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1988년 열린 제1회 응씨배 준결승 복기장면. 당시 조훈현 9단은 린하이펑 9단과의 준결승 1국에서 빈삼각의 묘수를 세 번이나 두고 승리를 거뒀다.
[김구라의 썰전說戰 - 여덟번째 '썰']
'반상의 구라' 김성룡 9단. 막강한 입심을 자랑해 얻은 별명이지만 화려한 애드립이나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곁들이는 수준이 아니다. 판에 박은 해설과는 거리가 먼, 솔직발랄직선적인 어법으로 팬들을 즐겁게 한다. 매주 사이버오로가 멍석을 깐다. 주간관전평 '김구라의 썰전'.
벌써 일년의 절반이 지나갔다. 이즈음 해서 상반기 베스트 묘수를 선보이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중국 갑조리그 8라운드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갑조리그는 지난해 우승팀인 '다롄'의 주축 선수들이 올해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기며 각 팀 주장자리를 대부분 세계대회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차지했다. 이러다 보니 갑조리그 주장전에선 마치 세계대회 결승과 같은 빅매치가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우리 한국바둑리그는 5전3승제지만 중국은 4명이 겨뤄 2대2가 되면 주장이 이긴 쪽으로 점수를 더 주기 때문에 주장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 자연스럽게 주장급 선수의 몸값도 인플레가 될 수밖에 없고, 한정된 초일류 기사들과 계약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선수 수급에서 밀리는 팀은 용병이라도 잘 구해야 한다. 중국의 초일류와 승부를 겨룰 수 있는 프로기사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보니 한국의 일류기사들은 중국 기사보다 2~3배 정도 많은 급액을 받고 중국리그에 나선다.
중국 내에서도 주장전 승점 가중치로 인해 한국선수의 몸값이 올라가는 것에 반발해 선수를 4명이 아닌 5명으로 해서 주장제를 폐지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흥행'이라는 요소를 생각하면 쉽게 변경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예를 들어 6월25일 벌어진 갑조리그 8라운드에선 김지석은 스웨가 대결했다. 세계대회 결승전에서나 볼 수 있는 빅매치다. 또 박정환과 미위팅의 대결 역시 그에 버금갈만한 대진이었다.
8라운드 주요 기보를 검토하던 중 박정환의 판이 눈에 들어왔다. 박정환은 장쑤팀 주장 미위팅을 상대로 113수만에 흑불계승을 거뒀다. 수읽기의 깊이가 놀라울 정도인데 이 바둑에서도 박정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었다.
박정환이 보여준 한 수는 '빈삼각'이다. 바둑에서 빈삼각은 우형을 뜻한다. 좋지 않은 형태로 인식해 보통 바둑 입문자들은 '빈삼각은 두지 마라'라고 배운다. 이런 빈삼각에 대한 평가를 바꿔 놓은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조훈현 9단이다.조훈현 9단은 1988년 11월에 벌어진 제1회 응씨배 준결승에서 린하이펑 9단을 상대로 한판에 빈삼각을 세 번이나 두고 승리해 고수는 빈삼각도 둘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줬다.
▲ 응씨배 준결승에서 린하이펑과 마주 앉은 조훈현(오른쪽).
▲ 참고도1- 응씨배 준결승 1국
○조훈현-●린하이펑, 1988.11.20
백1의 빈삼각은 보기에 따라서 '꼬부렸다'고 볼 수도 있다. 이날 보여 준 빈삼각 묘수 세 개 중 첫 번째 묘수였다. 흑이 두점머리를 맞지 않기 위해 2로 늘자 백은 3으로 흑 요석 넉 점을 제압하며 우세를 잡았다.
▲ 갑조리그 8라운드. 항저우팀과 장쑤티의 주장전에서 박정환과 미위팅이 맞붙었다.
▲ 참고도2- 중국갑조리그 8라운드
○미위팅-●박정환, 2015.6.25
박정환은 확실히 전성기다. 흑1의 빈삼각이 이번 갑조리그에서 박정환이 보여준 멋진 수다. 은근히 조훈현 9단이 보여준 수와 닮은 면이 있다. 묘수란 누군가가 둔 수를 보고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
사실 이 한 수만 봐서는 이게 왜 좋은 수인가 의구심을 가질 만한 상황이다. 흑1은 실제 대국에서 77수였는데 이후 바둑이 끝난 113수까지 미위팅은 외길 수순으로 홀리듯이 두면서 결국 패했다. (자세한 해설은 아래 동영상 참조)
바둑의 묘미는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법이 다르다는 점에 있다. 고수로 가는 길도 우선 내가 아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주변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를 살피며 궁리하는 데 있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말하는 프로들도 실제로 상황이 어려워지면 정확한 대처법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역대 빈삼각 묘수 중 역대 1-2위를 다툴 만한 수는 무엇일까. 독자분들이 직접 골라 보시라.
아래 역대급 묘수 1번과 2번 중 자신이 생각하는 빈삼각 최고의 묘수를 선택해 댓글로 올리신 분께는 추첨을 통해 '김성룡의 꼼수 퇴치법 1,2권' 한 질을 제가 선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단 댓글이 50개가 넘는 경우에 한해서.^^)
▲ 역대급 빈삼각의 묘수 1번: 제1회 춘란배 본선
○저우허양-●조훈현, 1999.4.23
백1로 두점 머리를 젖힐 때만 해도 흑은 두점을 살리는게 맞나 싶을 정도로 백의 세력이 좋은 곳이다. 그런데 흑2가 순도100% 빈삼각으로 백은 AㆍB 맞보기에 완벽히 걸렸다. 웬일인지 우하귀에서 흑이 대충 활용해 놓은 정석 선택이 기가 막힌 축머리 상황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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