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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과는 반집이었지만 제대로 했으면 김민호(오른쪽)의 여유있는 승리였다. 신안천일염의 퓨처스리거 김민호가 촤종국에서 정관장의 김정현을 꺾고 팀에 짜릿한 승리를 안겼다. |
기세 탄 신안천일염 3연승 정관장은 1승4패 최하위 추락
2014 KB국민은행바둑리그 5라운드 1경기
“김정현마저도…”
이 정도면 '반란'이 아니라 '테러'라 말하는 게 온당할 듯 싶다. 김민호라는 정체모를 태풍이 이번엔 정관장을 강타했다. 지난 경기에서 한국랭킹 1위 박정환을 꺾어 충격을 주었던 김민호가 이번엔 지난해 MVP면서 정관장의 실질적 에이스인 김정현까지 물리쳤다.
13일 서울 홍익동 바둑TV스튜디오에서 벌어진 2014 KB국민은행바둑리그 5라운드 1경기에서 신안천일염이 퓨처스리거 김민호의 결승점으로 정관장을 3-2로 물리쳤다.
양 팀 1승1패의 상황에서 벌어진 둘째날 대국에서 신안천일염은 3국에서 신민준이 이원영에게 크게 유리했던 바둑을 역전당하면서 패색이 짙었었다.
하지만 4국에서 이창호가 정관장 주장 나현을 꺾으며 2-2 동률을 이룬 데 이어, 마지막 5국에서 김민호가 김정현을 반집차로 물리치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 충격의 정관장, "이렇게 안 풀릴 수가..."
3국에서 이원영이 신민준에게 대역전승을 거뒀을 때만 해도 정관장의 승리는 기정사실인듯 보였다. 진행 중인 이창호-나현의 장고 대국은 어찌될지 모른다 치더라도 마지막 5국에서 김정현이 김민호를 잡아줄 것이란 믿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나현도 패하고 김정현마저 새내기에게 무릎을 꿇는 참담한 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 정관장이 2-1로 리드한 상황에서 4국(오른쪽)과 5국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스튜디오. 신안천일염이 이 두 판을 모두 가져가며 역전에 성공했다.
▲ 3국을 승리했을 때만 해도 정관장의 분위기는 이랬다. 이 때 누가 지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정관장은 1승4패가 되면서 다시 리그 최하위로 밀려났다. 초반 3연패 후 직전 경기에서 포스코켐텍을 4-1로 대파하며 분위기가 살아나는 듯 보였지만, 다시 패배의 멍에를 쓰며 향후 전망이 불투명하게 됐다.
반면 신안천일염은 3라운드에서 우승후보인 티브로드를 5-0으로 완파하면서부터 살아난 팀 분위기가 3연승으로 이어졌다. 주장 이세돌이 4연승으로 확실한 구심점으로 자리하고 있는 데다 팀의 막내인 신민준과 퓨처스 리거 김민호가 연속 결승점을 올려준 것이 큰 밑거름이 됐다. 중간 순위도 3승2패가 되면서 4승의 CJE&M과 3승1패의 Kixx에 이어 단독 3위.
■ 김민호 미스터리 ‘괴물 신인’인가 ‘반짝 반딧불’인가
지난 경기 박정환에 이어 이날 김정현마저 꺾으면서 잇단 충격을 주고 있는 김민호(신안천일염 퓨처스리거 1지명)는 95년생으로 만 19세다. 올해 1월에 프로가 됐으니 빠른 입단이라 볼 수 없고, 그 때문에 김명훈(정관장 5지명)이나 설현준(영재입단 3호)같은 유명 동기들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날 김정현과의 대국 전까지 올해 성적은 27전 14승 13패로 반타작을 약간 상회하는 정도이고, 아직 규정대국수 30국을 채우지 못해 랭킹이 없는 상태. 소속 리그인 퓨처스리그에서의 성적 역시 2승2패로 평범하며, 최근의 천원전 예선에선 오정아에게 패해 탈락, 그 이전 이민배 예선에선 아마추어 김기범에게 한 칼을 맞은 일도 있다.
▲ 김민호는 KB리그에서의 두 차례 사건만 제외한다면 여느 새내기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박정환과 김정현을 잇달아 꺾을 수 있었을까.
