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까대가지않고 멋허고 자빠졌냐!

시집을 갔으먼 거다 니 빼를 묻으야지,

여가 어디라고 찾아오느거시여 시방!

이년아! 꼴도 베기싫은께 후딱 못 가냐!"

할아버지는 마당을 향해 불같이 역정을 내시고

봉창이 부서져라 문을 닫으신다.

마당에는 이태 전 시집 간 고모가

보따리를 가슴에 안은 채 풀석 주저않아 울음을 터트렸고

할머니는 옆에 서서 어쩔줄 몰라 하신다.

"아이고... 하루 점드락 그 먼길을 걸어 온 아 한티

날 저물었는디 어디로 가라 헌다 말이요.

오늘은 여다 재우고 밝은 날 보내던지...."

할머니는 풀 죽은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원망하듯 타박하는데

"머시여??

귀신 씨나락 까먹는소리 허덜 말고

당장 어디 가서 뒤지라고 혀!!

세상살이 밥 세 끄니 지 때 찾아 먹고 맘 편히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는고?,,,

눈구녁을 씻고 찾아 보라고 히 봐!"

에혀 숸!!!

초가집 대청이 찌렁찌렁 울릴만큼

할아버지는 노발대발 하셨고

할머니는 고모를 부축하여 일으키더니

슬그머니 소죽 끓이는 골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신다.

그 날 밤

목침을 괴고 돌아 누워 일찍 자는 척 하시는 할아버지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이부자리를 들어다 골방에서 고모랑 같이 누우신 할머니는

연신 고모의 등짝을 두드리며 말씀하신다.

"에고!~~야야!..

초례청에서 니 시어매를 첨 볼짝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기 시집살이 깨나 허것다 싶었는디

고새를 못 참고 이리 왔냐 이것아~

정서방은 어찌간디... 나 죽었네 허고 살어야지

니 아부지 승질머리 몰라서 글간디 여기를 와 오기럴~~

고모는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었고

그렇게 그 밤은 깊어만 갔다.

새벽녁

닭이 회를 치기도 전에

정지에서 밥을 짓느라 달깍거리시던 할머니는

소반상을 들고 고모가 있는 골방으로 가다

어슴프레한 삽짝 앞에서 지게를 지고 서 있는 사람을 본다.

"아이고메 이게 뉘기여!...정서방 아녀??"

"장모님.... 뵐 멘목이 없습니다!."

사내는 지게에 지고 온 헐한 가마니 하나를 고방에 옮겨 놓으며

죄스러워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는데

낌새를 어느새 알아채렸는지

골방문이 열리며 고모가 가져 온 보따리를 다시 안고

쪼르르 마당으로 나섰다.

사내는 차마 할아버지를 깨우지 못하고

마당에서 부복하여 큰 절을 올리고는

두 사람은 동네사람들이 볼세라

뒷동산 언덕 소로로 자리를 잡아 길을 떠난다.

빈 지게를 진 고모부와 나란히 댓걸음 걷다가 뒤돌아보곤 하던 고모...

할머니는 자꾸 눈가를 훔치시며 어여 가라 손짓을 하고

이내 두 사람의 발걸음에 힘이 붙는다.

콩 밭이 드 넓은 언덕배기까지 올라

쫄랑거리는 누렁이랑 같이 두사람을 배웅을 하고

뒤 돌아서 내려다 보니

이른 아침 안개 고즈넉한 우리 초가집 마당에는

어느새 일어나셨는지

할아버지가 싸리비로 마당을 쓸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