지

오만 잡다한 생각들이 다 드는데

그중 문득 사부가 했던 말

(정호야!...쌈헐 때는 첨보텀 무자끈 얼굴만 칠라고 허지 말고

자세를 낮춰 나오는 주먹을 피허고 먼저 명치를 노려서 질러야 상대가 힘이 쫙 빠지는겨')

그러나 그중 지배적으로 내 머리에 자리한 것은

제발 구경꾼이라도 많지 않았으면...

내가 형편없이 주어터지는 꼴을 목격하는이가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었다.

녀석은 거기에 있었다!

학교 앞 문구점 앞에 애들 두엇이 있을 뿐 다행이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교문 앞 한 쪽에서 엉거주춤 서 있던 녀석이 나를 보고 말한다

"학교 앞에서 싸우면 학주가 볼지 모르니 따라와 새꺄!".

교문앞으로 정면과 좌측과 우측, 세갈래로 길이 나 있다.

녀석은 항상 우측으로 나는 좌측길로 집에 가곤 했다.

(이제 더이상 피할 도리는 없구나! )

가방에서 장갑을 꺼내 천천히 손에 끼면서 나는 말했다.

"너 싸우고 싶으면 나를 따라와라".

나는 조금이라도 지형이 익숙한 우리집 가는 길 쪽을 택했다.

내가 하는 양을 물끄럼히 보던 녀석의 눈빛이 순간 흔들린다.

녀석을 잠시 짐짓 노려보고 나는 먼저 집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었다.

"너너...너이새끼..너 이리 안 올래!"

열댓걸음을 걷다 잠시 서서 뒤돌아보니 녀석이 그대로 서 있다.

"까불지말고 일찍 들어가 자식아!"

내게는 전혀 어울리지않는 허장성세의 말투에

녀석은 할 말을 잃었는지 멍하니 쳐다본다.

나는 다시 발길을 돌려 걷는다.

학교 정문이 보이지않는..

꽤 길게 느껴지는 첫번째 꺽여지는 골목을 들어설 때까지 녀석이 따라오는 기색이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감!

엄청난 양의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느껴진다.

쾌재라도 부를 양 붕 띄워진 나의 마음은

내 중학시절의 암울함을 한꺼번에 거두어 지는 듯 하였으나,

그 날의 일은,

이제 곧 다가올 고교시절,

'말죽거리잔혹사'에 뛰어드는 서곡이었음을

그 때는 짐작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