이날 김정현과의 대국을 중계한 목진석 해설자는 일단 ‘끈질기고 대국 자세가 훌륭하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었다. 나아가 “강자들과 대국하면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바둑을 둔다는 점이 대단하다”며 김민호의 ‘반전무인(盤前無人)’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그렇다면 같은 선수 입장에서 보는 김민호는 어떨까. 정관장의 이원영은 “TV바둑에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바둑이 끈적끈적하고 수읽기가 좋은 편이어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면이 있다. 김민호와 대국하는 상위 랭커들이 가뜩이나 부담이 큰 상태에서 김민호의 이런 면에 당혹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하는 의견을 피력했다.
기자가 볼 때 김민호가 갖고 있는 최대 강점은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김민호같은 새내기가 KB리그를 제외하고 박정환이나 김정현같은 일류들과 대국할 기회는 실제로 많지 않다. 바꿔 말하면 김민호로선 KB리그 무대가 강자들을 상대로 자신의 역량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면서 설령 진다 해도 뭐랄 사람은 하나도 없는 최상의 무대라는 얘기. 이 점에서 김민호가 진정한 ‘괴물’로 성장할지 ‘반짝 스타’로 끝날지 여부는 KB리그가 아닌 다른 기전에서의 성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판단이며, 그 해결의 키는 김민호 본인이 쥐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제3국>신민준-이원영. 박정상 해설자가 “둘이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싸운다" 말했을 정도로 불과 10여 수부터 마른 들판에 불길이 번지듯 끊임없이 전투가 이어졌다. 이후 격렬한 공방전이 한매듭 지어진 시점에 와서는 정관장도 포기했을 정도로 신민준의 큰 우세. 하지만 좌하귀 이원영의 승부수에 신민준이 덜컥 걸려들었고, 좌변 백 일단이 모조리 흑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믿기 어려운 역전이 이뤄졌다(169수 흑불계승). 승리한 이원영은 시즌 3승1패, 신민준은 2승2패가 됐다.
<제4국>나현-이창호. 김민호의 사건만 아니었더라면 원래는 최대 관심판으로 조명 받았을 대국. 초반 엄청난 바꿔치기를 시작으로 서로 큰 모양을 짓는 형국이 돼 이 경계선을 둘러고 미묘한 공방이 펼쳐졌다. 결과는 좌상귀에서 패를 내 백이 경계선을 보기 좋게 허문 이창호 9단의 승(155수 흑불계승). 승리한 이9단은 시즌 2승3패, 패한 나현은 팀 성적과 똑같이 1승4패가 됐다.
▲ 나현과의 '닮은꼴 대결'에서 승리한 이창호 9단. 올해 성적이 13승 11패인데 4월말까지 6승 8패였다가 5월 이후 7승3패로 완연히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나현과의 대국도 어려운 바둑을 큰 실수 없이 지켜내 전성기 때를 연상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5국>김민호-김정현. 중반까지는 속기에 강한 김정현이 판의 흐름을 주도했으나 이후 하변에 끈끈한 김민호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승부가 뒤집어졌다. 원래는 3집반 정도의 차이였으나 김민호가 끝내기에서 큰 실수를 하면서 반집까지 차이가 좁혀졌다(256수 백불계승). 김민호는 2전2승, 김정현은 3연승의 좋은 흐름이 끊겼다.
▲ 4국(왼쪽)에서 나현이 항복을 선언했을 무렵. 5국은 공배를 메우고 집을 확인하기 직전이었다. 결국 약간의 시차만 있을 뿐 동시에 끝난 셈이 됐고, 스튜디오에 몰려온 양 팀 선수들이 두 대국으로 나뉘어 복기 검토에 들어갔다.
8개 팀이 더블 리그를 벌여 상위 4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 챔피언을 가리는 2014 KB국민은행바둑리그의 상금은 우승 3억원, 준우승 2억원, 3위 6천만원, 4위 3천만원. 주말엔 4연승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CJ E&M과 상처받은 우승 후보 티브로드가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피할 수 없는 일전을 펼친다.
[사진ㆍ기사제공ㅣKB리그운영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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