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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떻게 이런 일이. 제2국에서 신민준(왼쪽)이 신진서에게 질래야 질 수 없는 바둑을 역전패한 다음 괴로워하고 있다. |
CJE&M VS 신안천일염, 2014 KB국민은행바둑리그 8라운드 4경기
신진서(CJE&M), 이호범(신안천일염) 각각 이겨 첫날 1승1패
"참, 바둑들 재미나게 두네요." (유창혁 해설자)
CJE&M과 신안천일염의 후반 라운드 경기 첫날, 모두의 눈을 의심케하는 사태가 잇달아 펼쳐졌다. 이지현(1국)과 신민준(2국)의 승리가 99퍼센트 확실한 상황에서 두 판 모두 승부가 뒤집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바둑 승부를 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도 정도 나름이지 첫날의 결과는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9일 서울 홍익동 바둑TV스튜디오에서 벌어진 2014 KB국민은행바둑리그 8라운드 4경기에서 신안천일염의 이호범이 이지현에게 거의 줏다시피 승리를 거뒀다. 이어진 2국도 마찬가지. '양신 대결'에서 CJE&M의 신진서가 신민준을 상대로 기적같은 역전승을 거두며 양 팀은 첫날을 1승1패로 마쳤다.
▲ 첫날 장고대국 두 판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스튜디오. 속기 대국도 아닌 상황에서 두 판 다 믿기 힘든 역전이 이뤄졌다.
2014시즌의 개막전을 치렀던 두 팀이 후반 라운드가 본격 시작되는 시점에서 다시 만났다. 개막전에서 CJE&M은 신안천일염을 4-1로 대파하면서 4연승의 상승세를 탔고, 그 결과 현재 5승2패로 선두. 반면 신안천일염은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2패-3연승-2패의 흐름 속에 3승4패, 6위에 랭크돼 있다. 전반기의 설욕도 설욕이지만 이 경기에 연패 탈출과 5할 승률 달성이 동시에 걸려 있는 신안천일염으로선 목숨이 달려있다 해도 좋은 승부다. 당연히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이세돌과 강동윤, 양 팀의 주장은 나란히 국수산맥배 출전 관계로 이번 경기의 오더에서 제외됐다. 신안천일염은 그 빈 자리를 '괴물' 김민호가, CJE&M 은 최근 삼성화재배 본선에 진출한 강승민이 메웠는데 피차일반이라고 생각한 때문인지 양 팀 감독들의 표정은 평소의 경기 모습 그대로였다.
■ 신진서 흔들기는 '이세돌 수준(?)'
"신진서 선수가 흔들어 가는 게 정말 이세돌 선수 같다는 느낌이 납니다." (송태곤)
"평소 잘 안 던지는 이유가 있었네요. 상대가 이런 식으로 걸려드니까." (유창혁)
신진서와 신민준. '양신'이 대결한 2국은 신민준의 완승으로 끝났어야 마땅했다. 신진서가 초반 무리한 행마로 크게 망가진 탓에 중반 무렵에는 속된 말로 '아무렇게나 둬도' 신민준이 이기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우변 흑을 잡으러 가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지른 신민준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 마음의 파장을 신진서가 놓치지 않고 마구 흔들어대면서 말도 안 되는 역전이 이뤄지고 말았다(315수 흑 불계승).
▲ 2국 종료 후 신민준의 패배가 너무 아쉬웠던지 신안천일염의 안형준과 이상훈 감독이 신민준의 양쪽에 서서 복기를 지켜보고 있다. 돌을 거두기 전 신민준이 스스로도 어이없다는 듯 쓴 웃음을 짓는 것이 TV모니터에 비쳤고, 신진서는 이기고도 미안했던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 올초 '합천군 초청 미래포석열전' 결승에서 신민준을 2-0으로 꺾은 후 다시 만나 천신만고 끝에 승리를 안은 신진서. 시즌 전적도 5승2패가 되면서 지난해(4승8패)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신진서에게 절호의 설욕 기회를 놓친 신민준. 이번 시즌 KB리그 신인왕 자리를 놓고 한승주, 류수항, 김진휘 등과 경쟁 중이다.
이날은 양 팀 모두에게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 이보다 먼저 끝난 1국은 말 그대로 해프닝. 승리를 눈 앞에 둔 이지현이 어이없이 가운데 백 대마를 죽이면서 165수 만에 이호범의 역전승으로 판이 끝났다. 어찌됐건 결과는 1승1패였지만, 속기도 아닌 장고대국에서 연속해서 해프닝성으로 승부가 뒤집히자 TV해설자와 양 팀 검토진은 어안이 벙벙한 듯 할 말을 잊은 모습이었다. 바둑 승부란 게 원래가 잠시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승부가 뒤집어지는 고약한 것. 그렇더라도 이날은 말도 안 되게 정도가 심했고, 1국은 더더구나 그러했다.
▲ <제1국>이지현-이호범. 중반 들어 이호범이 자충 착각으로 잡을 수 있는 돌을 거꾸로 모두 죽여서는 사실상 끝난 바둑(신안천일염은 이 때 검토를 접었다). 하지만 이후 이지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가 거듭되면서 황당한 역전극으로 판이 끝나고 말았다(165수 흑 불계승). 이지현은 자신의 패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꿈을 꾸는 사람처럼 바둑판을 응시하다가 복기없이 돌을 거뒀다.
첫날을 1승1패로 마친 양 팀은 둘째날 승부를 결정짓는 3-5국을 속행한다. 주장이 빠진 승부라지만 대진은 세 판 다 박빙이고 흥미진진하다. 최대 관심판이자 볼거리는 3국 박승화-김민호 양자간 첫 대결. 이제까지 상대 1~2지명만을 상대해 왔고, 거기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준 두 사람이 과연 어떤 승부를 펼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첫날 경기 결과.
▲ 둘째날 3국과 5국에 출전하는 신안천일염의 퓨처스리거 김민호와 5지명 안형준. 이번 시즌 KB리그에 세번 출전해 한국랭킹 1.2위(박정환, 김지석)와 지난해 MVP(김정현)를 모두 꺾는 기적을 연출한 김민호가 '1지명 킬러' 박승화를 상대로 어떤 결과를 끌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8개 팀이 더블 리그를 벌여 상위 4팀이 포스트시즌에 올라 챔피언을 가리는 2014 KB국민은행바둑리그의 상금은 우승 2억원, 준우승 1억원, 3위 6천만원, 4위 3천만원. 매 대국 승자에게는 4백만원, 패자에게는 70만원의 대국료가 지급되며 1지명자에게는 40만원의 출전 수당이 별도로 주어진다. 생각시간은 속기 10분, 장고 90분. 초읽기는 공히 40초 5회다.
▲ 신안천일염은 흔히 '이세돌의 팀'이라 불리지만 이세돌이 없을 때 더욱 힘을 내는 묘한 팀이다. 지난 3라운드 때도 김민호가 투입된 지금의 전력으로 우승후보 티브로드를 5-0으로 완파한 일이 있다. 지금은 6.7라운드에서 당한 연패의 사슬을 끊는 것이 무엇보다 지상과제.
▲ 지난 경기에서 포스코켐텍에 '2패 후 3연승'의 드라마를 펼치며 선두를 지킨 CJE&M. 2지명 이지현이 약간 부진한(3승5패) 것을 제외하곤 주전 대부분의 컨디션이 좋은 데다, 조커 강승민이 삼성화재배 본선에 진출하는 경사까지 겹치면서 잠시 주춤했던 기세가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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