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손견과 그 아들들
-인간의 수명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다.-
빈궁과 영달, 장수와 단명은
조화에 의하여 일찍이 마련된 것.
한 잔 술에 죽음과 삶이 같아지니
모든 일이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네.
취한 뒤에는 천지도 잃어버려
멍하니 외로운 베개를 베는구나.
내 몸이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니
이런 즐거움이 최고의 기쁨이로다.
궁통여수단, 조화시소품 (窮通與修短 造化夙所稟)
일존제사생, 만사고난심 (一樽齊死生 萬事固難審)
취후실천지 홀연취고침 (醉後失天地 兀然就孤枕)
부지유오신, 차락최위심 (不知有吾身 此樂最爲甚)
- 이 백 -
손견의 자(字)는 문대(文臺)이며, 오군(吳郡) 부춘현(富春縣, 지금의 절강성 항주) 사람이다.
아들인 손권이 오(吳)를 건국한 뒤에 시호를 무열황제(武烈皇帝)라고 하였다.
춘추시대 병법가로 이름을 날린 손무(孫武)의 후손이라고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오군 지역의 호족 출신으로 17세 때 전당(錢唐)에서 해적을 물리쳐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회계의 허창이 반란을 일으키자 오군의 사마로서 1천여명의 군사를 모아 이를 토벌
하였으며, 토벌할 당시 손견은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형제로 사귄 것처럼 정보와 한당 같은
충성스런 부하들을 얻었고, 바로 이들이 손견이 죽은 후 그의 자손들을 도와 오나라를
세우는 기틀을 마련했다.
손견은 이 때의 공으로 현승(縣丞)으로 임명되었다.
184년(中平 원년)에 장각(張角)이 이른바 황건의 난을 일으키자, 정보, 한당과 같이 토벌군에
참여해 공을 세워 의랑으로 임명되었으며, 장사태수가 되어 구성이 이끈 반란군을 토벌하여
오정후(烏程侯)로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