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바둑의 재미는 어디에 있을까? 뭐니뭐니해도 그 첫째는 익명성에 있지 않을까. 나도 너를 모르지만 너도 나를 모르지? 혹은, 나는 너를 알지만 너는 나를 모를 거야, 같은…. 일종의 관음증적인 기분도 섞여 있을지 모른다.



익명성은 한편 가벼움을 유발하는 단점이 있으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은 묘한 마력으로 사이버공간으로 빠져들게 한다. 실체를 터놓고 벌이는 프로기사들의 공식대국을 관전하는 것보다 정체불명의 인터넷 유명 고수 두 사람의 대결에 관중이 더 환호하는 현상은, 이런 익명성이 주는 흥분 때문일 터이다.



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 이것이 익명의 전제이고 이는 자기복제(?)를 손쉽게 허용한다. 오프라인의 현실세계에서는 자기복제가 불가능하지만 가상공간 인터넷에서는 제2, 제3의 복제(ID생성)가 가능하다. 따라서 수시로 새로운 스타, 혜성이 등장한다. 이런 재미가 쏠쏠하다.



익명성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재미 요소를 든다면, 속전속결이다. 인터넷바둑은 승부를 길게 끌지 않아 좋다. 아예 제한시간 없이 바로 20초 초읽기에 들어가는 바둑이 대다수다. 한술 더 떠 사이버오로에서 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바둑은 10초 바둑이다. 이건 마치 러시안룰렛 같은 짜릿함을 준다. 속도전을 피할 수 없는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딱 떨어진다.



익명성과 속도전, 이 두 가지가 선사하는 재미를 충족시켜주는 사이버 고수가 푸른별바다 7단★이다.



푸른별바다는 명성이 짜르르한 사이버오로 고수들 가운데 신흥강자 그룹에 속한다. 본격 장마철이 시작되기 직전인 2년전 이맘때, 정확히 2007년 6월25일 혜성같이 출현했으니 터줏대감이랄 수 없다. 승부세계의 닉네임과는 어울리지 않는, 문학도에게나 어울릴 법한 ‘푸른별바다’라는 대화명은 처음엔 시선을 전혀 끌지 못했다. 하지만  등장 후 몇 개월 동안 오로서버에 살다시피 하며 밤낮없이 ‘time’ ‘hereborasu’ ‘우스꽝’ ‘맨날둬’ ‘내평생소원’ 등의 유명 왕별들과 숱한 정면승부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높은 승률과 초고공 레이팅포인트(RP)를 기록하며 한국기사로는 한때 가장 높은 WRS랭킹(World Rating System, 사이버오로가 고안한 세계인터넷바둑 레이팅시스템)에 올라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것이 푸른별바다 7단★의 손!

1년 만의 월간랭킹전 우승



사이버오로의 최고 단위는 7단이다. 그런데 같은 7단이라도 단위 옆에 별(Star)★이 붙은 7단★이 있다. 그냥 7단과 흔히 왕별이라고 말하는 7단★과는 한 계단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7단★은 타 사이트의 9단격이다. 사이버오로에서 이 왕별 최고단의 경합장이 매달 랭킹32위까지 초청해 벌이는 ‘월간랭킹최강전(이하 랭킹전)’인데 우승상금이 300만원이다. 신흥강자로 등장한 푸른별바다는 2008년 5월 랭킹전에서 우승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2008년 600판에 가까운 전적이 말해 주듯 그는 떴다하면 구름관중을 몰고다니는 사이버오로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던 그도 오버페이스를 했는지 아니면 숨고르기에 들어갔는지 이후 다소 주춤했다. (푸른별바다가 처녀우승한 다음달 역시 혜성같이 나타나 랭킹전을 석권한 이후 지금까지 4차례나 우승을 휩쓴 우스꽝 같은 신예강자의 바람이 거셌던 것도 푸른별바다의 존재감을 희석시켰을 터이다.) 그러다가 딱 1년 만인 2009년 5월 랭킹전에서 '대한소한'을 2-0으로 물리치고 건재를 과시했다.



- 반갑다. 랭킹전에서 두번 우승했다. 실력과 명성에 비해 모처럼 거둔 우승이라 감회가 남다를 텐데?

"우승한 지 1년은 된 것 같다. 너무 오랜만이라 우승했다는 실감이 잘 안 나지 않았다."



- 랭킹전 본선에 오른 적이 많다. 하지만 알려진 실력과 참가횟수에 비해서 우승 운이 따르지 않았다. 물론 한번 하기도 힘든 우승을 두 차례나 했으니 나쁜 성적이라고 할 순 없으나 명성에 비하면 아쉬움이 있다. 초반에 강자를 만나는 등 운도 좀 안따랐던 것 같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다음날 공식대국이 있다거나 그러면 집중하기가 힘들 때도 있다. 또 상대가 나보다 잘 두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러고 보니 '꿈을향해서'를 랭킹전에서 만나 두번 다 진 적이 있다. 누구인지는 알 것 같긴 한데….” (5월 랭킹전에선 16강에서 만나 이겼다.)



- 푸른별바다! 상대에게 겁을 집어먹게 해야할 승부사의 이름치고는 너무 시적인 대화명이다. 참 아름답고 멋진 대화명인데 직접 지었는지?

“실망스럽겠지만, 아니다.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사이버오로 직원이 왕별 아이디를 만들 때 지어줬다. 처음엔 좀 그랬는데 갈수록 괜찮은 이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아주 애착이 가는 대화명이다.”



푸른별바다의 신분에 대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사이버오로에서 곧장 왕별 아이디를 만들어줬다면 프로기사이다. 여기까지는 그 스스로 밝힌 셈이다. ^^;; 다음으로 30대 이상 중견기사인지 20대의 소장기사인지 10대 신예기사인지 범위를 좁히고 들어가볼 참인데, 어느 선까지 밝혀도 좋냐고 물으니 사이버오로에서 본격적으로 바둑을 두게 된 계기를 밝히는 것으로 대신한다.



“2007년 6월 이전까지는 친구 ID로 간혹 두는 정도였지 인터넷바둑 자체를 자주 이용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프로기사 야구단 기(棋)팀을 사이버오로에서 후원해 주셨고 기팀 멤버들이 감사의 뜻으로 사이버오로에서 많이 두자고 결의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 그럼 기팀 멤버 중 한명으로 압축되는데, 이왕이면 포지션까지 밝힐 수 있을까? (푸른별바다는 야구에선 주전자 멤버인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